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위한 전공의 조정인가?…빅5도 지방도 "정부 숫자놀음"
"필수의료 전공의에 확실한 인센티브 줘야"
(서울=뉴스1) 천선휴 기자 = "지금 선생님들 골머리 앓고 있어요. 전공의(레지던트) 배정 비율이 조금 조정됐다고 하지만 현장에선 그렇게 느끼지 않아요. 한 명 한 명이 소중하거든요. 이번에 전공의 배정을 받으면 1년 후에 또 받을 수 있잖아요. 한숨 나오죠."
수도권 수련병원들이 수도권과 비수도권 전공의 비율 조정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다음달 초 진행되는 2024년 전공의 전기 모집을 앞두고 배정된 전공의 수를 확인한 진료과들도 희비가 엇갈리는 모양새다.
특히 소위 빅5로 불리는 서울의 상급 종합병원은 이번 조정으로 큰 타격을 입지 않았지만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수련병원들은 볼멘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최근 보건복지부는 수련환경평가위원회를 통해 내년도 수도권과 비수도권에 배정되는 1년차 전공의 정원을 기존 6대4 비율에서 5.5대4.5로 조정하는 방침을 정했다. 복지부의 이 같은 결정은 지난 1월과 10월 필수의료 체계 구축을 위한 지원 대책에 따른 것이다.
복지부는 당시 '전공의 수련·배정 체계를 개선해 지역‧필수 분야 경험 기회를 확대하고 필수진료 과목의 수련비용도 국가에서 지원한다'며 비수도권 배정 비율을 기존 40%에서 50%로 확대하는 방안을 발표한 바 있다. 6대 4 비율을 5대 5로 조정한다는 것이었다.
수도권에 비해 젊은 의사들이 잘 가지 않는 비수도권 전공의 정원을 강제로 늘려 지방 병원을 살리고, 그 병원의 필수의료 인력 또한 유입시키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5대 5 조정은 현장 상황을 전혀 반영하지 못한 허무맹랑한 대책이라는 의료계의 거센 반발이 이어지면서 복지부는 5.5대 4.5로 비율을 재조정해 내년 전기 모집부터 적용하기로 했다.
복지부는 각 수련병원이 신청한 전공의 정원과 지도전문의 수, 실적 등을 토대로 수도권 정원을 비수도권 소재 국립대병원에 우선 배정했다.
이 비율 조정으로 2024년도 전공의 정원은 기본정원 3204명 중 54.6%인 1750명은 수도권에, 45.4%인 1274명은 비수도권에 배정된다.
더불어 복지부는 갑작스레 정원이 줄어든 수도권 수련병원을 달래기 위한 당근책으로 기본 정원 외로 책정하는 '별도 정원'을 수도권에 더 할당하기로 했다.
지난해 314명이었던 별도 정원이 올해 304명으로 줄었지만, 수도권에는 68.1%(207명), 비수도권은 31.9%(97명)을 배정했다. 전년도는 수도권은 174명, 비수도권이 140명이었다. 이를 포함하면 수도권과 비수도권 비율은 각각 55.2%(1957명)과 44.8%(1551명)으로 달라진다.
수도권 수련병원들은 그나마 별도 정원 배치를 늘려 상급종합병원은 큰 타격을 입지 않았다고 입을 모은다. 실제로 빅5병원을 제외한 수도권 소재 상급종합병원 1곳당 평균 전공의 총 정원은 3.5명 줄어든 반면, 빅5병원은 1곳당 2.4명이 줄었다.
특히 수도권의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수련병원의 일부 과는 비수도권에 정원을 뺏긴 데다 별도 정원도 받지 못해 전공의를 1명도 받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상계백병원 이비인후과의 경우 전공의 1명씩을 받아왔지만, 전년도에 이어 올해마저 전공의를 받지 못하게 됐다. 지난해엔 전공의를 배정받지 못한 수련병원에 정원을 양보하는 학회 정책에 따라 정원을 양보했지만, 올해만큼은 전공의를 받아야 했었다.
