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레옹도 감탄한 조선시대 갓… 그 매력의 재발견[강인욱 세상만사의 기원]
한국의 갓, 고구려에서 시작
갓이라는 모자는 챙이 달려서 햇빛을 피하는 것이 주목적으로 한국뿐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발견된다. 중국 신장의 실크로드에서는 2500년 전부터 짧은 챙이 달린 모자를 쓴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그냥 고깔을 썼다. 추운 초원에서 빠르게 말을 달려야 하는 지리적 특성을 감안한 결과이다. 현재 우리가 쓰는 갓과 같은 형태의 모자는 고구려의 감신총 벽화에서 처음 등장했다. 그리고 둔황의 막고굴에 그려진 고구려인의 모습에서도 갓이 보인다. 따라서 현재까지의 자료로 볼 때 갓을 처음 쓴 사람은 고구려인일 가능성이 크다. 동아시아에서 기마문화가 발달한 흉노를 비롯한 유목국가나 중국 어디에서도 비슷한 넓은 챙의 갓을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몽골 영향받은 패랭이
비록 실물 자료는 없지만 공민왕 대에 검은색의 갓은 양반이 쓰고 흰 갓은 평민이 쓰는 법을 정했다고 하니, 지금 우리에게 친숙한 양반의 갓인 흑립(黑笠)은 이때 본격적으로 등장한 셈이다. 하지만 갓이 널리 유행한 것은 조선시대이다. 조선 왕조는 성리학적 통치질서를 확립하며 엄격한 신분 질서를 강조했고, 각종 관직의 품계에 따라 갓과 장식을 규정했다. 갓은 단순한 모자를 넘어서 새로이 등장한 사대부 계급의 상징이 되면서 더욱 다양해지고 화려하게 발달하며 조선을 대표하는 상징으로 자리매김했다. 반면 고려시대로부터 전하던 패랭이는 평민의 것으로 남았다.
갓의 위엄에 반한 나폴레옹
하지만 홀이 가져온 조선의 그림을 보는 순간 나폴레옹은 눈을 반짝이며 깊은 관심을 보였다. 나폴레옹은 “노인네가 큰 모자, 긴 흰수염에 손에는 기다란 파이프를 쥐고 있네. 하! 정말 잘 그렸어!”라며 감탄했다. 평소에도 위엄 있는 이미지로 보이길 바랐고 큰 키가 아니어서 언제나 옷에 신경 쓰며 위엄을 드러냈던 나폴레옹이었다. 그러니 머나먼 조선에서 화려한 갓으로 위엄을 부린다는 것이 무척 와닿았던 것이다.
나폴레옹 이후 구한말 한국을 여행한 서양 여행가들은 ‘한국은 모자의 나라’라고 감탄하며 작은 키를 커버하고 화려한 패션을 자랑하는 훌륭한 예술 작품이라 격찬했다. 그런데 외부의 평가는 국권을 침탈당하는 1900년대 이후에 급변하였다. 망해가는 조선에서 갓 쓴 양반을 보고 쓸데없이 큰 모자는 낙하산으로 쓰냐는 비아냥거림으로 이어졌다. 일본에서도 조선 침탈을 본격화하며 유교에 사로잡혀 망국의 길로 간다는 침략 논리를 강화했고, 그 본보기로 화려한 갓을 대표로 들었다. 국운이 쇠하는 시점에서 갓은 망해가는 나라의 상징이 된 것이다. 나라를 잃어버리자 조선을 대표하던 갓은 근대화를 늦춘 구세대를 대표하여 망국의 상징이 되었다. 이후 한국이 해방된 이후에도 ‘갓 쓰고 자전거 타기’ 같은 속담처럼 나폴레옹마저 감탄한, 한국을 대표하는 최고 명품인 갓은 구한말을 거치며 쓸모없는 것을 대표하게 되었다. 그리고 다양한 매체에서 재현된 갓은 천편일률적으로 검은색의 흑립이고 옷도 흰색 도포여서 그리 멋있어 보이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최근 드라마와 대중문화에서 갓이 화려한 장식과 다양한 컬러의 의복과 어울려 재현되자 세계는 마치 200년 전의 나폴레옹처럼 다시 한국의 갓에 환호하기 시작했다.
한류 타고 ‘K복식’ 상징으로
세계 곳곳에 챙이 달린 모자는 많이 있지만 갓만큼 다채롭게 그 복식문화를 꽃피운 것은 없으니, 갓은 가히 한국의 미를 대표함에 부족함이 없다. 이렇게 갓에 대한 재평가가 일어나자 중국 일각에서 갓이 중국제라는 주장도 나왔지만 갓은 고조선과 부여에서 유행했던 상투에 유목민들의 전투 모자가 결합된 대표적인 한국적 의복이다. 한국의 복식에는 갓뿐 아니라 북방 유목 전사들의 옷에서 기원한 철릭도 있다. 철릭도 고려시대에 몽골의 영향으로 도입된 이후 조선시대에 양반 신분을 대표하는 화려한 외출복이 되었으니 갓과 비슷하다. 이렇듯 중국과 다른 한국 고유의 복식문화 배경에는 북방의 여러 문화를 수입하고 자신의 사회에 맞게 발전시켰던 문화적 저력이 있다. 하지만 구한말 속절없이 외세의 침략을 당하면서 가장 자랑스러운 물건에서 가장 창피한 물건으로 전락하기도 했다. 최근 한국의 여러 대중문화가 세계적으로 환영받고 있지만, 여전히 우리를 둘러싼 지정학적 상황은 위태롭다. 바로 갓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이중적인 의미가 아닐까.
강인욱 경희대 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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