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석재의 돌발史전] 무릎을 꿇었던 건 추진력을 얻기 위해서라고?

유석재 기자 2023. 11. 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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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로마사 필자들, 모토무라와 시오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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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릎을 꿇었던 건 추진력을 얻기 위함이었다'는 인터넷 유행어를 낳았던 김성모의 만화 '대털 2.0의 한 장면.

“무릎을 꿇었던 건 추진력을 얻기 위함이었다”는 인터넷 유행어가 있었습니다. 김성모의 만화에 등장하는 일견 황당한 장면의 대사에서 유래된 것이죠. 그런데 이게 그냥 웃고 말 것이 아니라 ‘회복 탄력성’이라는 용어와 관련이 있다는 점을 눈여겨 봐야 할 것입니다. 패배하고 굴복하는데도 오히려 절치부심, 패배에서 교훈과 힘을 얻어 더욱 강해진다는 말입니다.

모토무라 료지(本村凌二)라는 일본 작가가 있습니다. 아니, 우리나라에서 이런 사람을 ‘작가’라고 했다가는 비난이 쏟아질 수 있습니다. 도쿄대 명예교수인 이 인물은 강단의 정통 역사학자로서 ‘일본 로마사 연구의 권위자’로 불리는 학자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일본에선 이런 필자들이 훌륭한 대중 역사서를 씁니다. 최근에 국내 번역된 책 ‘로마사를 움직이는 12가지 힘’은 무척 잘 쓴 대중서입니다. 도대체 왜 지금의 우리가 2000년 전의 로마 역사를 알아야 하는지 일목요연하게 설명해 주고 있으니까요.

모토무라는 심지어 이런 말까지 합니다. 강의 중에 학생들에게 질문을 던진다는 것이죠. “제갈량의 군대와 로마군이 싸운다면 어떻게 될까요?” 마징가제트와 태권브이가 싸우면 누가 이길까라는 질문이 생각나는 초등학생 스타일의 질문 같습니다만, 확실히 눈길을 끌긴 합니다. 더구나 그는 답까지 준비해 놓고 있습니다. “저는 첫 번째 전투에선 로마군이 진다는 데 걸겠습니다. 로마군은 제갈량처럼 그럴듯한 술수를 부릴 줄 모르니까요.”

그러나 두 번째 전투부터는 로마군의 승률이 눈에 띄게 올라갈 거라는 얘깁니다. 도대체 왜? 로마군의 ‘와신상담(臥薪嘗膽) 능력’ 때문이라는 거죠. 삼니움에 깨지고 카르타고에 격파당했으면서 끝내 그 패전에서 교훈을 얻어 끈질긴 싸움 끝에 마침내 이기고야 마는 능력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회복 탄력성’이라는 로마사의 중요한 포인트라는 거죠. ‘무릎을 꿇고 나서 반드시 추진력을 얻었다’는 얘기가 됩니다.

옛 로마제국의 위용을 엿볼 수 있는 콜로세움.

그런데 제갈양 얘기를 꺼낸 건 로마사의 여러 특징 중 한 가지를 설명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모토무라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서양 고대사의 완성이었으며 그 해체가 곧 중세의 시작이었던 제국(帝國)은 바로 로마였고 말입니다.

독일 역사가 랑케는 이런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로마 이전의 모든 역사는 로마로 흘러들어 갔고 이후 역사는 로마에서 나왔다.” 일본 정치학자 마루야마 마사오는 “로마사에 인류의 경험이 응축돼 있다”고 했습니다. 20~21세기 세계 현대사에 나타나는 온갖 모습의 단초가 이미 로마의 역사에 드러나 있었다는 것입니다.

결곡 모토무라는 장대한 로마 역사의 심장부를 관통하는 12가지 코드를 뽑아냅니다. 시련을 도약의 발판으로 삼았던 ‘회복 탄력성’ 말고도 독재정치를 경계했던 ‘공화정’의 전통이 존재했습니다. 인류 최초로 공적 개념을 발견한 ‘공공성’도 중요한 요소였습니다. 이어 사회적 양극화와 갈등 속에서 성장한 ‘대립과 경쟁’, 리더십의 진수를 보였던 ‘영웅과 황제’, 로마 전성기의 비결인 ‘후계 구도’를 비롯해 ‘선정과 악정’ ‘5현제(五賢帝)’ 역시 중요한 포인트로 꼽습니다.

반면 돌이킬 수 없는 제국의 몰락과 관련된 ‘혼돈’ ‘군인 황제’ ‘유일신’ ‘멸망’이란 키워드도 있습니다. 여기서 조심스럽게 쓰긴 했지만 ‘유일신’이라는 것은 뒤늦게 국교로 삼은 기독교의 유일신 사상이 필경 로마제국의 다양성을 저해했고 멸망의 원인 중 하나가 됐다는, 에드워드 기번을 계승한 분석입니다.

시오노 나나미.

그런데 일본의 로마사 필자로 여기서 우리가 생각나지 않을 수 없는 인물이 있죠. 시오노 나나미(鹽野七生)입니다. 방대한 분량의 저작 ‘로마사 이야기’는 한때 우리나라에서도 뭔가 지적인 분위기를 원하는 많은 사람들의 필독서였습니다. 얼핏 보면 전문가가 대중서를 쓰고 강단 밖의 필자가 전문서를 쓰는 듯하기도 합니다만….

