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억 만삭 아내-8억 계곡 살인 엇갈린 보험사기 사건[꾼들의세계]
※금융시장이 커질수록 그 속에 숨어드는 사기꾼도 많아집니다. 조 단위의 주가조작부터 수천억원에 이르는 횡령, 트렌드에 따라 아이템을 바꿔가며 피해자를 속이는 보이스피싱까지. 기발하고 대범한 수법은 때론 혀를 내두르게 만듭니다. ‘꾼들의세계’는 시장에 숨어든 사기꾼들의 수법을 들여다보는 경향신문 칸업(KHANUP) 콘텐츠입니다. 더 많은 내용을 읽고 싶으시면 로그인해 주세요!
#장면 1. A씨는 2014년 8월23일 오전 3시41분쯤 충남 천안시의 경부고속도로 하향방면 335.9㎞ 5차로(갓길)에서 안전벨트를 착용하고 승합차를 운전하다가 앞 우측을 8t 화물차 좌측 뒷부분에 들이받았다. 조수석에 있던 아내는 안전벨트를 착용하지 않은 상태에서 저혈량성 쇼크로 사망했다. A씨는 아내와 2008년 1월 결혼했고 그해 6월부터 2014년 6월까지 아내를 피보험자로, 수익자를 본인으로 하는 생명보험 25건에 가입했다. 월 보험료는 약 360만원, 사망보험금은 95억원이었다.
#장면 2. B씨는 2019년 6월30일 오후 8시쯤 경기 가평의 한 계곡에서 수영을 하지 못하는 남편에게 높이 4m 위 바위에서 다이빙을 하라고 했다. B씨의 남편은 입수한 후 물에서 허우적대다가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오후 10시17분쯤 물 흡입 익사로 사망했다. B씨는 2017년 3월 남편과 결혼했고 그해 8월에 남편을 피보험자로, 수익자를 본인으로 하는 생명보험 3건에 가입했다. 월 보험료는 약 30만원, 사망보험금은 8억원이었다.
A씨와 B씨 모두 살인과 사기(B씨는 보험사기방지특별법 위반) 등의 혐의로 형사재판에 넘겨졌습니다. 결과는 어땠을까요? A씨는 2021년 3월11일에 치사(교통사고처리특례법 위반) 혐의만 인정됐고 살인과 사기는 무죄를 확정받았습니다. B씨는 지난 9월21일 무기징역형을 확정받았습니다.
보험 사기 의혹이 제기된 대표 사례인 (캄보디아) 만삭 아내 살인 사건과 계곡 살인 사건입니다. 법원은 보험 사기, 즉 ‘보험금을 부정취득할 목적으로 체결한 보험계약’은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위반한 사항을 내용으로 하는 법률행위는 무효로 한다”는 민법 제103조에 의해 무효라고 판단합니다.
구체적으로 대법원은 부정취득 목적의 보험계약은 직접 증거가 없어도 보험계약자의 직업 및 재산상태, 다수 보험계약의 체결 시기와 경위, 보험계약의 규모와 성질, 보험계약 체결 후의 정황 등으로 추인(추정)할 수 있다고 판시했습니다. 특히 보험계약자가 경제 사정에 비해 고액의 보험료를 냈거나, 단기간에 여러 보험에 가입했거나, 보험모집인(설계사)의 권유를 받지 않았는데도 본인이 직접 나서서 계약을 체결했을 때 등을 유력한 간접 증거로 제시했습니다.
법원은 이런 기준에 근거해 A씨와 B씨의 보험사기 혐의를 달리 판단한 것으로 보입니다.
A씨는 1심 법원에서 무죄를, 2심에서 유죄(무기징역)를 선고받았는데 대법원은 무죄 취지로 파기 환송했습니다. 대법원 3부(주심 박병대)는 A씨의 월 수익이 생활용품점 900만~1000만원·대여금 이자 500만원·자판기 수익금 120만~150만원일 정도로 보험료와 생활비를 충당하는 데 부족함이 없었다는 A씨의 주장을 받아들였습니다. 보험료를 제때 내지 못해 계약이 실효된 일도 없었습니다.
