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나무에게서 상생과 협력을 배우다 [책&생각]
“오래된 나무는 주변 묘목들의 허브이자 어머니”
무차별 벌목과 단일 수종 식재 관행에 일침
어머니 나무를 찾아서
숲속의 우드 와이드 웹
수잔 시마드 지음, 김다히 옮김 l 사이언스북스 l 2만5000원
나무들은 더 많은 햇빛을 받기 위해 주변의 다른 나무보다 높은 곳으로 솟아오른다. 땅속에서는 물과 양분을 가능한 한 많이 흡수하고자 어지럽고 사납게 뿌리를 뻗는다. 인체에 이롭다고 알려진 피톤치드는 나무가 주위의 균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고자 내뿜는 독성 물질로, ‘식물’(phyton)과 ‘죽이다’(cide)라는 어원에서 보듯 적대적인 성질을 지닌다. 요컨대 나무의 생장은 경쟁에 기반한다는 것이 오래도록 진화론에 입각한 상식적 설명이었다.
캐나다의 식물학자 수잰 시마드는 1997년 8월 과학 전문지 ‘네이처’ 표지로 실린 논문에서 미송과 자작나무가 광합성 탄소를 주고받는다는 사실을 밝혀 이런 진화론적 ‘상식’을 뒤집었다. 그의 논문에 따르면 두 수종은 땅속의 진균 네트워크를 통해 물과 양분을 주고받으며 협력과 공생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네이처’는 이런 시마드의 발견을 가리켜 ‘우드 와이드 웹’(Wood-Wide-Web)이라고 불렀다. 그보다 몇 년 전인 1989년에 출현한 월드 와이드 웹(World Wide Web)에 빗댄 표현이었다. 월드 와이드 웹이 전선이나 전파로 연결된다면 우드 와이드 웹은 균근균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 차이였다.
시마드가 2021년에 낸 ‘어머니 나무를 찾아서’는 우드 와이드 웹으로 대표되는 그의 발견을 중심으로 지은이 자신의 학문 여정과 개인사를 병렬 서술한 책이다. 캐나다 서부 브리티시컬럼비아의 목재업 가문에서 태어난 시마드는 비록 계절직이긴 하지만 벌목 회사 최초의 여직원으로 취직해 나름대로 가업을 잇게 되었다. 그곳에서 그가 맡은 업무는 목재용 어린나무를 심기 위해 오래된 나무를 베어내는 일이었는데, 멀쩡한 나무를 베어 없애는 업무를 “처형자 역할”이라 표현할 정도로 죄책감에 시달린다. 게다가 그는 그 과정에서 나무뿌리에 거미줄처럼 붙어 있는 균사체의 존재에 눈을 뜨게 된다. “땅속에 있는 거미줄같이 생긴 균사들이 나무와 식물들을 서로 이어 주면서 전체 공동체를 위해 절실히 필요한 수분을 잡아 두고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이 무렵의 궁금증이 발전해 우드 와이드 웹 논문을 낳은 것이다.
벌목 회사를 거쳐 산림청 소속 연구자로 일하며 균사 네트워크에 관한 연구를 이어 가던 시마드는 스물여섯 나이에 미국 오리건주립대학교 석사 과정에 들어간다. 목재용 침엽수를 위해 오리나무나 자작나무 같은 ‘잡목’을 베어 없애는 것이 벌목 회사들의 오랜 관행이었는데, 오리나무나 자작나무가 질소로 토양을 비옥하게 해서 소나무와 같은 침엽수에게 도움을 준다는 사실을 연구를 통해 입증하는 것이 시마드의 목표였다. “오리나무는 토양을 풍요롭게 하고, 장기적 안목으로 보면 소나무 생장에 해롭지 않고, 소나무 생장을 보완한다는 사실을 그들이 납득하게 만들어야 했다.”
이런 목표와 사명감이 세계를 뒤흔든 논문을 낳았지만, 그것이 시마드 한 사람만의 힘으로 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오리나무와 소나무를 연결하며 질소를 직접 전달할 수 있는 공통의 균근균 종을 발견했다는 스웨덴의 젊은 연구자의 논문을 비롯해 여러 학자들의 선행 연구를 참조하고 발전시켜 자신의 체계를 완성한다. 게다가 그의 대학 시절 친구 진에 따르면 캐나다의 원주민들은 “숲 바닥 아래에 나무들의 연대와 강인함을 지켜 주는 진균이 있다”는 사실을 일찍부터 알고 있었다. 그는 선주민들의 오래된 지혜를 과학적 연구로 재확인한 셈이다.
“그(과학 탐험) 여정에서 나의 연구와 개인사는 묘하게, 가끔은 섬뜩할 만큼 너무도 정교하게 발을 맞추며 전개되었다.”
책의 서문에서 시마드가 밝힌 대로 그의 삶과 연구 주제는 짜기라도 한 양 영향을 주고받는다. 비교적 늦은 나이에 결혼하고 두 딸을 둔데다 뒤늦게 교수(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교 산림학과)로 임용된 그는 일과 양육 사이에서 시간과 에너지를 나누느라 고초를 겪다가 이혼에 이른다. 그 무렵 그가 발견한 것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어머니 나무’였다. 어머니 나무는 숲에서 가장 큰 나무로, 다른 모든 나무에게 물과 양분을 제공하고 생존의 지혜를 나눠 주는 존재다.
“어머니 나무는 주변에 자리한 모종과 묘목의 중심 허브였고, 다양한 진균 종에서 뻗어 나온 갖가지 색과 무게의 실이 나무들을 겹겹이 튼튼하고 복잡한 망으로 연결했다.”
어머니 나무가 주변 나무와 관계를 맺는 방식은 할리우드 영화 ‘아바타’에도 영감을 주었다. 그것은 또 시마드 자신이 두 딸과 맺는 관계와도 다르지 않았다. 오랜 삶의 과정에서 상처 입고 시련을 겪은 어머니 나무는 자신이 축적한 생존 노하우를 어린나무들에게 전해 준다. 나무들은 물과 양분을 주고받을 뿐만 아니라 자신들을 위협하는 존재와 환경에 대한 정보 역시 서로에게 전달한다.
시마드는 유방암에 걸려 양쪽 유방을 절제하고 힘겨운 항암 치료를 거쳐 완치 판정을 받는데, 그 과정에서 같은 환우들과 자매애 공동체를 형성하는 한편 여자친구 메리와 새로운 삶을 꾸리기에 이른다. 부상을 당하거나 죽어가는 어머니 나무가 어린나무들에게 에너지와 지혜를 전달하는 모습에서 그가 착안한 것이 ‘어머니 나무 프로젝트’(mothertreeproject.org)다. 경쟁이 아닌 협동이 식물의 생장 비결이며, 오래된 나무를 생태계의 중심으로 보존해야 한다는 취지를 내세웠다. 기후위기 시대에 한층 절박하게 다가오는 그의 말을 들어 보자.
“오래된 나무들은 흙 속에 어마어마한 분량의 탄소를 숨겨 보존하고 있으며 맑은 물과 깨끗한 공기의 원천이다. 그 오래된 영혼들은 대단한 변화를 겪었고, 이것이 그들의 유전자에 영향을 주었다. 변화를 거치며 그들은 반드시 필요한 지혜를 모았고 이 모두를 자손들에게 다 주었다. 보호, 새 세대가 시작할 터, 성장할 토대를 제공하면서.”
숲 가꾸기라는 이름 아래 수령 30년 전후의 나무를 무차별적으로 벌목하고 있는 대한민국 산림청이 귀 기울여 들어야 할 조언이라 하겠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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