정신건강의학과의 경우 수도권 2개 병원에서 정신건강의학과 전공의가 한 명씩 감원됐다는 점을 들어 대한신경정신의학회에서 입장문까지 내며 정책을 비판하고 나섰다.
이들은 "두 병원은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정부의 정책적 목적으로 병동 운영을 중단하고 의료진을 파견했는데, 이로 인한 진료실적 미달로 감원 조치당했다"며 "국가 중대 위기 상황 속에서 협력한 결과가 전공의 배정 감축으로 이어졌다"고 비판했다.
문제는 전공의 모집 기간을 불과 몇 주 앞둔 상황에서 복지부의 통보로 날벼락을 맞은 수도권 병원들만 불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정부가 이 같은 조치를 내린 이유인 지방의 필수의료 과들도 불만이 있긴 매한가지다.
지방의 종합병원에서 필수의료과를 담당하고 있는 한 교수는 "6 대 4 비율도 유명무실할 정도로 지방의 필수의료 인력은 채우기 쉽지 않은 상황인데 단순히 숫자를 조정한다고 해서 안 올 인력이 오겠냐"며 "외려 수도권에서라도 필수의료를 하겠다는 전공의들마저 차라리 가느니 그만두게 만드는 현상을 초래할 것"이라고 지적하며 이번 모집 결과에서 이 같은 문제가 여실히 드러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필수의료는 지방에 내려가서까지 할 만한 매력 있는 과가 아니고, 심지어 빅5병원도 필수의료과는 전공의 정원을 못 채우고 있는 실정"이라며 "정부는 정원이 수도권은 많고 비수도권은 적어서 생기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부터 인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 8월 마무리된 2023년 하반기 전공의 모집 결과를 살펴보면 소아청소년과, 산부인과, 외과, 응급의학과, 흉부외과 등 5개 비인기 필수과목의 전공의 모집 비율은 수도권 73.1%(400명), 비수도권 26.9%(147명)로 집계됐다.
문제는 수도권과 비수도권이 7대 3의 격차를 보이고 있는데도, 이 시기 빅5병원에서도 미달된 필수의료과가 속출했다는 점이다.
당시 서울대병원은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16명 모집에 13명 지원으로 경쟁률 0.8 대 1, 훙부외과는 정원 4명 모집에 1명이 지원해 0.3 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삼성서울병원도 소아청소년과, 흉부외과 각각 0.8대1의 경쟁률을 보였다.
세브란스병원의 상황은 더 심각했다. 소아청소년과는 11명 모집에 지원자 0명을 기록하는 처참한 결과가 나왔다. 흉부외과도 4명 모집에 1명 지원, 산부인과는 10명 모집에 4명이 지원했다. 외과는 15명 모집에 9명, 응급의학과는 6명 모집에 5명이 지원했다.
빅5병원에서 필수의료 진료를 하는 한 교수는 "지금 이 큰 병원에서도 전공을 하겠다는 젊은 의사가 없는 마당에 지방병원과 필수의료를 살리겠다며 희한한 논리로 수도권 전공의를 줄여버리면서 다른 과들까지 쑥대밭이 돼 버렸다"면서 "이게 무슨 숫자놀음인지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박명하 서울시의사회장도 "인기 좋은 과는 경쟁률이 워낙 높으니 지방이건 서울이건 다 차겠지만 필수과는 그렇지 않다"며 "오히려 수도권에라도 전공의 지원을 하는 게 좋은 방안인데, 수도권 정원을 빼서 지방에 보낸다는 건 무슨 정책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배진곤 계명대 동산병원 산부인과 교수는 "무작정 인력 배치를 강제로 할 게 아니라 지방에 경쟁력 있는 과를 만들어주고 그에 따른 지원을 제대로 해줘야 한다"며 "수도권의 인력을 강제로 누르는 네거티브 방식이 아니라 지방에서 필수의료를 하겠다는 전공의들에게 확실한 인센티브를 주는 등의 긍정적인 방법으로 문제를 바라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sssunhue@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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