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익 정부의 임신중지 지원자 기소, 한국에도 경종”
“폴란드 1993년 이후 범죄시해
여성 자율성, 정치적으로 거래
우익 포퓰리즘 정부 활동가 압박”
국제앰네스티와 무죄 촉구 탄원
“임신중지의 완전한 비범죄화를 촉구하는 것이 나의 책임이다.”
지난 22일 오후 8시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 강의실에 모인 30여명이 임신중지 합법화 운동을 상징하는 초록색 손수건을 펼쳐 보였다. ‘임신중지는 인권이다’라고 적힌 손수건을 가장 앞에 들고 선 이는 폴란드 출신 임신중지 활동가 유스티나 위드진스카(49)였다. 여성의 임신중지를 도왔다는 이유로 1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위드진스카는 이날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학생들, 교수진과 임신중지 비범죄화의 최전선에 선 자신의 경험을 나눴다.
폴란드 임신중지 지원 단체 ‘임신중지 드림팀(ADT)’을 창립한 위드진스카는 지난 3월 폴란드 법원에서 사회봉사 240시간을 선고받았다. 임신부에게 우편으로 임신중지 의약품을 보냈다는 이유였다. 그는 코로나19 팬데믹이 시작된 2020년 2월 아니아라는 여성에게 자신이 갖고 있던 임신중지 약을 우편으로 보냈다. 그는 “아니아는 폭력적인 파트너로 인해 감금당한 상황이었다”며 “우리가 도움을 주든 주지 않든 아니아는 임신을 중단하겠다는 절박한 e메일을 보내왔다”고 했다.
위드진스카는 이후 기소부터 재판까지 지난한 싸움의 연속이었다고 했다. 그는 “우익 포퓰리즘 정부로 인해 사법부 독립성이 사라진 폴란드에서 공정한 판결을 받을 가능성은 작았다”면서 “1년여간 이어진 재판은 나와 활동가들에 대한 괴롭힘이자 시간과 돈, 정신적 에너지를 모두 고갈시키려는 시도였다”고 했다. 항소심을 준비 중인 위드진스카는 국제앰네스티와 함께 무죄를 촉구하는 글로벌 탄원운동을 하고 있다.
재판 진행 중에도 위드진스카는 임신중지를 지원하는 일을 계속했다. 페미니스트 이니셔티브 ‘국경 없는 임신중지’와 함께 오전 8시부터 오후 8시까지 임신중지를 문의하는 핫라인 전화를 받아 임신중지 약을 구할 방법과 자가로 임신중지할 때 겪을 일을 설명한다. 위드진스카는 지난 3년간 단체와 함께 폴란드에서 12만5000명 이상이 안전한 임신중지를 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고 했다. 그는 “폴란드 정부는 2022년 한 해 동안 160건의 임신중지를 제공했으나 우리 단체는 하루에만 128건을 지원했다”며 “임신중지를 위한 실질적인 지원을 하고 있다”고 했다.
가톨릭 신자 비율이 90%인 폴란드는 유럽에서 임신중지가 가장 엄격한 국가로 꼽힌다. 폴란드 헌법재판소는 2020년 기형인 태아의 임신중지도 위헌이라고 판단했다. 위드진스카는 “1993년까지는 폴란드도 임신중지가 합법이었지만 공산주의에 맞서 싸운 가톨릭교회에 대한 감사 표시로 임신중지 권리가 박탈된 것”이라며 “하루아침에 여성의 신체와 자율성이 정치적 이유로 거래됐다”고 했다.
이 때문에 폴란드 여성들은 공적 의료 시스템 안에서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고 했다. 위드진스카는 “임신중지를 거절당한 여성들은 ‘다른 병원으로 가라’는 한마디 외에 구체적인 안내를 듣지 못하곤 한다”면서 “산부인과 의료진으로부터 주종관계와 같은 폭력이나 낙인을 경험하기도 한다”고 했다. 그는 임신부가 위험에 처해도 태아가 자연히 사망할 때까지 기다리는 의사들 때문에 여성들이 사망한 사례도 있다고 했다.
위드진스카는 임신중지와 이를 지원하는 것을 범죄로 보려는 현실에 맞서야 한다고 했다. 그는 “내가 겪고 있는 재판은 폴란드의 포퓰리스트가 활동가들을 기소하려는 욕심을 갖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면서 “한국에서는 아직 일어나지 않았을지 모르지만 미국의 ‘로 대 웨이드’ 판례 번복만 하더라도 임신중지가 금세 범죄화될 수 있다는 경고로 봐야 한다”고 했다.
그는 임신중지 의약품의 접근성을 높여야 한다고 했다. 세계보건기구가 필수의약품으로 지정한 유산유도제 약품 미페프리스톤은 국내에도 도입되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위드진스카는 “가장 안전하고 값싼 임신중지 방법인 의약품을 도입하지 않으려는 것은 지금 체계로 경제적 수익과 권력을 창출할 수 있기 때문”이라며 “여성들이 자기결정권을 직접 통제할 수 있도록 접근성이 높은 의약품을 더욱 장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연에 참여한 대학생 어지영씨(24)는 “한국에서 형법상 낙태죄를 폐지하려 했던 페미니즘 운동과 비교해서 들었다”며 “위드진스카의 경험을 들으며 한국에서 페미니즘을 실천할 때 어떻게 행동할 수 있을지 본받을 수 있었다”고 했다.
김송이 기자 songy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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