‘로마인 이야기’의 마지막 권인 15권이 국내 출간된 2007년에 저는 조선일보 ‘BOOKS’난에 서평을 썼습니다. 제 기사 리드를 지나가다 잠깐 본 선배 한 분이 “이거 로마인 이야기 쓴 거 맞아?”라고 의아해했습니다. 좀 의외의 리드를 쓰려다보니 ‘허영만’이 등장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건 이런 얘기였습니다. 허영만의 1996년 만화 ‘안개꽃 까페’의 한 장면이었죠. 광화문 술집 여종업원이 틈틈이 독서에 열중하고 있는 걸 본 손님이 그게 무슨 책이냐고 묻습니다. 바로 ‘로마인 이야기’였습니다. 한 역사학과 교수는 “1990년대 중반부터 면접을 보는 수험생 대다수가 ‘로마인 이야기’를 읽고 역사에 관심을 가지게 됐노라고 당당하게 밝혀서 할 말을 잃었다”고 털어놓기도 했습니다.

1995년 제1권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가 우리말로 첫 출간된 지 12년 동안 그 책은 한국에서 ‘독서 교양인’을 상징하는 기호와도 같았습니다. 일본에서 문고판을 빼면 230만 부가 팔린 걸 볼 때 250만 부가 팔리고 539쇄를 찍어내게 한 우리의 관심은 참으로 폭발적이었다고 할 수 있었습니다.

200자 원고지 3만 장 분량의 대작 마지막 권은 ‘국가의 종말’보다는 ‘문명의 종말’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로마는 치열한 공방전 속에서 장렬하게 전사한 것이 아니라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이에 멸망했으며, 식민지의 독립으로 해체된 다른 제국과는 달리 본국과 속주가 같은 운명을 맞았다는 것입니다. ‘썩은 고목이 쓰러지듯 무너졌다’는 에드워드 기번의 고전적인 문구 대신, 시오노는 “언제인지도 모르게, 그래서 ‘위대한 순간’도 없이, 그렇게 스러져갔다”고 담담하게 말했습니다.

그의 책에서, 로마사는 더 이상 먼 나라의 옛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카이사르와 아우구스투스, 마르쿠스 아울렐리우스는 현실주의와 노블레스 오블리주(지배층의 도덕적 책임), 타인을 인정하는 관용성의 견지에서 현대적이고 입체적인 인물로 되살아납니다. 이상적인 세계화를 염두에 둔 독창적인 해석, 소설을 방불케 하는 역사평설(歷史評說)식의 서술은 정보와 인문적 교양, 재미를 바라고, 나아가 그중 일부는 은연중 지적 허영을 누리고 싶어하는 독자들을 만족시키기에 충분했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로마제국의 아우구스투스 황제.

하지만 시오노의 책은 ‘빛’과 ‘그림자’를 동시에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나친 상상력으로 역사적 사실을 왜곡한 소설”(허승일 서울대 명예교수)이라는 비판에서 “치밀한 구성으로 독자를 사로잡은 아마추어의 역사서”(김경현 고려대 교수)라며 나름대로의 가치를 인정하는 평가까지 국내 전문가들의 시각은 다양하지만, 그들 대부분이 이 책의 심각한 문제점을 짚고 있습니다.

2006년 일본어판 완간 직후 가졌던 인터뷰에서 시오노는 “모든 인종이 평화롭게 살 수 있는 시대가 있었다는 사실을 쓰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집필 동기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문제는 그 갈망이 너무나 지나쳤다는 것입니다. 로마의 ‘통합’과 ‘관용’을 미화하는 입장 위에 서다 보니 그리스의 민주정과 기독교의 일신교(사실 기번과 모토무라도 크게 다르지 않지만)는 폄훼의 대상이 됩니다.

마지막 15권에서는 뭔가 잘못 읽은 게 아닌가 의아스러울 대목조차 나옵니다. “평화가 왜 어떻게 실현됐는지를 아는 게 목적인 이상 정치체제가 제정(帝政)이라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는 서술은 “자유와 평등의 이념은 분열과 위축을 초래한다”는 시각으로까지 이어집니다. 전제군주정의 시작을 알린 카이사르에 대한 일방적인 찬사와 키케로 같은 지식인에 대한 폄하 역시 도를 넘어선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더욱 큰 문제는 저자의 그런 시각들이 곳곳에서 ‘자유와 평등보다는 체제 순응을 통해 대국(大國)의 길을 걸어 온’ 현대 일본의 역사와 겹칠 뿐만 아니라, 15권 전체가 과거 일본 제국주의에 대한 추억을 넘어서서 일본의 우익적 진로 개척을 위한 어드바이스일 수도 있다는 섬뜩함입니다. 성공과 권력지상 같은 공격적인 가치들을 담고 있는 이 책이 각광을 받고 있는 것은 참으로 복합적인 시대적 상황의 반영이었던 것입니다.

‘평화를 위해선 제국(帝國)도 상관없다’는 것은 강자의 논리이며 무인(武人) 중에서도 극단적인 부류의 논리입니다. 시오노는 대단히 섬세하고 특정 부분에 지나칠 만큼 매혹을 느껴 자기도취에 빠질 지경이 되는가 하면, 그러면서도 무척이나 남성적인 작가라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제국에 대한 애착과 회고라는 점에서는 모토무라 역시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잘 정리된 일본 필자들의 책을 읽되 비판적으로 읽어야 할 이유입니다. 과거 무릎을 꿇은 적이 있었으나 이제는 추진력을 얻어 비상하고 있는 것이 다름아닌 우리라면 더더욱 말입니다.

▶'유석재의 돌발史전’은

역사는 과거의 일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입니다. 뉴스의 홍수 속에서 한 줄기 역사의 단면이 드러나는 지점을 잡아 이야기를 풀어갑니다. 매주 금요일 새벽 여러분을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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