A씨의 각 보험상품 계약이 2008년부터 2014년까지 매년 2~9건으로 다양했고, 아내와 결혼하기 전인 1999년 4월부터 이번 사건이 발생할 때까지 보험 가입 건수가 약 100건에 이른다는 점도 고려했습니다. 보험 가입 경위도 보험설계사들의 권유에 의한 게 많았습니다.
대법원은 “A씨는 피해자와 6년 동안 비교적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만 3세의 딸을 두고 있었고, 피해자가 아들을 임신해 기뻐했다”면서 “경제적으로 궁박한 사정도 없이 고의로 자동차 충돌사고를 일으켜 임신 7개월인 피해자를 태아와 함께 살해하는 범행을 감행했다고 보려면 동기가 좀 더 선명하게 드러나야 한다”며 사건을 대전고법으로 돌려보냈습니다.
B씨(이은해)는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후 감형받지 못했습니다. 공범인 내연남(조현수)도 1심의 징역 30년 선고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B씨는 남편이 사망했을 때 수익자를 자신으로 한 생명보험 3개를 같은 날 일괄 계약하면서 보험기간 만기를 최대 10년 단축했습니다. 보험료를 줄이기 위해서였는데 이마저도 납입기일을 맞추지 못해 7회에 걸쳐 계약 효력이 실효됐습니다.
남편이 죽기 전인 2019년 2월17일과 5월20일에도 범행을 시도했으나 실패했고(살인미수), 2017년 10월부터 2019년 6월까지 3회에 걸쳐 일본과 마카오 등을 여행하며 물품을 도난당했다는 내용의 허위 증빙자료를 만들었다가 적발돼(보험사기특별방지법 위반) 벌금 700만원을 선고받기도 했습니다.
B씨와 공범은 혐의를 부인했지만 법원은 검찰의 공소사실을 모두 인정했습니다.
두 사건에 대한 민사재판도 속속 나오고 있습니다. 서울고법 민사27-2부(재판장 지영난)는 A씨와 그의 자녀가 라이나생명보험을 상대로 낸 2억원대 보험금 소송에서 지난 8월25일 1심을 파기하고 원고 승소 판결을 했습니다.
항소심에서 뒤집힌 1심 선고일은 지난해 4월13일이었습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9부(재판장 이민수)는 A씨가 아내를 고의로 죽인 게 아니라는 대법원 확정 선고(2021년 3월11일) 이후에도 보험사가 A씨에게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은 것은 정당하다고 본 것입니다. A씨가 고의로 아내를 죽이지는 않은 것과 별개로 A씨의 아내가 생명보험 상품을 정확히 이해하고 계약을 체결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보험사 손을 들어줬습니다.
1심 재판부는 “망인(A씨 아내)이 보험계약자가 A씨로 바뀐 2011년 5월17일까지 (외국인으로서) 상품 내용을 이해하지 못한 채 서명한 것으로 보인다”며 “상법 제731조 제1항의 서면에 의한 동의를 흠결해 무효”라고 판시했습니다.
반면 2심 재판부는 “망인이 2010년 11월15일 딸을 출산해 양육하고, A씨가 운영하던 생활용품점에서 손님 응대를 하면서 한국어 의사소통 능력이 빠르게 향상된 것으로 보인다”며 A씨의 주장을 받아들였습니다. 대법원에서 어떤 결론이 나올지 주목됩니다.
B씨는 신한라이프생명보험(옛 오렌지라이프생명보험)을 상대로 낸 보험금 소송에서 지난 9월5일 패소 판결을 받았습니다. 형사사건 확정 판결(지난 9월21일) 전이었지만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8부(재판장 박준민)는 “보험수익자이자 계약자인 B씨가 고의로 피보험자인 망인(남편)을 해친 경우로서 (보험사의) 보험금 지급 의무가 면책됐다”고 판단했습니다.
유희곤 기자 hul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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