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적은 안 지키고 우리만 지키는 ‘합의’는 안보 자해일 뿐
북한이 예상대로 23일 9·19 남북군사합의를 파기했다. “군사분계선 지역에 보다 강력한 무력과 신형 군사 장비들을 전진 배치할 것”이라고도 했다. 이른바 정찰위성 발사에 대응해 우리가 9·19 합의 일부를 효력 정지시킨 데 대한 반발이다.
북한 입장에서 9·19 합의는 이미 없었던 것이나 마찬가지다. 2018년 합의 이후 위반한 사례는 헤아릴 수도 없다. 북한은 해안포의 포문을 3400회 이상 개방하며 언제든지 쏠 수 있는 태세를 갖췄다. 금지된 실사격 훈련도 했다. 북한은 2022년 10월 이틀에 걸쳐 서해 해상 완충 구역에 약 600발의 포탄 사격을 가했다. 같은 해 12월에는 북한이 보낸 무인기가 군사분계선을 넘어서 서울 상공까지 침투했다. 이는 9·19 합의를 정면으로 위반한 것이다. 북한이 거의 매달 탄도미사일을 발사하는 것과 정찰위성 발사도 유엔 안보리 결의의 정면 위반이다.
9·19 합의는 우리만 지켜 왔다. 우리 군은 서해에서 포 사격 훈련을 하지 않은 것은 물론 포문도 폐쇄했다. 북한은 무시하는 이 합의를 지키기 위해 해병대가 연평도·백령도에 배치된 K-9 자주포를 육지로 이동시켜 사격 훈련을 하느라 쓴 돈만 100억원이 넘는다. 이런 북한에 맞서 대북 감시·정찰 활동을 위해 9·19 합의 일부 조항의 효력을 중지시킨 것은 최소한의 방어 조치라고 할 수 있다.
민주당은 정부가 ‘전쟁 불사’ 태세를 만들어 위기를 조장한다고 비난하고 있다. 민주당의 이재명 대표는 22일 “일각에선 혹시 과거 ‘북풍’처럼 휴전선에 군사도발을 유도하거나 충돌을 방치하는 상황이 오지 않을까 걱정한다”고 했다. 아무리 선거에 목을 매도 안보만은 예외로 해야 한다. 적(敵)이 지키지 않는 합의를 우리만 지키자고 하는 것은 안보 자해 행위일 뿐이다. 전 세계 어디에도 이런 야당은 없을 것이다.
북한은 국제 법규와 상호 합의를 지켜야 할 의무로서 대하지 않는다. 법규와 합의는 이용하는 수단이고 이용 가치가 없으면 즉시 무시한다. 이런 집단에 대처하는 가장 나쁜 방법이 그들의 ‘선의’에 기대는 것이다. 큰 화(禍)를 부른다. 북에 대해선 협상을 하되 강력한 억지력을 바탕으로 최악에 대비해야 한다.
어제는 2010년 서해의 북이 느닷없이 방사포 170여 발을 발사, 민·군 4명이 사망한 연평도 포격 13년이었다. 북한은 9·19 합의 파기와 함께 기습 도발로 우리를 흔들려 할 가능성이 있다. 그 경우 신속하고 단호하게 응징해 더 이상 도발로 이득을 볼 수 없다는 사실을 확실히 깨닫게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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