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최대주주 믿었는데”... 정크본드 수백억 베팅한 채권 개미들 ‘날벼락’
최대주주 유암코 “개인도 고통 분담 필요” 채무재조정 제안
채권 개미들 “주주보다 더 큰 책임 물려... 자본주의 원칙 위반” 반발
신용등급이 낮은 아스트(BB-) 채권에 대박을 노리고 투자한 채권 개미들이 손실 위기에 처했다. 새로운 최대주주인 연합자산관리(유암코)가 회사채를 전부 갚지는 못하겠다며 집단 채무 재조정을 제안하자 회사와 개인 채권자 간 갈등이 증폭되는 양상이다.
한때 미국 보잉사에 납품할 정도로 기술력을 인정받던 아스트는 코로나19 이후 대규모 적자와 부채만 남은 부실기업이 됐다. 생사기로에 놓인 아스트는 금융채권단 주도로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진행하고 있는데, 기업 정상화를 위해선 개인 채권자도 고통 분담이 필요하다고 호소한다. 아스트는 그동안 기업 구조조정이 있었던 다수 기업과 달리 주주 대상의 감자 등을 진행하지는 않았다. 이 때문에 채권 투자자들은 “회사채 투자자가 더 손실을 입게 됐다”고 반발한다.
24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내달 6일 아스트는 사채권자집회를 열 예정이다. 아스트 9회차, 11회차 신주인수권부(BW)를 가진 개인 채권자들이 모여 남은 돈을 어떻게 상환받을지 결정하는 자리다.
아스트는 회사가 어려우니 일정 부분 채무를 줄여달라며 세 가지 안을 제시했다. 여기서 가장 많은 표를 받은 안을 가결하는 게 목적이다. 주주총회와 비슷하게 채권자 중 3분의 1 이상 참석해야 하며, 참석자 중 3분의 2 이상 동의를 얻어야 한다.
아스트는 지난 7월부터 워크아웃에 돌입했다. 당시 아스트 11회차 BW 채권자들이 만기 전에 돈을 달라며 풋옵션을 행사했는데, 회사가 이를 갚지 못했기 때문이다. 11회차 BW(400억원)에 이어 9회차 BW(300억원)도 동시에 부도 처리됐다. 두 BW를 갖고 있는 개인 채권자는 3000여명 정도로 추산된다.
아스트는 코로나19 이후 재무구조가 급격하게 어려워졌다. 지난해 연결 기준 영업손실 190억원, 당기순손실 376억원을 기록할 정도로 실적이 나빠졌다. 부실기업 상태에서 올해 3월 NPL(부실채권) 및 구조조정 전문 회사인 유암코의 100% 자회사 알파에어로(지분 44.13%)가 최대주주로 올라섰다. 주인이 바뀐 지 4개월 만에 워크아웃을 밟게 된 것이다.
워크아웃은 회사에 빚이 많아 회생하기 위해 금융채권단 중심으로 각종 구조조정을 실시하는 과정을 의미한다. 금융채권단이 보유한 것으로 추정되는 협약채권이 3000억원, 개인 채권자가 보유해 상환으로 갈등을 빚고 있는 비협약채권은 400억원 정도다.
통상 개인 채권자는 일반 채권자로 분류돼 워크아웃 과정에서도 채권을 전부 상환받곤 했다. 채권자 수가 적고, 채무 규모가 크지 않아 금융채권단이 비협약채권을 먼저 정리하는 게 잡음이 없었기 때문이다. 관행과 달리 아스트 워크아웃을 주도하는 금융채권단은 개인 채권자에게 세 가지 안을 제시했다. 요약하자면 회사채 상환에 돈을 전부 쓸 수 없으니, 액면가의 85% 정도만 상환받는 게 어떠냐는 내용이다.
예상과 달리 돈을 전부 돌려받을 수 없게 되자 개인 채권자들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아스트 BW 가격이 폭락했을 때 사들인 개인들은 최대주주가 유암코라는 것, 최악의 경우 금융채권단에서 상환할 것이라고 믿고 투자한 이가 대다수”라고 전했다.
개인 채권자들이 상환을 예상한 이유는 당초 채권자, 주주 간 권리가 달라서다. 채권자는 회사의 손익과 상관없이 고정된 원리금만 받는 소극적 투자자로 분류된다. 이익, 배당과 상관없이 정해진 원리금만 받기에 회사 청산 시에도 최우선 변제권을 갖고 있다. 회사가 망하더라도 상환받을 게 있다는 의미다.
주주가 아니라 일반 채권자에게 고통을 분담하는 건 순서부터 어긋났다고도 주장한다. 즉 주식 감자, 증자 등 주주 중심의 자구 방안이 선행돼야 하는데, 이 과정을 건너뛰었기 때문이다. 한 아스트 BW 채권자는 “후순위 변제권을 가진 주주들은 제외하고, 선순위 변제권을 가진 회사채 투자자에게 원금손실을 제안하는 건 자본주의 원칙에 어긋나는 일”이라며 “이럴 거면 회생절차를 밟았어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개인 채권자만큼 소액주주들도 고통받고 있는 건 마찬가지다. 아스트 주가는 올 초 4000원대에서 움직이다가 1300원으로 추락했다. 시가총액은 587억원 수준인데, 하루 거래량이 적어 보유 물량을 팔기도 어려운 상태다. 지난해 말 기준 소액주주 수는 2만여 명으로 추산된다.
유암코 측은 비협약채권을 전부 갚기엔 회사가 생사기로에 놓인 상태여서 불가능하다고 토로한다. 개인도 금융채권자로 볼 수 있어 회생 과정에서 고통 분담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금융채권단의 경우, 출자 전환 비율을 높이고 상환을 유예하는 안을 협의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회수 기간은 더 길어지고, 돈을 받지 못할 가능성도 커진다. 이와 비교하면 개인 채권자는 더 나은 선택지를 받았다는 설명이다.
현재 회사가 어려운 건 전 경영진의 잘못이기에 차등감자 등으로 현 대주주에게 책임을 지우는 건 과도하다고도 밝혔다. 실제 2016년 현대상선 구조조정 당시 채권단은 현정은 전 현대상선 회장의 책임을 물으며 대주주의 7대1 무상감자를 요구한 바 있다. 2013년 STX조선해양, 2014년 동부제철 구조조정 당시에도 대주주의 차등 감자가 진행됐는데, 이렇게 책임져야 할 구조조정 사례와는 다르다는 것이다.
회사 관계자는 “아스트 회생을 위해 가장 많은 돈을 투입하고, 갖은 노력을 다하고 있는 건 유암코이며 앞으로 가장 많이 돈을 써야 하는 주체도 유암코”라며 “전 경영진이 망친 회사를 살리고자 들어온 건데, 대주주 책임 감자를 하라는 건 앞뒤가 안 맞는 주장”이라고 반론했다.
한편 개인이 보유한 비협약채권에 대해 권리 변경이 진행되지 않을 경우, 아스트는 법정관리로 갈 가능성이 크다. 법정관리는 신용등급 추락, 더 강도 높은 구조조정이 수반되고 회사채 투자자들의 피해도 불가피하다.
법조계 관계자는 “통상 워크아웃은 금융기관 중심으로 금융채권을 대상으로 하기에 일반 채권은 대상이 아니지만, 사안에 따라 다를 수 있다”며 “워크아웃 절차에서 문제가 생기면 회생 절차에 들어가는데, 이때 회수할 수 있는 금액이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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