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동현의 예술여행] [5] 한국 최초의 ‘카페’, 정관헌
한때 덕수궁을 종종 찾았다. 일 때문이기도 했지만(미술 전시를 취재했다), 개인적으로 덕수궁 그 자체를 좋아했다. 경복궁이나 창경궁이 바로 ‘이곳이 궁궐이다’라는 존재감이 강하다면, 덕수궁은 도심에서 보기 힘든, 나무가 울창하고 역사와 예술이 숨 쉬는 ‘아기자기한’ 궁궐이라는 점이 좋았기 때문이다. 사는 게 바빠 한동안 방문하지 못했는데, 얼마 전 덕수궁 돈덕전 복원이 끝나 일반에게 공개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화창하지만 알싸한 늦가을 오전, 오래간만에 덕수궁을 찾았다. 돈덕전은 석조전과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으로 사용하는 동관의 뒤쪽 언덕에 있다. 과거 후문 옆 주차장으로 쓰던 공간 근처다. 언덕 위에 자리 잡은 돈덕전이 주변과 잘 어울린다. 건물 앞의 고목도 인상 깊다. 돈덕전은 과거 대한제국의 고종 황제가 외국 공사를 만나는 연회장이나 외국 귀빈이 묵는 영빈관으로 사용한 곳이다. 1907년에는 두 번째 황제인 순종의 즉위식을 연 역사적 장소이기도 하다. 붉은 벽과 문, 창의 옥색 틀이 조화를 이루는 돈덕전은 당시 프랑스 파리에서 유행하던 건축 양식을 본떠 1902년부터 1년간 지었다. 이후 일제가 철거했는데 100여 년 만에 복원한 것이다.
‘최애’하는 정관헌(靜觀軒)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1900년 지어 덕수궁의 근대기 건축물 중에서 가장 오래됐다. 전통과 서양의 형식을 절충해 지은 독특하면서 아름다운 건축물이다. 기둥과 발코니가 화려하고 이색적이다. 그래서 그럴까. 화가 김인승은 1939년 정관헌 내부에서 지금의 서울시청 광장 쪽을 바라본 풍경을 그렸다. ‘덕수궁에서’라는 제목이다. 당시 경성 시청, 원구단과 멀리 명동성당까지 보인다. 그림과는 달리 지금은 정관헌 주변에 우거진 나무들이 있어 궁궐 밖 풍경이 잘 보이지 않는다. ‘조용히 세상을 관조하는 공간’이라는 의미의 이름에 어울리는 고즈넉한 분위기다. 흥미로운 점은 바로 여기가 한국 최초 ‘카페’라 부를 수 있는 곳이라는 점이다. 우리 나라에서 최초로 커피를 마신 인물로 꼽히는 고종 황제는 바로 이곳, 정관헌에서 커피를 마시고 음악 감상회, 연회 등을 열곤 했다.
정관헌 근처의 궁 안 카페에서 따뜻한 커피 한잔으로 몸을 녹인다. 늦가을의 단풍이 남아있는 아담한 궁은 미술관을 찾는 사람들과 함께, 커피 향으로 예술의 향기가 넘친다. 멋진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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