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생각] 아픔을 바로 보기 위한 질문으로 만든 길

양선아 2023. 11. 24.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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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의 아픔을 보듬는 연구자' '사회적 약자의 비명과 신음소리를 사회적 언어로 해석하고 그들을 위한 탄탄한 데이터와 논리를 제공하는 사회 역학자'. 김승섭 서울대 보건대학원 환경보건학과 부교수를 수식할 수 있는 어구는 이보다 더 많을 것이다.

그는 서문에서 "연구를 하는 과정에서 겪었던 숱한 시행착오와 길이 보이지 않는 막막한 상황에서도 계속 질문하기를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과 만나 나눴던 이야기를 모은 책이다. 이 책으로 한국 사회에서 대중을 상대로 지금의 제가 할 수 있는 이야기는 마무리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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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학자 김승섭 ‘차별 연구 분투기’
사회적 약자·재난 생존자들의 고통
당사자 삶 깊이 들여다보는 공부
‘희망의 작은 물결’로 만들 큰 파도
김득중 쌍용자동차 지부장이 2018년 5월 네 번째 단식투쟁을 하던 때, 김승섭 교수는 뭐라도 함께 해야겠다는 생각에 평택 쌍용자동차 공장 앞을 찾아가 24시간 단식을 함께 했다. 김득중 지부장(왼쪽)과 김승섭 교수가 같은 우산을 쓰고 활짝 웃고 있다. 김승섭 교수 제공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공부
김승섭 지음 l 동아시아 l 2만2000원

‘사회의 아픔을 보듬는 연구자’ ‘사회적 약자의 비명과 신음소리를 사회적 언어로 해석하고 그들을 위한 탄탄한 데이터와 논리를 제공하는 사회 역학자’…. 김승섭 서울대 보건대학원 환경보건학과 부교수를 수식할 수 있는 어구는 이보다 더 많을 것이다. ‘아픔이 길이 되려면’(동아시아, 2017)이란 책을 통해 질병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의 문제라는 문제의식을 명확하게 보여줬던 그가 이번엔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공부’라는 책을 내놨다. 그는 서문에서 “연구를 하는 과정에서 겪었던 숱한 시행착오와 길이 보이지 않는 막막한 상황에서도 계속 질문하기를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과 만나 나눴던 이야기를 모은 책이다. 이 책으로 한국 사회에서 대중을 상대로 지금의 제가 할 수 있는 이야기는 마무리된다”고 말했다. 앞으론 ‘차별과 건강’을 주제로 한 교과서를 쓸 계획이라고 한다.

연세대 의대를 졸업하고, 서울대 보건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미국 하버드대 보건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는 등 흔히 ‘수재’라 꼽힐 만한 그는 탄탄대로인 의사의 길을 가지 않고 책 제목처럼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공부를 선택했다. “교수님은 왜 공부를 하시는 건가요?”라는 학생의 질문에 그는 “공부의 힘을 믿는다”고 답했다. 공부가 당장 사회 변화를 만들어 내지 않더라도, 인류가 오랫동안 쌓아온 지식을 면밀히 검토하면서 얻게 되는 통찰이 있고, 그 통찰의 힘이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안내해줄 것이라고 그는 믿는다. 그런 그가 어떤 질문과 어떤 연구 방법을 통해 사회적 약자 문제에 접근했는지 다양한 사례를 통해 서술한다.

사안을 제대로 다루려면 깊이 있게 들여다본 뒤에 질문을 구성해야 하며,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당사자들의 삶을 면밀히 관찰하고 당사자를 인터뷰하는 등의 절차가 필요하다고 그는 강조한다. 그는 트랜스젠더의 차별 경험을 연구할 때 ‘지난 1년간 구직과정에서 차별을 경험한 적 있습니까?’라는 설문 문항을 통해 측정하려고 했다. 그러나 당사자들을 인터뷰해보니 트랜스젠더들은 구직 과정에서 성별을 표시해야 하는 서류 심사나 언제 어떻게 맞닥뜨릴지 모르는 차별에 대한 두려움으로 취업이나 취업 지원을 아예 포기하는 경우가 많았다. 구직 과정에서 차별을 경험할 기회 자체가 없었던 것이다. 김 교수는 ‘신분증이나 주민등록번호를 제시하는 상황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을까 봐 일상적 용무를 포기한 적 있습니까?’라는 질문으로 바꿔 물었고, 그제야 그들의 고통을 연구에 반영할 수 있었다.

장애인에 대한 연구에서도 마찬가지다. 휠체어를 사용하는 장애인의 전자제품 매장 접근성에 대한 연구를 진행할 때, 매장 직원은 뇌병변 장애인 앞에서 어찌할 바를 몰라했다. 비장애인인 동행 연구자는 숨이 막힐 만큼 답답했지만, 당사자인 장애인은 너무 흔한 일이라 그 경험을 차별로 인식하지 못했다. 이처럼 김 교수는 연구하면 할수록 우리 사회에 눈에 보이지 않는 차별이 공기처럼 스며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고, 사회 문제 해결은 매우 복잡하고 전선도 매우 다양해서 선한 의도만으로 선한 결과를 낳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털어놓는다.

사회적 약자와 함께 비를 맞는 삶을 선택한 김 교수는 “희망의 작은 물결”(로버트 케네디의 말)을 세상에 보내는 사람이다. “그렇게 쌓인 물결들은 억압과 차별이라는 가장 강력한 장벽조차 무너뜨리는 파도를 만들어 낼”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양선아 기자 anmad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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