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없이’ 아이를 낳는다는 것 [새로 나온 책]
부모 말고 모모
로진느 마이올로 지음, 변유선 옮김, 사계절 펴냄
“우리는 여전히 법 바깥에 있는 엄마들이다.”
책 제목 그대로다. 부모(父母) 말고 모모(母母). 프랑스에 사는 로진느와 나탈리는 서로 사랑하는 두 여성이자 아이들을 함께 키우는 모모다. 로진느는 이렇게 적는다. “내가 나탈리와 아이를 갖기로 약속하고, 정자 공여 시술로 3.24㎏, 50㎝의 행복을 만나기까지는 대략 3년 반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무엇보다 법률 전문기자인 그는 ‘아빠 없이’ 아이를 낳는 과정에서 겪을 수 있는 현실적이고 법률적인 문제들을 조목조목 비판하고 따진다. 실제로 6장 제목은 ‘아이는 좋지만, 이 많은 희생을?’이다. 최근 아이를 낳은 레즈비언 김규진씨가 추천사를 썼다.
학교폭력, 교육을 만나다
변국희 외 지음, 지식프레임 펴냄
“언제부터인가 학교폭력 문제에서 학교는 학습된 무력감에 빠져버렸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학교폭력이 교육이 아닌 정치, 법률의 논리로 다뤄지기 시작한 지 너무 오래되었다. 화해와 반성 대신 민원과 소송의 늪에 빠져버린 학교폭력 앞에서 교육 공동체는 집단으로 외상후 스트레스장애(PTSD)를 앓고 있다. 현직 초등학교 교감, 교육청 학폭 전담 변호사, 학폭 NGO 단체 활동가 등 학폭과 관련된 현장 전문가들이 모여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방안을 모색했다. 근본적 해결책은 결국 ‘교육적 접근’이 전제되어야 나온다는 공감대 아래, 다양한 사례와 경험, 대안과 노하우를 세밀하게 담았다. 학폭 업무를 담당한 교사뿐 아니라 정책 입안자, 교육청 담당자, 심의위원, 학교 전담 경찰관, 예비 교사, 학부모들에게도 유익할 책이다.
로컬 씨, 어디에 사세요?
서진영 지음, 온다프레스 펴냄
“누가 내일의 내 이웃이 될까?”
‘지방’과 ‘지역’을 섞어 쓰다가 언젠가부터 ‘로컬’이라는 말을 썼다. 지방이라는 말(서울 이외의 지역)에 담긴 기울어진 이미지를 털어내려는 의도였을 수 있다. 저자는 로컬이라는 표현에서 지역성의 상실을 느끼기도 했다. 여기도, 저기도 로컬이라 이름 붙이기 바빴다. 경리단길을 본뜬 ‘O리단길’이 전국으로 확산되는 것처럼 한 지역의 성공 사례를 빠르게 복사하여 붙여넣는다. 저자는 ‘담론으로서의 로컬’ 대신 ‘실체로서의 로컬’에 대해 말한다. 6개월 남짓 춘천의 곳곳을 계속해서 걷고 사람을 만났다. 이동할 때는 대중교통을 이용했다. “그래야 도시 전반을 ‘인간의 감각’으로 훑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춘천을 구석구석 누비는 동안 ‘나는 어디에서 어떻게 살고 싶은가’ 자주 묻게 된다.
뗏목
조천현 지음, 보리 펴냄
"오늘도 나는 강가에 서서 뗏목이 올 때를 기다립니다."
다큐멘터리 PD 조천현은 독특한 사람이다. 1997년부터 압록강, 두만강을 다니며 우리 민족에 관한 내용을 주제로 영상과 사진을 찍고 있다. 접경지대에서 만난 북한 사람 이야기를 주로 담았다. 탈북자 문제를 끈질기게 취재해 (예전에 볼 수 없던) 탈북자 이야기를 다룬 책을 출간하기도 했다. 이번에는 압록강의 뗏목 이야기를 펴냈다. 2004년 여름, 압록강에서 뗏목을 처음 만난 이래 그는 뗏목에 꽂혔다. 언제 올지 모를 뗏목을 기다리며 사진을 찍었다. 그 가운데 102점을 골라 사진 에세이로 출간했다. 한반도에서 가장 긴 강인 압록강을 따라 흐르는 ‘뗏목’과 ‘뗏목꾼’들의 삶을 생생히 기록한 책이다. 그는 언젠가 압록강 뗏목꾼들과 술 한잔 마시며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말했다.
나는 동물
홍은전 지음, 봄날의책 펴냄
“그것은 인간의 확장이 아니라 인간밖에 모르던 세계의 무너짐이다.”
우리는 인간이고, 동시에 동물이다. 당연하면서도 낯선 말들이 한 권의 책으로 도착했다. 홍은전은 서성이는 사람. ‘감히’ 그렇게 말해도 좋은지 수없이 고민하고 여러 날을 씨름한 이야기들을 〈나는 동물〉 안에 켜켜이 쌓아두었다. ‘다르게’ 보고 듣고 말하도록 자신의 세계를 확장시킨 존재들에 대한 경이와 실천을 담았다. “세상에서 가장 만연한 차별인 비장애중심주의와 인간중심주의에 맞서는 존재들의 이야기”를 묶어낸 이 책은 〈이규식의 세상 속으로〉 〈전사들의 노래〉 〈유언을 만난 세계〉 〈집으로 가는, 길〉 〈짐을 끄는 동물들〉 등으로 이어지고 확장된다. 언제나 ‘더’ 읽을 것과 알아야 할 것을 남기는 책은 귀하다.
이것도 제 삶입니다
박채영 지음, 오월의봄 펴냄
“고로, 질병은 어떤 결말이 아니라 새로운 소통의 시작일 수 있다.”
섭식장애는 가장 오해받는 질병 중 하나다. ‘다이어트에 미친’ 여자들이 겪는 부작용이라는 시선이 그렇다. 저자는 15년 동안 섭식장애와 살아가는 당사자다. 섭식장애라는 병을 ‘관계’로 풀어가려는 시도인 영화 〈두 사람을 위한 식탁〉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어린 시절, 급변하는 주변과 무관하게 흔들림 없이 나를 지키고 싶었고 몸은 내 의지로 바꿀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대상이었다. “꺼내지 못한 에너지를 분출하기 위해 선택한 발악”에 가깝다고 저자는 말한다. 누군가의 병을 이해하는 것은 그 사람의 세계를 들여다봐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질병으로 확장된 삶의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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