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 한국 뷰티 시장에서 가장 큰 변화를 겪은 카테고리는 ‘향수’다. 5년 전 향수는 백화점 화장품 매출 구성비에서 약 5%를 차지하는 작은 카테고리에 불과했다. 하지만 2023년 현재 향수는 약 15%의 매출 구성비를 차지하며 다른 뷰티 카테고리를 바짝 쫓고 있다. 한국 화장품 업계와 유통업계에서 그동안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향수가 글로벌 트렌드를 무섭게 좇으며 국내 리테일 시장을 변화시킨 것이다. 무엇보다 백화점 내 매장 지형도를 변화시켰다. 10년 전 대형 백화점 기준 화장품 매장에 향수 전용 매장은 단 3∼5개뿐이었지만 지금은 10개 정도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슥 지나갈 때 매력이 쓱… 향기의 마력, 1초면 충분해
옷을 입듯 향기를 걸치는 시대 희소성 높은 ‘니치 향수’도 인기 기분-개성 표현 수단으로 자리
2010년부터 2017년 사이 글로벌 패션사와 화장품사들은 향수 브랜드를 앞다퉈 인수하고, 새로운 브랜드를 론칭하며 ‘니치향수’에 대한 마케팅에 총력을 기울였다. 당시 한국의 화장품사와 패션사들은 이를 염두에만 뒀을 뿐 큰 변화를 일으키지는 못했다. 오히려 한국 대형 화장품사들은 색조에 힘을 주거나 스킨케어 상품을 중국에 수출하는 데 힘을 쏟았다. 물론 성과는 좋았다. ‘쿠션’이라는 카테고리를 탄생시켰으며 글로벌 면세점 매출 1위 브랜드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하지만 그만큼 향수에 대해서는 늦게 출발할 수밖에 없었다. 워낙 한국인들이 체취가 약한 편이기도 하고 향수는 사치품이라는 인식이 강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많은 한국 패션사가 포트폴리오에 향수를 추가하며 출사표를 던졌고, 기존 화장품사들도 향수 사업을 지속적으로 확장하고 있다. 단순 국내 판권 획득을 넘어 세계시장을 공략할 ‘니치향수’ 브랜드를 론칭하는 브랜드도 다수 보이고 있다.
물론 이외에도 여러 가지 변화 포인트가 많다. 변화의 원인은 소비자에게 있다. 향수에 대한 인식이 달라진 것이다. 향수를 사치품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인식하게 됐다. 드디어 한국의 향수 시장도 성숙기에 진입하게 된 것이다.
이제는 칭찬, “이건 무슨 향수예요?”
향수 시장이 성숙기에 접어들면서 하나의 작은 질문이 칭찬으로 바뀌게 됐다. 바로 “이건 무슨 향수예요?”라는 질문이다. 이 질문은 여러 가지 이유로 기분을 좋게 만든다. 그만큼 타인에게 관심을 받았고, 내가 선택한 향수가 타인에게도 좋은 감정을 전달했다는 방증이기 때문이다. 이런 질문을 한 번이라도 받으면 향수에 더 관심을 기울이고 이 카테고리를 더 즐기게 된다. 잠을 자기 전에도 뿌려 보고, 기분 전환하기 위해서도 뿌려 보고, 상황과 장소에 맞춰 향수를 뿌려 보기도 한다.
후각을 타깃으로 하는 아이템의 힘이다. 향수는 후각으로 승부한다. 후각은 오감 중에 가장 예민한 감각이며 감정과 가장 관계가 깊은 감각이다. 단 1초면 우리는 냄새를 맡고 감정으로 형상화할 수 있다. ‘좋다’ ‘싫다’ ‘상큼하다’ ‘달다’ ‘무엇이 떠오른다’ 등 1초면 충분하다. 그리고 이 1초를 공유하고 싶어진다. 마치 예쁜 옷이나 멋있는 옷을 입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더 나아가 차별화하고 싶어 한다. 희소성이 있으면서 다수가 좋은 감정을 느낄 수 있는 것을 찾게 된다. 매력적인 향수를 계속 찾게 될 것이다. 향수가 자신을 꾸미고 표현하는 좋은 수단으로 인식되면서 향수 시장은 앞으로 계속 성장할 것이다.
타인이 궁금해 할 법한 향수
많은 이가 나에게서 나는 향이 타인에게 좋은 감정으로 전달되길 바란다. 그렇다면 대다수가 좋아하는 ‘베스트셀러’를 뿌리는 게 정답일 수도 있지만 희소성을 충족하긴 어렵다. 대중성과 희소성을 모두 만족시킬 만한 향수 몇 가지를 추천하려 한다.
크리드 - 어벤투스 오드퍼퓸
‘성공을 기원하는 향수’로 불리는 남성 향수다. 높은 가격대로 하이앤드 니치퍼퓸이라는 명성을 가진 브랜드로 다수의 사랑을 받는 동시에 희소성까지 갖추고 있다. 무게감이 있는 향임에도 시트러스하면서 프루티한 향이 난다. 파인애플 톱노트에서 자작나무, 그리고 베이스 노트 머스크까지의 여정은 매혹적이고 강인하다. 달콤하게 시작한 향이 스파이시하고 스모키함을 선사하기까지의 여정을 꼭 느껴보기를 권한다.
아쿠아 디 파르마 - 오스만투스 오드퍼퓸
겨울의 고결함 같은 향이다. 활기찬 시트러스와 오스만투스의 조화가 오히려 겨울에도 어울리는 느낌이다. 플로럴하고 프루티한 계열을 좋아하는데 겨울에 뿌릴 만한 향수를 찾는다면 꼭 시향해 보기를 권한다. 상큼하고 시원하게 시작한 네롤리와 만다린 향에 달콤함이 더해져 제법 무게감이 있다. 추운 날씨에도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트루동 - 메디 오드퍼퓸
1643년 프랑스에서 태어난 트루동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왁스 제작 업체로 알려져 있다. 왁스로 시작해 캔들 명가로 자리 잡은 브랜드인 만큼 향도 특별하다. 메디는 트루동의 베스트셀러임에도 아직은 많이 알려져 있지 않아 희소성이 있다. 시트러스 향이 주를 이루지만 분명히 따뜻한 느낌이다. 시트러스와 아로마노트의 여정에서 따스한 인센의 기운을 마주하는 시간이 즐겁다. 필자의 인생 향수 중 하나다.
임지완 롯데백화점 Cosmetics팀 치프바이어 정리=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