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지적질 못 참아" vs "그래도 귀여워"...판다에 울고 웃는 동남아 [아세안 속으로]
편집자주
2023년 2월 한국일보의 세 번째 베트남 특파원으로 부임한 허경주 특파원이 ‘아세안 속으로’를 통해 혼자 알고 넘어가기 아까운 동남아시아 각국 사회·생활상을 소개합니다. 거리는 가깝지만 의외로 잘 몰랐던 아세안 10개국 이야기, 격주 금요일마다 함께하세요!
“모든 사람이 판다를 좋아하지만 모든 나라가 판다를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판다는 태국과 중국 간의 신뢰의 상징이다. 정부는 중국에 새 판다 제공을 요청해야 한다.” (팰롭 세쥬 태국 치앙마이 관광협회 회장)
“판다는 중국에 사는 것이 더 낫고, 대여 비용도 너무 비싸다. 판다를 데려오지 말고 그 예산으로 코끼리 같은 우리나라야생 동물 보호와 식량 마련에 힘써야 한다.” (칸차나 실파 아차 전 태국 교육부 차관)
중국은 1980년대부터 외교 관계를 수립한 국가에 우호의 의미로 멸종 취약종인 판다를 임대해왔다. 지난해 말 기준 중국이 판다를 보낸 나라는 한국, 미국, 일본을 포함해 21개국이다.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태국, 싱가포르 등 동남아시아 4개국도 포함돼 있다. 판다의 귀여움에 흠뻑 빠졌다가 중국으로 반환할 때가 되면 눈물짓는 것은 동남아에서도 마찬가지다.
태국 판다 임대 두고 “필요”, “무용” 팽팽
태국이 중국에서 판다를 받을 필요성을 두고 나라가 시끄럽다. 세타 타위신 총리가 지난 9월 “중국 방문 때 판다를 홍보대사로 요청하는 것을 의제로 삼겠다”고 말한 게 발단이 됐다. 같은 해 4월 태국 북부 치앙마이주(州) 동물원에 살던 암컷 자이언트 판다 린후이(2001년생)가 갑작스럽게 죽은 이후 태국엔 판다가 한 마리도 없다.
린후이의 빈자리를 아쉬워하던 치앙마이는 반색했다. 주정부 관계자들과 시민들은 판다 귀환이 관광 산업과 지역경제 활성화뿐만 아니라 중국과의 관계를 발전시키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라며 환영했다.
반발도 거세다. 살아있는 동물을 정치적·경제적 목적으로 이용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동물권 옹호론도 있고, 임차 과정에서 발생하는 과도한 비용 문제를 걱정하는 목소리도 있다. 임차한 판다가 죽을 때마다 중국 정부에서 모욕을 당한 것 때문에 치를 떠는 이들도 있다.
린후이가 죽자 중국은 태국의 관리 잘못 때문이라며 1,500만 바트(약 5억5,000만 원) 배상금을 요구했다. 당시 중국이 보낸 판다 전문가들이 부검까지 한 결과 ‘고령 질환에 따른 자연사’로 결론 났지만, 중국은 끝까지 태국에 책임을 돌렸다.
2019년 린후이의 짝인 2000년생 판다 추앙추앙이 심장마비로 죽었을 때도 중국에선 “태국이 제대로 보살피지 못해 귀한 동물이 목숨을 잃었다”는 여론이 팽배했다. 양국 관계를 돈독하게 다지기 위해 주고받은 판다가 되레 서로 낯을 붉힌 원인이 된 셈이다.
태국의 판다 임차 반대론자들의 요지는 “중국에서 그런 수모를 당하면서까지 무리해서 판다를 데려올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정부가 입장 정리를 하지 않는 상황에서 ‘판다 외교 무용론’을 둘러싼 찬반 논란이 뜨겁게 이어지고 있다.
싱가포르, "안녕 아기 판다" 눈물의 작별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는 아기 판다와 이별 때문에 눈물에 잠겼다. 중국과의 협약에 따라 외국에서 태어난 모든 판다는 만 2~4세쯤 중국으로 반환돼야 한다. 에버랜드의 자이언트 판다 푸바오와 처지가 같다.
