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숙의3A.M.] 엔딩에도 서사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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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고는 한 인생의 집약이다.
우주와 같았을 누군가의 인생을 담기에, 부고의 짧은 몇줄은 덧없고 심지어 폭력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그가 써가고 있는 엔딩은 MS를 보호하는 든든한 방어막이 되고 있다.
그는 2012년 출간한 회고록에서 이라크 전쟁을 촉발한 2003년 자신의 유엔 안보리 연설이 "인생의 중대한 실수"였고 "내 부고기사가 실리면 중요하게 다뤄질 것"이라며 괴로움을 내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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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찰도 기록되기를 바라며 노력해야
영화 ‘내가 죽기 전에 가장 듣고 싶은 말(2017)’에서 좋은 부고 기사의 4가지 조건이 나온다. 1 고인은 동료들의 칭찬을 받아야 하고, 2 가족의 사랑을 받아야 하며, 3 누군가에게 우연히 영향을 끼쳐야 하고, 4 자신만의 와일드카드가 있어야 한다.
광고회사에서 억척스럽게 일하며 평생 완벽주의로 살아온 80세 할머니 해리엇은 부고 기사도 완벽하게 만들려 전담 기자 앤을 고용한다. 앤이 주변 사람들을 만나봤지만 서슴없이 상처주고 까칠하게 살아온 해리엇에게 좋은 말을 해주는 이는 하나도 없었다. 해리엇은 “내 와일드카드가 뭔지 모르겠어. 답을 찾는 걸 도와줘. 내 인생을 기록하기 전에 내 인생을 다듬는 일을 도와줘”라고 요청한다.
세상과 이별할 날이 멀지 않았다고, 은퇴할 날이 가까웠다고 갑자기 있지도 않은 업적과 좋은 말을 지어낼 수는 없다. 하지만 엔딩에 좋은 서사를 만드는 일은 가능하고 또 필요하다. 국가를 이끌었던 정치인, 내가 곧 회사의 얼굴인 CEO 또는 누군가에게 영향을 미치는 자리에 있던 사람이라면 좋은 엔딩을 만드는 일은 소망이자 의무다.
2000년 이전과 이후의 빌 게이츠는 사뭇 다른 사람이다. 2023년의 게이츠는 MS제국을 만든 ‘IT 황제’이자 억만장자로만 정의되지 않는다. 그는 2000년 스티브 발머에게 MS CEO 자리를 넘긴 후 사회 혁신가, 자선가로 변모했다.그는 다큐 ‘인사이드 빌게이츠’에서 스스로를 기술과 아이디어라는 망치를 들고 사회문제 솔루션을 찾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게이츠는 MS에서 세계로 영역을 확장해 위생이 열악한 지역의 화장실 문제를 해결하고, 소형 원자로를 개발하며, 소아마비 퇴치와 전염병 백신 보급에 나섰다. 그가 써가고 있는 엔딩은 MS를 보호하는 든든한 방어막이 되고 있다.
콜린 파월 전 미국 국무장관이 2021년 10월 별세했을 때 그가 평소 한 말이 회자됐다. 그는 2012년 출간한 회고록에서 이라크 전쟁을 촉발한 2003년 자신의 유엔 안보리 연설이 “인생의 중대한 실수”였고 “내 부고기사가 실리면 중요하게 다뤄질 것”이라며 괴로움을 내비쳤다.
파월은 이 오점을 평생 지울 수 없을 거라는 걸 잘 알았다. 그래서 인터뷰, 회고록 등 기회가 있을 때마다 후회하고 사과한다는 말을 반복했다. 파월은 자신의 엔딩에 성찰도 함께 기록되기를 바라며 노력했다.
코비 브라이언트는 압도적인 농구선수였지만 악명이 높았다. 지나치게 공격적인 코트의 ‘악동’이었고, 팀플레이에 젬병인 ‘같이 농구하고 싶지 않은 선수’였다. 코비는 이런 자신의 평판을 완전히 뒤바꾸는 훌륭한 엔딩서사를 만들어냈다. 2015년 11월 은퇴를 선언하는 글 ‘농구에게(Dear Basketball)’ 덕분이다. 코비는 나는 좋은 사람이라고 강변하지 않았다. 그러나 농구에 대한 진심으로 세상을 감동시켰다. 몇 년 후 비극적 죽음까지 더해져 코비의 엔딩은 영원히 박제됐다.
노벨상을 수상한 행동경제학자 대니얼 카너먼은 사람이 경험하는 것과 기억하는 것이 다른 ‘인지함정’을 말하며, 기억될 만한 이야기의 요소로 삶의 큰 변화나 중요한 순간, 그리고 엔딩을 꼽았다. 엔딩은 매우 중요하다.
이인숙 플랫폼9와4분의3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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