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가, '내부통제' 리스크 해법 CEO 세대교체…떠나는 올드보이들
미래·메리츠도 60대 진입하는 장수 CEO 퇴장 이어져
"단순 세대교체 아닌 새로운 문화 필요"
네트워킹과 영업력에서 내부통제로 과제 이동
[이데일리 김인경 기자] 올드보이들의 퇴장이다. 지난 1990년대부터 최근까지 한국 자본시장을 이끌어온 주요 증권사 대표이사가 연이어 일선에서 물러나고 있다. 잇따른 사건사고들로 업계 전반에 내부통제와 리스크 관리가 부실하다는 지적이 이어지자 증권사들이 위기를 타개할 해법으로 리더십 교체 카드를 꺼내들면서다.
장수 CEO들이 물러난 자리는 60년대 후반생인 새로운 인물들이 채워가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들 후임 최고경영자(CEO)들의 최우선 과제는 내부통제 강화가 될 것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23일 한국금융지주(071050)는 이사회를 열고 김성환 한국투자증권 개인고객그룹장(부사장)을 신임 사장으로 내정했다. 그동안 한국투자증권을 이끌던 정일문 사장은 부회장으로 승진한다.
내년 1월 신임 사장이 될 김 내정자는 1969년생이다. 고려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한 후 1994년 교보생명보험에 입사해 LG투자증권을 거쳐 2004년 한국투자증권에 합류했다. 김 내정자는 자타공인이 인정하는 기업금융(IB) 전문가로 2019년부터는 개인고객그룹장까지 맡으며 동학 개미 시대에 리테일과 자산관리에 성공했다는 평을 듣고 있다.
올해 54살인 김 내정자가 한국투자증권을 이끌게 되면서 1964년생인 정일문 사장(59)은 증권 경영 일선에서는 한발 물러난다. 정 사장은 한국투자증권 ‘원클럽맨’으로 지난 2019년부터 5년간 대표이사로 한국투자증권을 이끌어온 인물이다.
국내 주요 증권사를 이끌고 있는 다수의 CEO는 모두 1960년대 초반에 태어난 80년대 초반 학번으로 그간 주목을 끌어왔다. 미래에셋의 경우 개국공신인 최현만 회장(1961년생)과 이만열 미래에셋증권 사장(1964년생)이 주도권을 쥐고 그룹을 키워왔고, 메리츠증권 역시 최희문 부회장(1964년생)이 성과 중심 문화를 앞세워 13년간 진두지휘해왔다. 조직을 성장시키고 키워 온 이들은 최근 모두 용퇴를 결정했다.
대신 1960년대 후반에 태어난 새 인물들이 지휘봉을 받았다. 미래에셋은 글로벌 프로젝트를 이끌어온 김미섭 부회장(1969년생)이 대표이사직을, 메리츠증권은 장원재 신임 대표이사(1967년생)가 14년 만에 새로운 수장을 맡게 됐다.
증권가는 올해 유독 세대교체의 바람이 거셀 것으로 보고 있다. 박정림·김성현 KB증권 사장과 김상태 신한투자증권 사장이 올해 말로 임기를 마치며 정영채 NH투자증권 사장과 장석훈 삼성증권 사장의 임기는 내년 3월까지다. 또 오익근 대신증권 사장과 박봉권 교보증권 사장, 홍원식 하이투자증권 사장, 곽봉석 DB금융투자 사장, 김신 SK증권 사장 등도 임기 만료를 앞두고 있다.
이 가운데 금융위원회는 이르면 이달 29일 예정된 정례회의에서 사모펀드 불완전판매 사태 영향권에 있는 금융사 임원에 대한 제재 수위를 결정한다. 박정림 KB증권 대표, 정영채 NH투자증권 사장은 징계 수준에 따라 자리를 내놓아야 할 가능성도 있다. 금융위는 최근 박 대표에 대해서는 기존 제재 수위인 ‘문책 경고’보다 높은 ‘직무 정지’ 처분을 받을 수 있다고 사전 통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만일 ‘문책 경고’ 이상 제재가 확정되면, 제재 대상은 연임 및 3~5년간 금융권 취업이 제한된다.
규모의 경제 끝내고…관건은 ‘내부통제’
시장에서는 이번 세대교체가 단지 ‘나이가 어린 수장’으로 CEO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자본시장의 흐름을 바꿀 ‘변곡점’이 될 수 있다는 평가다. 기존 수장들의 끈끈한 네트워크와 영업력을 거름 삼아 사업을 확대하고 몸집을 불려온 증권사들이 내부통제와 혁신에 중점을 둘 때라는 얘기다.
실제로 지금까지의 CEO들은 자본시장의 규모가 커지는 시기에 증권업에 입문한 만큼, 증권사를 빠르게 성장시키는 데 주력해왔다. 최현만 회장의 경우 미래에셋캐피탈·미래에셋생명·미래에셋증권 등 주요 계열사의 CEO를 26년간 역임하며 미래에셋증권을 2021년 금융투자업계 최초로 자기자본 10조원의 거대 금융투자회사로 이끌었다. 최희문 회장은 메리츠증권이 6년 연속 사상 최대 실적을 경신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그러나 투자 인구가 확대하는 등 시장이 커지고 불완전 판매와 영업, 시세조종 등 잇따른 사건이 터지면서 증권사들의 내부통제가 핵심 경쟁력 중 하나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최근 금융당국은 건전하고 선진적인 자본시장 조성을 내세워 증권사들을 향해 매서운 칼날을 휘두르고 있다. 올해에만 차액결제거래(CFD) 등의 금융투자상품을 불건전한 방식으로 영업해온 정황이나 부실 프로젝트파이낸싱(PF) 꺾기 행위 등이 포착된 탓이 컸다. 증권가에서도 규모를 키우는 시대를 넘어 내실을 다지고 내부 통제를 해야 하는 시기로 진입해야 한다는 자성이 커졌다.
시기적으로도 미국의 고금리 장기화에 따른 역대급 위기가 지나고 내년부터는 금리 인하 등 우호적인 시장 환경에 진입할 것으로 보이는 만큼, 세대교체를 통해 새로운 동력을 넣기 좋은 시점이기도 하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증권사들이 연달아 세대교체에 나서는 것은 한 기업만의 이슈가 아니라 여의도 전반에 새로운 인물이 필요하다는 방증”이라며 “이제까지 증권사들이 규모를 늘리고 자본시장을 성장시키는 데 주력했다면 이번에 바통을 받는 신임사장들은 내실을 다지고 안정적인 기업문화를 안착시켜 자본시장의 영속성을 도모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김인경 (5tool@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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