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생각] 새로운 백년의 미래는 시민사회의 연대 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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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100년 전인 1923년 9월1일 토요일 11시58분, 일본 요코하마 앞바다 사가미만을 진원지로 하는 진도 7.9의 강진이 도쿄와 간토 일대를 강타한다.
왜냐하면 1923년 간토대지진 이후 지난 100년간 일본의 국가폭력에 맞서 역사의 기억을 되새김질해온 한·일 작가와 일반 시민들 사이의 연대의 기록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본 정부와 극우인사들은 100년 전 조선인 학살로 이어진 간토대지진 시절의 인식을 현재까지 고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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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성원의 길 위의 독서]
백년 동안의 증언
간토대지진, 혐오와 국가폭력
김응교 지음 l 책읽는고양이(2023)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인 1923년 9월1일 토요일 11시58분, 일본 요코하마 앞바다 사가미만을 진원지로 하는 진도 7.9의 강진이 도쿄와 간토 일대를 강타한다. 지진 발생 세 시간 후인 오후 3시경부터 “조선인들이 불을 지르고 다닌다” “조선인들이 우물에 독을 탄다” “조선인들과 공산주의자들이 습격한다”는 유언비어가 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음날 도쿄 일대에 계엄령이 선포되었다. ‘조선인 폭동설’이 유포되기 시작했고, 도처에서 조선인과 중국인, 사회주의자들에 대한 집단학살이 자행되었다.
일본의 시인 쓰보이 시게지는 이 처참한 장면을 ‘십오엔 오십전’(十五円五十錢)이란 장시에 담았다. “십오엔 오십전이라고 해봐!/ 손짓당한 그 남자는/ 군인의 질문이 너무도 갑작스러워/ 그 의미를 그대로 알아듣지 못해/ 잠깐, 멍하게 있었지만/ 곧 확실한 일본어로 대답했다/ 쥬우고엔 고쥬센/ 좋아!/ 칼을 총에 꽂은 병사가 사라진 뒤에/ 나는 옆에 있는 사내의 얼굴을 곁눈질로 보면서/ 쥬우고엔 고쥬센/ 쥬우고엔 고쥬센/ 이라고 몇 번이나 마음속으로 반복해보았다.” “15엔 50전”을 일본 표준어로 발음하지 못한 오사카나 오키나와 출신 일본인, 또는 ‘교육칙어’나 역대 천황 이름을 암송하지 못한 일본인들까지 이른바 ‘후테이센진’(不逞鮮人)으로 몰려 살해되었지만, 현재까지도 그 정확한 피해 숫자를 파악하지 못한 채 대략 6천명가량이 희생된 것으로 추정한다.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 100주기를 맞아 출간된 ‘백년 동안의 증언’은 와세다대학 객원교수를 지낸 김응교 선생이 지난 20년 동안 간토대지진 관련 장소를 직접 답사하고, 여러 증인을 만나 문헌을 연구 정리한 책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한 명의 저자가 완성한 책이 아니다. 왜냐하면 1923년 간토대지진 이후 지난 100년간 일본의 국가폭력에 맞서 역사의 기억을 되새김질해온 한·일 작가와 일반 시민들 사이의 연대의 기록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본 정부와 극우인사들은 100년 전 조선인 학살로 이어진 간토대지진 시절의 인식을 현재까지 고수하고 있다.
1983년 9월 재난상황을 상정한 경시청 매뉴얼에는 공안부에서 ‘시찰 대상자’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외무2과에서는 재일조선인 관리를 어떻게 할 것인지 등에 대한 내용들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도쿄지사였던 이시하라 신타로는 지난 2000년 4월, 일본 육상자위대 1사단 창설 기념행사 축사를 통해 불법 입국한 ‘삼국인’(三國人)과 외국인이 흉악한 범죄를 거듭하고 있다면서 유사시에는 자위대가 출동해 치안유지에 나서야 한다는 발언을 했다. 이때 삼국인이란 이른바 일본에 거주하고 있는 자이니치, 중국인, 대만인을 지칭하는 것이었다.
김응교 선생은 이를 일본만의 문제로 치부하거나 일본을 비롯해 타자를 혐오하는 것으로는 결코 해결할 수 없다고 말한다. 이런 참극은 국가라는 이름으로 특정한 소수를 타자화시킬 때, 어느 사회에서나 발생할 수 있는 사건이기 때문이다. 한일 간에 새로운 백년의 미래를 위해서는 피해의식이나 자학적 태도가 아닌 평화와 민주주의를 추구하는 한일 시민사회의 연대가 절실하다. 한일 양국 간 민주시민의 연대를 촉구하며 일본의 혼다 히사시 시인은 이렇게 말했다. “지금 악한 세력이 우리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저는 무기는 없지만 한 송이 꽃 같은 시로 저항하려 합니다.”
전성원 황해문화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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