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차피 뒤처졌다면 ‘낙후의 장점’ 탐색 강원 생태자원, 문명사적 가치로 전환”

오세현 2023. 11. 24.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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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특집┃강원의 미래 그리는 사회학자를 만나다
[창간인터뷰②] 송호근 한림대 도헌학술원장
AI시대 전환기 ‘젊은 인재’ 성장 원동력
87년 체제 586세대가 망가뜨리고 있어
자연적인 시간에 따라 서서히 퇴장할 것
반도체산업 유치 실현가능성 의문
대규모 전원주택·실버타운 모델 구상
특목고 유치 등 지역인재 유출 막아야

‘별이 빛나는 창공을 보고, 갈 수 있던 시대는 얼마나 축복인가’ 게오르그 루카치의 말처럼 하늘에 별만 있어도 방향을 알 수 있던 시대는 지났다. 이제 좌표로의 별은 하늘에 없다. 그 자리는 인공지능(AI)이 혹은 디지털이 아니면 포털이, 또는 아무 것도 아닌 무의미가 대체할 수도 있다. 강원도민일보는 창간 31주년을 맞아 이 시대를 대표하는 사회학자와 AI전문 과학자를 초청, 전환기적 시대의 의미를 물었다. 이들을 통해 이 사회가 나아갈 방향을 진지하게 고민해보자는 취지다.

▲ 송호근 한림대 석좌교수

송호근 한림대 석좌교수가 바라보는 미래는 ‘예측 불가능’이다. 예측가능했던 과거와는 전혀 다른 세상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세상을 바꿔보겠다고 저마다 들고 나왔던 담론들도 결국에는 ‘공허한 슬로건’이 됐다. AI가 세상의 담론을 바꿀 수 있을지도 사실 회의적이다. 깊은 고민 없이 ‘내던지는’ 공약과 정치권의 이슈는 결국 지역을 갈라놓고 갈등을 심화시켰다. 그가 바라보는 강원의 미래는 ‘생태’다. 전반적인 산업 추세를 감안하더라도 ‘생태’를 앞세운 강원은 경쟁력이 있다고 믿는다. 송호근 한림대 석좌교수를 그의 집무실에서 만났다.


-한림대가 글로컬대학30 본 지정에 성공했다. 성공요인의 핵심은 혁신이다.

“혁신이 너무나 절실하고 시대적인 요청이기는 하다. 내부의 동력을 어떻게 만들어 내느냐가 문제다. 30여 년 전 한림대에 왔을 때와 비교하면 지금 동력이라고 할 만한 게 보이지 않는다. 춘천만 하더라도 여러 산업단지가 있지만 그 안에서 실제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에 대해서, 우리가 어떻게 키워 나가야 되는지에 대해서 시민들이 잘 모른다. 현황을 알려주는 게 필요하다. 우리가 어떤 상태인지 알려주는 보고서가 필요하다.”

-낙후된 이유는 여러가지다.

“현재 상황에 처한 이유는 많다. 지자체나 지역의 울타리가 깨지지 않고 있다. 인식의 경계가 무너지지 않는거다. 혁신은 내부에서 크게 각성을 하거나 외부에서 무언가를 끌고 와야 이뤄진다. 외형적으로는 조금씩 전진해왔지만 시대의 발전 과정에 대한 비판적 보고, 비판적 검토가 부족하다. 동력을 일궈내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지 분석해야 지향점이 나온다. 그래야 강원도민, 춘천시민과의 공유가 이뤄진다. 제안만 많고 아이디어도 만발하는 데 실행되는 건 부족하다.”



-반도체 산업이 계속 화두다.

“반도체 산업 설계도를 봤다. 그림은 누구나 그릴 수 있다. 30년 간의 발전이 지체된 가장 중요한 요인에 대한 검토 없이 설계도 그리는 것은 누구나 다 한다. 시도는 좋다. 그러나 반도체 교육 대상자들이 원주까지 갈지는 회의적이다. 가르칠 사람도 부족하다. 배울 사람, 가르치는 사람도 상주해야 하는데 그게 가능할지 모르겠다. 노무현 정부 때 국공립 기관들을 전국으로 분산시켰다. 20년이 지났으니 정착된 것처럼 보이지만 한전이 들어가 있는 나주를 보면 평야에 건물 하나 서 있다. 사람들의 구체적인 삶의 양태가 어떤지, 그 지역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평가나 조사를 해봤을 지 의문이다. 원주에 반도체 교육센터를 짓고 분산하고 각 지역에 안배하는 것은 좋은데 실현가능성은 다른 문제다.”


-춘천시는 인구 30만명 돌파, 교육도시를 주창했다.

“교육도시에 대한 지자체 차원의 움직임을 못 봤다. 주로 대학이 하고 있는 일이다. 인구 30만명 돌파를 위해 주민등록 주소지를 옮기는 작업들, 캠페인을 하고 있는데 수동적인 조치다. 좋으면 스스로 옮겨올 것이다. 춘천에 명문고를 만드는 것도 생각해 봐야 한다. 전국에서 따를 수 있는 돌봄·방과후 교육 모델을 만드는 방안도 필요하다. 전국적으로 유명해지면 사람들이 올 수도 있다. 현행 교육 체계 안에서 아무 계획도 없이 교육도시라고 하면 이런 형태의 ‘공허한 슬로건’들이 지난 30년 간 수도없이 나왔다.”



-강원의 미래는 어디서 찾아야 할까.