싱가포르는 내년 1월 러러의 중국 반환을 앞두고 작별 준비가 한창이다. 2021년 카이카이와 지아지아 사이에서 태어난 러러는 리버원더스 동물원의 최고 인기 스타다. 러러의 탄생에 리셴룽 총리가 동물원 관리감독 기관인 야생동물보호국(WRS)에 축하 메시지를 전하고, 국회의장이 이름 공모를 주도했을 정도로 뜨거운 사랑을 받았다.
싱가포르 스트레이트타임스는 “평일인 지난 8월 14일 러러의 두 번째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어른들은 직장을 쉬고 아이들은 학교를 빠졌다”며 “탄생부터 모든 성장 단계를 지켜본 시민들이 이별을 앞두고 ‘그간 고마웠다’는 편지를 러러에게 쓰기도 한다”고 보도했다. 다른 언론들도 러러의 일거수일투족을 앞다퉈 전하고 있다.
말레이시아에서도 지난 8월 판다 자매인 이이와 성이를 중국으로 보냈다. 환송식에는 두 판다의 팬들과 정부 각료들이 참석했고, 당시 말레이시아 국립공원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채널에 “침울한 분위기가 공기를 가득 채웠다”고 전했다.
막대한 비용, ‘인권 방패막이’ 논란도
중국의 판다 대여를 불편하게 보는 시각도 적지 않다. 가장 큰 문제는 만만치 않은 사육 비용이다. 판다 한 쌍을 빌리는 대가(임차료)로 중국에 지불하는 액수는 연간 100만 달러(약 13억3,000만 원)에 달한다. 해외에서 새끼 판다가 태어나면 추가로 50만 달러(약 6억7,000만 원)를, 두 번째부터는 30만 달러(약 4억 원)를 보호기금 명목으로 제공해야 한다.
2016년 말레이시아 정부는 쿠알라룸푸르의 네가라 동물원에서 10년간 판다 한 쌍을 키우는 데 1억5,100만 링깃(419억 원) 이상이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영국 BBC방송은 “판다는 동물원에서 사육하기에 가장 비싼 동물로, 코끼리 사육비의 약 5배가 든다”고 전했다. 이 때문에 동남아 지역 환경운동가들은 판다 사육비를 국내 생태 보호에 써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중국이 판다를 ‘방패막이’로 삼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신장 위구르 지역 소수민족 인권탄압 문제나 대만 해협 문제를 희석시키는 데 판다의 귀여운 이미지를 이용하고 있다는 의미다. 지난해 낸시 메이스 미국 공화당 하원의원은 “중국이 판다를 통해 인권탄압 문제를 속이는 ‘쇼윈도 외교’를 펼치고 있다”고 꼬집었다.
하노이= 허경주 특파원 fairyhkj@hankookilbo.com
Copyright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단독] “의전 중독, 여성 편력… 우상 안희정은 이렇게 몰락했다”
- [단독] 16기 상철, 내일(24일) 영숙 고소…영철·변혜진은 미정
- 황의조 영상 유출 피해자, 대화내용 공개... "내가 싫다고 했잖아"
- ‘방공호 프러포즈’ 우크라 신혼부부, 첫 결혼기념일 앞두고 장례식 맞았다
- 근무 중 상의 올리고 단추 풀고...'노출방송' 7급 공무원 또 적발
- [단독] 신분증 요구에 전치 6주 폭행당한 라이더… 배달 앱은 쌍방폭행 확인만
- "살려달라" 비명에 달려간 父子...아들은 얼굴 50바늘 꿰매
- 노소영 "최태원, 동거인에 1000억 이상 써"... 김희영 "명백한 허위사실"
- 민주연구원 부원장 "최강욱 '암컷' 발언, 뭐가 잘못이냐"
- "서현역서 한남 찌르겠다" 살인 예고 30대 여성 1심서 징역 1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