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 말고 ‘모모’…“사랑하는 걸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장수경 2023. 11. 24.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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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 ‘부모 말고 모모’ 낸 로진느 마이올로
동성 부부의 출산을 다룬 책 ‘부모 말고 모모’의 저자 로진느 마이올로(왼쪽)와 나탈리, 그들의 딸 쥘리에트. 사계절 출판사 제공

‘모모’(엄마 두 명이 양육자인 가정).

지난 6월 동성 부부인 김규진·김세연씨가 벨기에에서 정자 기증을 받아 임신했다는 사실이 공개돼 화제가 됐다. ‘부모’라는 말이 익숙한 사회에서 ‘모모’ 가정을 꾸린 것이었다. 석 달 뒤 규진씨는 딸 라니를 출산했으나, 또 다른 엄마인 세연씨는 법적으로 라니의 엄마가 아니다. 한국은 동성 결혼을 법적으로 인정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규진씨가 현재 겪고 있는 일들을 이미 10년 전에 겪은 프랑스인 부부가 있다. 로진느 마이올로와 나탈리다. 로진느는 2008년 나탈리와 사랑에 빠진 뒤 자신의 “세계가 무너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는 그동안 남편과 아이가 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던 터였다. 하지만 사랑에 빠진 로진느는 자신의 ‘가족 구성원’으로 ‘남편’ 대신 ‘아내’를 넣고, 자녀를 출산하기로 했다. 

로진느 부부가 임신·출산을 하며 겪은 ‘과거’는 한국에서 동성 출산, 비혼 출산을 원하는 여성들에게 놓인 ‘현재’다. 그는 아이 출산을 위해 스페인행을 택했던 과정과 직접 출산을 하지 않은 또다른 엄마 나탈리가 아이와 가족이 되기 위해 입양을 선택해야 했던 상황 등을 지난달 출간된 ‘부모 말고 모모’(사계절 출판)에 고스란히 담았다.

이 책의 저자 로진느는 지난 21일 저녁 한국의 독자 40여명 그리고 ‘가족구성권 3법’(혼인평등법·비혼출산지원법·생활동반자법)을 발의한 장혜영 정의당 의원과 온라인에서 만났다. 로진느는 이 자리에서 “논란이 될 수 있는 이야기지만, 많은 사람이 동성 부모의 모습을 보는 것이 (차별을 막는데)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며 출간 이유를 밝혔다.

2020년 프랑스에서 출간된 책의 원제는 ‘무법자 엄마들’(Mamans hors-la-loi)이다. 사회가 ‘법 밖으로 밀어낸’ 엄마들의 이야기란 뜻이다. 당시 프랑스가 동성 결혼을 허용하면서도, 동성 부부의 재생산권을 허용하지 않고 있던 상황을 반영한 것이다.

로진느는 “사랑하는 사람과 가족을 만들고 싶다는 이유로 따돌림 당하거나 법을 위반하고 싶은 사람은 없다”며 “나는 프랑스를 사랑하기 때문에 프랑스가 (동성 부부의) 보조생식술을 금지한다기보다 아직 허용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로진느는 “동성 부모로서 아이를 가질 권리가 있는지, 레즈비언 엄마가 될 자격이 있는지 자신에게 끊임없이 질문”했다. 자문의 결과는 “그렇다”였다. 규진씨가 2022년 한국이 아닌 벨기에행을 택한 것처럼, 로진느는 2013년 국경을 넘어 스페인으로 향했다. 로진느처럼 임신을 원하는 프랑스 여성들이 ‘대상자의 성적 지향’에 상관없이 보조 생식술을 허용하는 유럽 국가로 떠나는 일이 많아, 오죽하면 벨기에 난임센터로 향하는 기차에 ‘베베 탈리스’(아기 열차)란 별명이 붙을 정도였다.

