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생각] ‘간병하는 아들’이라는 콘셉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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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속의 역사'에 따르면, 서양에는 부모 자식 사이에 부양 계약서를 쓰는 전통이 있었다.
우리는 지금 부모 자식 간 부양에 대해 어떤 개념을 갖고 있을까.
우리 사회는 자식이 나이 든 부모를 어느 선까지 부양해야 한다 생각하고 있을까.
부모 자식 간 부양에 관한 보편적인 합의도 부재하기에, 사회 구성원 각자가 세대 간 부양에 대해 완전히 다른 기준을 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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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쿠, 나의 반려밥솥에게
2023 현대문학상 수상소설집
박지영 지음 l 현대문학(2022)
‘상속의 역사’에 따르면, 서양에는 부모 자식 사이에 부양 계약서를 쓰는 전통이 있었다. 계약서에는 상속자인 자녀의 의무가 구체적으로 명시됐다. 피상속자인 부모가 병들면 간병을 어떻게 할지, 죽으면 장례는 어떻게 치를지를 비롯해 버터와 치즈 혹은 고기 요리를 한 달에 몇 번 식탁에 올릴지까지가 꼼꼼히 합의되었다. 동양의 경우는 달랐다. 부양 계약서가 존재하지 않았다. ‘유교’를 통해 효도에 관한 사회적 합의가 단단히 이뤄져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 사회에서는 ‘불효’에 대한 사회적 질타가 거셌다. 불효 사실이 드러나면 온 마을 사람들이 들고일어나 공동 체벌을 할 정도였다. 한 인간의 ‘노후의 삶’에 대응하는 방식에서, 서양과 동양이 완전히 다른 역사적·문화적 배경을 갖고 흘러온 것이다.
21세기의 한국 사회는 어떨까. 우리는 지금 부모 자식 간 부양에 대해 어떤 개념을 갖고 있을까. 자식이 성인이 될 때까지 부모가 뒷받침해주어야 한다는 데는 이견이 없는 듯하다. 하지만 나이 든 부모에 대해서는 어떨까. 우리 사회는 자식이 나이 든 부모를 어느 선까지 부양해야 한다 생각하고 있을까.
서양에서 부양 계약서가 없어진 것은 연금 제도가 도입되면서였다. 시간이 흘러 21세기를 맞은 지금, 각국의 연금 제도는 노령화와 양극화로 인한 위기를 맞고 있다. 식민지화와 분단과 전쟁을 맞으며 강제로 서양식 근대화를 맞이해야 했던 대한민국은 현재, 본격적으로 연금 제도를 실시한 지 채 40년도 되지 않아 제도상의 위기를 겪고 있다. 부모 자식 간 부양에 관한 보편적인 합의도 부재하기에, 사회 구성원 각자가 세대 간 부양에 대해 완전히 다른 기준을 품고 있다. 겉으로는 조선 시대부터 이어져 온 강력한 효 사상의 외피를 두르고 있지만 실제로는 구성원들 각자가 완전히 다른 사고를 하고 있기에, 세대 간에 극심한 오해와 갈등이 빚어지고 있는 것이다.
‘쿠쿠, 나의 반려 밥솥에게’는 치매에 걸린 아버지의 간병을 맡게 된 아들의 이야기다. 어린 시절부터 ‘착한 아이’ 역할을 맡아온 아들 강선동은 아버지 강만석을 책임진다는 미명 하에 동기간들로부터 최대한 많은 지원금을 받아내려 한다. 기본 케어 170만원, 세심한 케어 190만원, 다정 플러스 케어 220만원, 하나뿐인 가족 케어 240만원이라는 네 가지 옵션을 제시한 뒤 형과 누나에게 선택을 종용한다. ‘간병하는 아들’이라는 콘셉트로 유튜브를 운영하기도 한다. 인지도를 쌓은 뒤 방송에 출연하거나 책을 내겠다는 야심으로 시작한 일이다. 바지와 세면대에 똥을 지려놓는 아버지를 원망하는 마음이 들 때면, 아버지를 사람이 아니라 ‘다마고치’라 생각하며 견딘다.
이 짧은 단편소설에는 현재의 대한민국 사회를 이루는 다양한 화두가 집약돼 있다. 선악, 효와 불효, 돌봄 노동의 젠더별 배분 방식이 일상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방식을 뒤쫓다 보면, 하루아침에 폭력적으로 전통문화와 단절된 뒤 외래문화를 받아들여야 했던 한 사회의 본모습과 정면으로 마주치게 된다. 켜켜이 쌓인 시층 사이에서 어쩔 줄 몰라 하며 종종걸음치는 한국 사회 구성원들의 모습과.
정아은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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