“강원의 인구가 150만 정도 되니 서울 영등포구와 비슷하다. 대한민국에서 제일 넓은 땅덩어리에 150만명이 사는 셈이다. 생태학적으로는 다른 도시가 부러워할 만 하다. 전반적인 사회적 추세를 봐서도 앞으로 국민들은 생태학적인 삶을 존중할 것이다. 대규모 전원주택을 만들수도 있다. 춘천은 병원이 2개니까 의료·실버타운의 전형적인 모델을 만들어 전국에 보여줄 수 있다. 제조업체를 끌고오는 것 보다 생태학적 가치를 위해서는 이 같은 방법이 더 좋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까.

“한마디로 얘기하면 강원도와 춘천시는 지난 30년 간 발전 전략적 측면에서 원심력이 아니라 구심적인 대안만 모색했다. 밖으로 뻗어나가지를 못했다. 두번째는 실행가능한 게 없었다. 우리가 갖고 있는 귀중한 자산, 결국엔 생태학적 자산인데 이를 갖고 뭔가 꽃피워서 외부의 자원이나 인구를 유입할 생각을 전혀 안했다. 세번째로는 강원도의 유능한 인재들을 전부 다 외부로 유출하는 정책의 흐름을 아직도 끊지 못했다.”


-강원도에서 개발과 생태학적 가치는 늘 충돌해왔다.

“제조업을 유입하거나 이를 쫓아가는 전략은 이제 통하지 않는다. 어차피 가장 낙후된 지역이라고 하면 낙후의 장점(Adventage Backwardness)을 찾아야 한다. 금방 또 떠오르는건 생태학적 가치다. 생태학적 가치를 21세기 문명사적인 가치로 전환하는 방법은 고령자 의료타운·실버타운이다. 같이 살면서 건강을 돌보고 도시에서 소비하는 삶이다. 다음에는 역시 교육도시다. 명문대를 만드는 것은 어렵다. 특화된 특목고들을 유치해야 한다. 자녀들 때문에라도 사람들이 온다. 반도체 공장을 끌고 오겠다는 발상은 실현가능성이 없다.”


-내년 총선이 화두다. 수도권 메가시티를 포함해 신도시 개발사업 계획이 나오고 있다.

“굉장히 급하다. 이 정부의 문제점은 이런 정책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에 대해서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그 과정을 다 알기는 어렵지만 어떤 논의를 거쳐 결과가 무엇인지 순서와 절차가 필요한데 지금은 이런 게 사라졌다. 수도권 신도시가 맞을 수도 있고 맞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왜 김포인지 이유가 없다. 선거를 통해 정책이 개발된다고 하지만 정당한 명분과 설득력이 보이지 않는다.”

-강원도 입장에서는 위기다.

“보수정권은 수도권의 매력을 높이는 정책을 좋아하는 것 같다. 좌파는 전국을 분산하는 정책을 실시했다. 정권의 성향이 그렇기 때문에 뭐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것이 과연 우리나라 전체의 발전 잠재력이나 역량에 어떤 영향을 줄 지는 따져봐야 한다. 수도권 집중이 과연 맞는지 모르겠다.”


-총선을 앞두고 87년 체제의 유지와 80년대 운동권 주류인 586에 대한 평가가 관심이다.

“586이 87년 체제를 출범시켰다는 것에 대해 난 부정적이다. 87년 체제를 출범시킨 것은 노동계급하고 일반 중산층, 교육받은 젊은 층이다. 그 다음이 운동권이다. 당시 이를 추동했던 세력은 586 세력이지만 시기적인 흐름을 잘 탄 것이다. 연구들을 보면 1인당 국민총생산이 6000불 정도되면 민주화 요구가 커진다. 권위주의정권은 경제성장에 몸을 바친다. 그런데 경제 성장이 되면 권위주의 체제의 기반은 무너진다. 성장은 권위주의의 제초제가 되는 것이다. 경제성장의 일반적인 법칙에 운동권이 올라탄 것이다.”


-586퇴장은 현실적으로 가능한가.

“87년 체제는 어떻게 보면 586이 망가뜨리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586이 주도권을 가진 것은 정확하게 말하면 2004년(노무현 전대통령취임)부터다. 87년 체제를 만들었던 노동계만 보더라도 민주노총은 노동조합이 원래 가야 될 정도를 이탈하도록 만들었다. 일반 젊은 중산층이 가지고 있었던 민주화에 대한 아주 건전한 열망은 어떻게 됐나. 586은 3040세대를 끌어들여 또다른 진보의 세대적 연대를 만들어 내는데 성공했다. 그런데 그 성공의 기반은 상대적 박탈감을 강화한 것이다. 이를 테면 ‘야 지금 다 잘 사는데 너희들 그렇게 살아도 되겠어? ’라는 식이다. 재벌에 대한 증오심이나 상층에 대한 증오심을 일반화시키는 데는 성공했다. 그러면 586이 경제성장의 선물을 우리한테 돌려줄까? 그건 회의적이다. 586은 언제 끝날까. 내 생각엔 자연적인 시간에 따라서 서서히 퇴장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을까 싶다.”


-AI 혁명이다. 또 다른 시대가 왔다.

“중요한건 인력이다. 데이터가 많이 쌓여 있는데 젊은 친구들이 얼마나 많이 배출되느냐가 경제성장, 발전의 추동력을 좌우할 것이다.”


-AI가 사회담론을 바꿀 수 있는 힘이 될 수 있을까.

“나도 모르고 과학자들도 모른다. 과거에는 예측이 가능했지만 지금은 예측할 수 없다. 루카치의 표현대로 예전엔 별을 따라가면 됐지만 이젠 그런 것이 없다. 그래서 답답하다.”

대담·송정록 강원도민일보 편집국장 정리/오세현


■ 송호근 한림대 석좌교수는

서울대 사회학 학·석사, 하버드대 대학원 사회학과 박사를 받았다. 포항공대 인문사회학부 석좌교수를 지내다 지난해 10월 한림대 석좌교수, 한림대 도헌학술원장에 부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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