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서의 글로벌 아이] 중동전쟁에 `후순위`된 우크라, 난감한 젤렌스키

박영서 2023. 11. 24. 0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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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 하마스 공격 10일만에 이스라엘 방문
유대인 로비단체 AIPAC 美정치에 막강 영향력
美 유대인 750만, 우크라인 100만, 팔인 17만
하마스 공격 후 우크라 대한 포탄공급 대폭 감소
美국민들, 우크라이나 지원 중단 목소리 높아져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속이 타들어간다.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전쟁이 터지면서 최대 후원국인 미국이 이스라엘로 관심을 돌렸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미국의 지원 동력이 줄어들 것이라는 우려가 큰 상황이다. 러시아는 물론이고 '무관심'과도 싸워야 하는 젤렌스키 대통령은 난감하기만 하다.

◇막강한 '유대인 로비'의 힘

지난 10월 7일(현지시간)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기습공격했다. 가자지구는 또다시 전쟁터로 변했다. 11일 뒤인 10월 18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이스라엘을 전격 방문해 하마스를 강하게 비난하면서 이스라엘과의 연대를 천명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스라엘 뒤에는 미국이 있다"고 강조했다.

우크라이나 전쟁 때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바이든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방문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시작된 지 거의 1년 후에나 성사됐었다.

이어 바이든 대통령은 19일 저녁 백악관 집무실에서 행한 대국민 연설에서 이스라엘에 대한 '전례 없는' 지원 조치를 발표했다. 의회 역시 이스라엘을 지원하는 바이든 행정부의 정책을 초당적으로 지지하고 있다.

이러한 미국 정치인들의 '이스라엘 편들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강력한 로비의 영향을 꼽을 수 있다. 유대인 로비의 핵심은 '미국·이스라엘 공공정책위원회'(AIPAC, American Israel Public Affairs Committee)다. 1947년 워싱턴D.C에서 시작되어 1953년 정식 로비단체로 확대됐다. 막강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미국 정계에 영향력을 행사해 '신의 조직'으로 불린다. 워싱턴 의사당 가까운 곳에 본부가 있으며 미국 내 17개 지역사무소를 두고 있다.

미국 정치인들은 선거를 치르려면 많은 돈이 필요하다. 선거 기부금은 '정치적 표현의 자유'라는 이유로 옹호된다. 따라서 자금이 넉넉한 이익집단은 선거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AIPAC 역시 기부금을 거둬 정계에 뿌린다. 기부금은 대부분 유대인 부호들에게서 나온다. 유대인 부호들은 자선의 전통을 가지고 있어 기꺼이 그들의 부를 조직과 정치인에게 기부한다. 이들의 기부는 아랍계·무슬림 부자들의 기부금 규모를 훨씬 앞지른다.

AIPAC는 선거에 나가는 정치인이 이스라엘에 대해 우호적 태도를 가지고 있는지를 평가해 친(親)이스라엘 인사라면 선거자금을 충분히 지원한다. 반(反)이스라엘 인사라면 그를 낙선시키기 위해 반대편 후보에 돈을 쓴다. 이런 과정을 통해 미국 정치계를 장악해나가는 것이다.

미국의 많은 정계 인사들이 이번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에서 이스라엘을 전폭적으로 지지하는 배경에는 이런 정치 기부금의 힘이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 아랍계 사람들은 정치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는다. 특히 2001년 9·11 테러 이후 아랍계의 정치활동은 더 움츠러들었다. 아랍 정체성을 최전선에 두고 활동하는 정치인은 거의 없는 실정이다.

◇이스라엘이 우크라이나보다 '우선'

게다가 유대인은 득표율 면에서 우크라이나계보다 훨씬 매력적이다. 미국의 유대인 인구는 750만명으로 추산된다. 미국 전체 인구의 2.4%다. 그 중 약 580만명이 투표권이 있는 성인이다. 또한 유대인들은 캘리포니아, 플로리다, 일리노이, 뉴저지, 뉴욕, 펜실베니아 등 이른바 경합주에 주로 모여 산다. 대선을 좌우하는 중요한 주에 거주하고 있어 절대 소홀히 할 수 없는 유권자 층이라 할 수 있다.

이에 비해 우크라이나계 인구는 약 100만명에 불과하다. 팔레스타인계는 17만명이다. 이를 보면 유대계 유권자들은 중요한 표밭이다. 정치인들이 유대계 눈치를 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우크라이나가 미국의 중요한 동맹국이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돈'과 '표'에 있어 이스라엘에 훨씬 뒤처진다. 그러니 미국이 이스라엘로 관심을 돌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미국에 있어 이스라엘의 존재는 우크라이나보다 훨씬 중요하다.

전쟁 교착 상태에 빠진 우크라이나에게 무척 곤혹스러운 일이다. 미 의회 분위기를 보면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은 앞으로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이미 이스라엘과 하마스간 전쟁이 발발한 이후 우크라이나에 지원되는 포탄은 감소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지난 16일 기자간담회에서 우크라이나 동부와 남부 전선에서 널리 쓰이는 155㎜ 포탄을 언급하며 "공급이 감소했다. 정말 느려졌다"고 토로했다.

반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쾌재를 부른다. 우크라이나의 동맹인 미국과 유럽 국가들이 중동전쟁 격화에 주의를 돌리자 반사이익을 얻은 것이다.

◇"관심 좀 가져주세요" 간절한 호소

이런 미국 내 분위기 변화에 젤렌스키 대통령은 다급해졌다. 관심이 중동 쪽으로 쏠리자 미국과 서방에 우크라이나 지원이 지속돼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그는 "러시아만 좋아진다"면서 추가 지원을 애타게 호소하고 있다.

특히 공화당이 원조 패키지에 대해 소극적으로 나오자 젤렌스키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까지 소환했다. 그는 지난 5일 NBC 방송 인터뷰에서 내년 대선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다시 당선되면 바로 우크라이나를 방문해줄 것을 제안했다. 하지만 트럼프는 제안을 거절했다. 앞서 트럼프는 자신이 대통령에 당선되면 24시간 내에 우크라이나 전쟁을 끝낼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입장에선 2개의 전쟁을 동시 지원하는 일은 버겁다. 경제도 좋지않고 물가도 높은 상황이라 지나친 부담이다. 그래서 미국 내에선 우크라이나 지원을 중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미 NBC 방송은 미국과 유럽국가들이 우크라이나 전쟁을 끝낼 평화협상을 논의하기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젤렌스키는 이를 강력히 부인하고 있지만,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충돌이 우크라이나 문제의 흐름을 바꾼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중동전쟁으로 우크라이나 전쟁이 후순위로 밀리고 있다. '잊혀진 전쟁'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젤렌스키의 찌푸린 표정에는 낙담이 가득하다. 지금까지 보여준 자신만만함은 사라졌다. 이러다간 축출당할 수도 있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중동전쟁의 가장 큰 '피해자'가 됐다.

박영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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