로진느 부부는 2014년 6월 3.24㎏인 딸 쥘리에트(가명)를 얻었다. 나탈리와 아이를 갖기로 약속한 지 3년여 만이었다. 직접 아이를 낳은 로진느와는 달리, 나탈리는 법적 엄마로 인정받는 데 17개월이 걸렸다. 쥘리에트와 혈연관계가 아니라는 이유로, 입양이라는 절차를 통해서였다. 법적 엄마가 되기 전까지 나탈리는 그저 ‘허가받은 제3자’로서 쥘리에트와 함께 할 수 있었다.

2020년, 로진느 부부는 또다시 국경을 넘어 아들을 낳았다. 그로부터 1년 뒤, 프랑스는 비혼여성과 동성 커플에게도 보조생식술을 허용했다. 로진느는 “오랫동안 기다려왔고, 또 오랜 시간에 걸려서 이루어진 변화였다”며 “최근엔 ‘모모’ 가정이라고 공개하면 ‘엄마가 두 명이구나 멋지네’라며 다음 대화 주제로 넘어갈 정도(로 사회가 바뀌었다)”라고 말했다.

21일 저녁 온라인에서 한국 독자들과 만난 로진느(오른쪽)와 장혜영 정의당 의원. 사계절 출판사 제공

현재 한국에선 동성 결혼이 법적으로 인정되지 않고 있다. 비혼 여성이 보조생식술을 받는 것도 마찬가지다. 불법은 아니지만, 산부인과학회가 윤리지침으로 법률혼·사실혼 관계인 여성에게만 시술하도록 하고 있다. 성적지향·나이·종교 등의 이유로 고용이나 교육 등을 받을 때 차별받지 않도록 하는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17년째 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하고 있다.

장혜영 의원으로부터 이런 상황을 전해 들은 로진느는 “프랑스에서도 (동성혼이나 동성 부부의 보조생식술 허용하는) 법이 통과되기 전엔 일부 정치인이나 국민이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끔찍한 시위도 했지만, 법이 바뀐 뒤 성숙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며 “외로운 싸움이겠지만 포기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그는 “프랑스에서도 동성 커플이 함께 살고, 결혼하고, 아이 낳는 것이 허용되는 데 22년이 걸렸다”며 “더디더라도 결국 평등한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다”고 웃었다.

로진느는 이어 “한국에서도 최근 한 여성이 다른 여성과 함께 아이를 낳았다는 소식을 들었다”며 “이미 사회가 여러분을 인정하고 있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국경을 넘어야 하더라도, 사랑하는 이와 자녀를 낳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부모가 간절히 원해서 태어난 아이는 사랑받고 행복할 수 있다”고도 했다.

프랑스 사회가 서서히 변하는 동안 로진느 부부의 딸 쥘리에트는 9살, 아들은 4살이 됐다. 로진느는 나탈리와 이혼했다. 하지만 이들은 다른 이혼 부부처럼 근처에 살며 자녀를 함께 돌보고 있다. 로진느는 “다른 전통가족처럼 동성 부부도 이혼하는 일은 흔하다”며 “나의 자녀들은 사회가 변하는 동안 함께 자라고 있다”고 말했다.

아래는 장혜영 정의당 의원과 로진느의 대담.

장: 얼굴과 이름, 그리고 자신의 이야기를 세상에 드러낸 용기의 근원은 뭔가.

로: 내가 사랑하는 프랑스가 앞으로 나아가는 데 기여하고 싶었다. 더 이상 우리가 숨지 않고, 사회가 동성 부부와 동성 부모를 따뜻하고 차분한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돕고 싶었다. 이 책이 다른 나라 특히 한국 사회를 변화시키는 데 기여할 수 있다면 기쁠 것 같다.

장: 한국에서는 동성 결혼이나 비혼출산 등 가족구성권이 제대로 보장되지 않고 있다. (우리가 꿈꾸는) 미래가 다른 나라에 존재하고 있다는 걸 생생하게 공유할 수 있어서 기뻤다. 지난 5월 가족구성권 3법을 발의했는데, 국회에서 다른 의원들의 동의를 받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로: 의원님의 활동과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대단한 일이지만 얼마나 외로울지 짐작이 된다. 동성 커플에게 동일한 권리를 보장하는 것을 반대하는 국회의원들의 주요 논거는 뭔가.

