설악산 대청분소장 "걱정마세요, 중청 완전 철거 아닙니다"
설악산을 찾는 탐방객들이 중청대피소 철거를 아쉬워하는 것을 많이 보았습니다. 특히 나이 드신 중장년층 탐방객들의 아쉬움은 남다른 것 같습니다. 중청대피소가 들어선 지 벌써 30여 년이 되었으니 그 무렵 중청대피소를 이용했던 20대는 지금 50대일 겁니다. 중청대피소는 그 긴 시간 동안 한결같이 이곳에 있었고, 탐방객들은 비나 눈보라를 피해 이곳에 들어 식사 한 끼를 해결하고 언 손발을 녹이며 하룻밤을 묵고 했으니, 특히 중장년층들이 중청대피소에 대해 느끼는 마음은 특별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우리 직원들에게도 중청대피소 철거는 남다릅니다. 1995년 지금의 중청대피소 건물이 들어설 때 근무하셨던 선배들한테 들은 얘기도 있고, 세월이 흘러 당시 중청을 지켰던 분들은 대부분 은퇴하셨습니만 그 시절은 정말 힘든 일들이 많았습니다. 이곳이 설악산 정상부라 바람이 우선 어마어마하게 붑니다. 바람이 심한 날은 대청봉을 지나가는 것 자체가 힘들 정도죠. 만일 그때가 겨울이고 눈 내리는 날이라면 정말 가혹한 상황이 됩니다. 중청대피소 직원들은 오색 방향으로 출퇴근을 하니, 눈폭풍이나 폭풍우가 심한 날엔 제때 퇴근을 못 하는 경우도 생깁니다. 그런 때는 또 탐방객 재난안전 사고도 발생하기 쉬워 직원들이 정말 경계하는 때입니다. 폭설이 내리는 날도 그렇습니다. 폭설이 내리면 탐방로 이동 자체가 매우 힘들어 출퇴근 시간이 다른 때보다 배 이상 늘기도 합니다. 그런 모든 애환과 고생을 이곳 중청대피소에서 겪어 왔으니 이곳을 거쳐간 직원들이 겪었던 고생은 말로 형언하기 어렵습니다.
개인적으로는 2011년 가을에 겪은 이틀간의 중청대피소 파견근무가 제일 기억에 남습니다. 당시 소청대피소에서 근무할 땐데 10월 어느 날, 주말을 끼고 비가 많이 내렸습니다. 일손이 부족하다고 중청대피소로부터 지원 요청을 받았습니다. 날은 춥고 비바람까지 불어대니 가을 단풍을 보러 대청봉에 오른 탐방객들로 중청대피소는 발 디딜 틈 없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도착하자마자 한숨 돌릴 겨를도 없이 선배 손에 이끌려 고무장갑을 끼고 취사장으로 갔습니다. 비구름이 대청~중청봉에 낮게 걸려 있을 때라 주변은 뿌연 안개로 한치 앞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취사장은 라면 끓이고 고기 굽는 사람들로 그야말로 북새통이었습니다. 발길에 묻어난 흙과 먹다 흘린 라면발, 버려진 비닐로 진창을 이룬 취사장 바닥을 고무장갑 낀 손으로 30분 단위로 훑어야 했습니다.
취사장 정리가 끝나면 바로 화장실로 가야 했습니다. 줄 지어 사람들이 이용하니 틈만 나면 재래식화장실을 정리해야 했죠. 지금이야 '포세식'으로 보기에 좋지만, 그때만 해도 재래식이었으니 그 풍경을 짐작할까요? 제때를 놓치면 변기 가운데로 봉우리가 솟아 올랐습니다. 그러니 화장실 역시 수시로 들여다봐야 했습니다. 그날은 아마 거의 앉아 쉬어본 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 시절 중청대피소에서 근무했던 직원들은 다들 비슷한 경험들을 가지고 있을 겁니다.
또 중청대피소에서 근무하다 보면 지치고 탈진한 사람들, 다리가 풀려 발목을 접질리거나 넘어져 다친 탐방객들을 자주 보게 됩니다. 가을처럼 기온 변화가 크고 날씨가 궂은 날 제대로 된 복장을 갖추지 못한 탐방객 중에서 저체온증을 호소하는 경우가 생깁니다. 대피소 객실은 마룻바닥이라 체온 회복에 충분치 않다 싶으면 직원들 머무는 숙소를 비워 돌봐주는 경우도 흔하게 생기는 일들입니다. 이 모든 것들, 대청봉을 오른 탐방객들과 직원들이 겪은 모든 경험과 추억들에 중청대피소가 자리하고 있다고 봅니다.
이제 30여 년의 세월이 흐른 중청대피소가 시설 노후화에 따른 안전문제 우려로 철거되고 신축될 예정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탐방객들은 철거된다는 것만 알고 있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완전 철거가 아니고 노후건물 철거 후 새 건물이 들어서는 '신축'입니다. 지난 30여 년간 설악산을 지켜온 중청대피소가 새로이 태어나는 겁니다.
올해 중청대피소에 근무하면서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 있습니다. 설악산을 찾는 젊은 세대가 엄청 늘었다는 것입니다. 지난 몇 년간의 코로나 유행 후, 눈에 띄게 두드러지는 특징입니다. 젊은 산행 인구가 늘어나는 것에 맞추어 새롭게 들어서는 신축 중청대피소 또한 그들의 젊음 속에서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갈 겁니다. 몇 십년 뒤에 그들이 우리처럼 장년이 되었을 때 그들의 추억담에 등장하는 중청대피소는 새로이 지어지는 신축 대피소의 모습으로 자리할 겁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현 중청대피소의 철거를 추억의 파괴라고 보지 않습니다. 시간은 미래로 흘러가니까요. 앞으로도 중청대피소는 지금과 같은 위치에서 계속 우리들 곁에서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어 나갈 거니까요.
월간산 11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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