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광종의 차이나 別曲] [270] 부지런해서 나라 망치는 군주
경복궁의 핵심 건축은 근정전(勤政殿)이다. 앞의 ‘근정’은 “정무에 힘쓰다”라는 유가(儒家) 가르침에서 나왔다. 통치자인 군왕의 부지런함을 강조한 맥락이다. 정치는 결국 게으름에서 망하고, 부지런함에서 일어난다는 논리다.
그러나 통치자의 상태가 정상일 때만 그렇다. 역량과 깜냥이 갖춰지지 않은 통치자가 일을 너무 열심히 하다 보면 저지를 수밖에 없는 치명적 문제도 있다. 그때에는 평범함으로 일관하는 무사안일(無事安逸)이 더 나을 수 있다.
망국지군(亡國之君)은 나라를 망쳐 먹은 임금이다. 그런 군주는 중국 역사에 즐비하다. 근세에 들어 가장 유명한 임금은 숭정제(崇禎帝)다. 명(明) 왕조 276년의 역사에 종지부를 찍은 군주다. 이 사람 특기가 바로 ‘근정’이었다.
기울어가는 명나라 말기 상황을 고쳐보려고 시도한 부패 척결 등의 개혁 조치는 지나친 독선과 아집으로 오히려 전횡(專橫)에 머물고 말았다. 이어 그에게 닥친 것은 농민군으로 황궁에 침입한 이자성(李自成)의 군대였다.
그는 마침내 북경(北京) 자금성(紫禁城) 뒤에 있는 경산(景山)에 올라 목을 매 자살했다. 유명 역사가가 그에게 내린 평가는 “나라 다스림에 무능했고, 어리석은 조치만 일삼았다(治國無能, 昏招頻出)”이다.
명나라 패망을 부른 숭정제의 면모가 중국에서 다시 책으로 나왔다. 제목은 ‘숭정: 부지런했으나 망국을 부른 군주(崇禎: 勤政的亡國君)’다. 지난 9월에 선을 보인 이 책은 그러나 한 달 뒤에 사라졌다. 공산당의 조치였다.
아무래도 현재의 1인 권력자 시진핑(習近平) 총서기를 몰래 겨누지 않았느냐는 의심을 받은 것이다. 치적으로 내세우나 오히려 중국 경쟁력을 갉아먹은 반(反)부패, 일대일로(一帶一路), 대외 강경 외교 등 그의 정책과 조치를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겉으로는 여전한데, 실제 중국 분위기가 이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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