장: 종교적 이유가 대부분이다. ‘성경이 동성애를 부정하기 때문에 동성애는 안된다’ ‘신의 섭리에 맞지 않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동성애 때문에 출생률이 줄어든다’거나 ‘동성애를 차별하지 못하도록 하는 건 동성애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을 역차별하는 것’이라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국회의장조차 저출생 해결책으로 ‘동성애 치유 운동’을 얘기하고 있는 것이 안타깝게도 지금 한국 국회의 수준이다. 하지만한국 국회의원 300명 모두 그렇게 여길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로 : 의원님이 하는 투쟁을 포기하지 않았으면 한다. 프랑스에서도 (동성혼이나 동성부부의 보조생식술 허용하는) 법이 통과되기 전엔 일부 정치인이나 국민들이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끔찍한 시위를 했다. 하지만 법이 바뀐 뒤엔 이에 반대했던 사람들도 모두 성숙한 태도를 보였다. 프랑스 의회에는 하원 의원 577명, 상원 의원 348명이 있는데 이 중 63%가 남성이다. 양성평등과 관련해서 한국 상황은 어떤가.

장 : 한국은 전체 국회의원 300명 중에서 여성 국회의원 비율이 19%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 최하위권이다. 작가님의 긍정적인 태도를 모방해 ‘한국 사회가 이렇게 문제가 많구나’라기보다는 ‘앞으로 우리가 바꾸어 나갈 현실이 이렇게 남아 있구나’라고 생각해야겠다.

로 : 한국에서는 동성 결혼이나 보조생식술을 허용하는 게 이성 커플의 권리를 뺏는 게 아니라는 주장에 어떻게 반응하나. 낮은 출생률에 도움 될 거라고 생각하나. 

장 : 프랑스에서도 한국의 낮은 출생률이 화제인 모양이다. 비혼 출산의 문제는 사람들에게 큰 거부감으로 받아들여지진 않는 것 같다. 특히 당사자인 여성들은 하나의 ‘선택’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하지만 동성 결혼은 차별금지법 제정과 결부돼 동성 결혼에 반대하는 사람에게 불이익이 있을 수 있다는, 일종의 무지에서 오는 불안이 있는 것 같다.

우려스러운 건 김규진씨의 임신과 출산이 기사화됐을 때 아이에 대한 차별을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점이다. 차별이 문제라면 차별하는 사회를 바꿔야 하는데 차별받을 아이를 낳는 부모가 문제라는 식으로 여성을 비난하는 사회는 바꿔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국에도 비혼 출산을 꿈꾸는 여성들이 있다.

로 : 그들이 사랑하는 일을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국경을 넘어야 하더라도 주저하지 마셔라. 부모가 간절히 원해서 태어난 아이는 행복할 수 있다. 한국에서도 최근 한 여성이 다른 여성과 함께 아이를 낳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미 사회가 여러분을 인정하고 있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변화가 아주 더디게 일어날 수 있다. 하지만 평등한 방향으로 변화가 일어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프랑스에서도 동성 커플이 함께 살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 것이 허용되는 데 22년이 걸렸다.

장 : 1년 안에 다하고 싶다.(웃음) 변화는 더디게 일어날 수 있지만 분명히 평등한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다는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작가님이 책을 쓸 당시만 하더라도 프랑스에서 동성부부의 보조생식술 허용이 안 됐는데, 지금은 허용됐다. 변화 만들어낸 힘은 뭔가.

로: 가장 큰 힘은 시간이다. 사회가 변하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는 걸 받아들여야 한다. 변화를 위해서는 장 의원처럼 용기 있는 사람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프랑스에선 오랫동안 이혼이 금지됐던 시절도 있다. 하지만 프랑스인들은 계속해서 사랑하고 헤어졌다. 이렇듯 사람들이 사는 방식에 발 맞추고 또는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법이 변화하는 순간이 올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장수경 기자 flying710@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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