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배추’ 선동에 빛바랜 성수기…‘시세 겨울’ 더 길어질 듯
이달 경락값 평년보다 하락세
8월 일시 강세에 매체 호들갑
농경연 반박자료, 진화 역부족
출하 밀려 하락폭 더 커질 수도
“관계기관, 기사에 적극 대처를”
이달 중순부터 본격적인 김장철이 시작돼 배추·무 산지가 분주해지는 등 대목장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지만 도매시장 시세는 곤두박질치고 있어 출하자들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출하량 증가보다는 예년보다 위축된 소비가 주요인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특히 수개월간 이어진 ‘金(금)배추’ 선동 기사로 소비자 구매 심리가 극도로 악화한 영향이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22일 서울 가락시장에서 배추는 10㎏들이 상품 한망당 평균 6532원에 거래됐다. 이는 지난해 11월 평균 경락값(5559원)보다는 17.5% 높고, 평년 11월 평균 경락값(6834원)보다는 4.4% 낮은 값이다. 이달초 배추값은 7000원대를 유지하며 김장 성수기를 앞두고 안정적인 시세 흐름을 보였다. 하지만 수도권 김장이 시작되는 중순부터 하락세를 띠며 5000원대까지 내려갔고 이후에도 5000∼6000원대를 오가며 좀처럼 반등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지난해 같은 시기 배추값이 가을배추 생산량 증가로 유례없는 폭락을 기록했던 점을 고려하면 올해 이같은 시세는 사실상 바닥에 가깝다는 분석이다.
무는 더 심각하다. 같은 날 가락시장에서 무는 20㎏들이 상품 한상자당 평균 7390원에 거래되며 지난해 11월 평균(1만2100원)보다는 38.9%, 평년 11월 평균(1만1252원)보다는 34.3% 낮은 값을 기록했다. 무값은 가을무 출하가 본격화하며 11월부터 하락세를 띠었고 김장 성수기에도 평년보다 낮은 시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이처럼 성수기가 무색할 정도로 배추와 무값이 크게 하락한 것은 극심한 소비부진 때문으로 파악된다. 대목을 맞아 산지에서 출하량을 늘렸지만 그만큼 소비가 늘어나지 못하면서 시세가 곤두박질친 것이라는 분석이다. 전문가들은 소비 심리가 얼어붙은 데는 무엇보다 수개월간 이어진 금배추 보도가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고 있다.
올해 언론의 금배추 보도는 이상기후 영향으로 고랭지배추 생산량이 줄어들어 배추값이 상승한 8월부터 쏟아지기 시작했다. 당시 산지 출하자들과 도매시장 관계자들은 일시적인 강세 구간만을 취사 선택한 편파적인 보도라며 항의에 나서기도 했지만 그 이후에도 올해 배추값이 폭등해 밥상물가가 상승했다는 식의 보도는 끊이지 않았다.
이달초에도 일부 매체가 ‘김장철 金배추 되나…농경연, 1년 전보다 44% 비쌀 듯’ 등과 같이 금배추 관련 기사를 내보내자 이례적으로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11월 전망가격이 지난해보다 44% 높은 것은 지난해 풍작이 원인”이라는 반박 자료까지 내며 진화에 나섰지만 이미 수개월간 누적된 금배추 선동 기사의 영향력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는 평가다. 실제 농경연이 올 10월4∼13일 소비자패널 6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김장의향 조사에 따르면 올해 김치를 직접 담그겠다는 비율은 63.3%로 지난해(65%)보다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고행서 대아청과 경매사는 “10월말 진행된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올 11월 김장철 배추값은 평년 수준으로 안정될 것이라고 전망했지만 정작 보도에는 10월 배추값이 비싼 원인을 분석한 부분만 담겼다”며 “정작 중요한 김장철 배추값 전망은 배제하고 가격이 높았던 시기만 취사 선택해 보도한 것인데, 수개월간 이같은 행태의 보도가 누적되며 소비자들의 구매 심리에 심각한 악영향을 끼친 것으로 파악된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정부가 대형 할인마트 중심의 김장물가 대책을 펼친 것도 도매시장 시세 하락에 영향을 끼쳤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정부는 올해 245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배추·무 등 김장 채소를 대형마트 등에서 20∼30% 할인할 수 있도록 지원했는데, 도매시장을 주로 이용하는 재래시장과 중소형 마트가 상대적으로 혜택을 받지 못하면서 수요가 감소해 시세가 하락했다는 설명이다.
이광형 한국농업유통법인중앙연합회 사무총장은 “현재 도매시장의 주 고객층인 재래시장 상인과 중소형 마트들의 김장재료 판매가 상당히 부진한 것으로 파악된다”며 “전통적으로 가정에서의 김장 수요를 이끄는 중장년층은 재래시장과 중소형 마트 등을 통해 김장재료를 구매하는데 올해 가격할인 지원이 대형 유통업체에 쏠리면서 수요가 줄어든 것으로 파악된다”고 진단했다.
문제는 극심한 소비부진으로 김장철 소비돼야 할 가을 배추·무 재고가 쌓일 경우 12월 출하될 겨울작기 시세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고 경매사는 “시세가 계속 부진할 경우 가을 배추·무 모두 산지에서 출하를 지연할 가능성이 크다”며 “거기에다 올해 기온이 높다보니 가을작기 출하가 가능한 시기 또한 예년보다 늦춰질 수 있는데 이 경우 겨울작기와 직접적으로 경합해 시세가 더 큰 폭으로 하락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미 겨울배추 산지에선 밭떼기거래가 중단되는 등 시세 폭락을 예견한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어 출하자들의 우려가 갈수록 커지는 상황이다. 홍명표 전남 해남 화원농협 상무는 “최근 몇주간 이어진 기상 여건 호조로 겨울배추 작황이 평년작 이상으로 좋아졌다”며 “이런 상황에서 배추값까지 폭락하자 밭떼기거래가 중단돼 배추 판로를 확보하기 위해 동분서주 중”이라고 전했다.
생산자들은 올해 생산비·물류비가 급등한 상황에서 언론의 무책임한 보도로 배추·무 가격이 폭락했다며 정확한 산지 상황에 대한 보도와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나섰다.
김효수 전국배추생산자협회장은 “현재 가락시장으로 출하할 경우 배추 팰릿 하차거래 의무화로 추가적인 인건비와 물류비가 소요돼 전체적으로 지난해보다 20% 이상 제반 비용이 늘어난 상황”이라며 “언론의 무책임한 보도가 더이상 이어지지 않도록 관계기관의 적극적인 대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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