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중대재해법 유예’ 또 타협하나…“조건부 논의 찬성”

홍익표 ‘2년 유예’ 조건으로 정부 사과·이후 확대 적용 제시
“정부 ‘노동 후퇴’ 비판 자격 있나” 지적 나와…노동계도 반발

같은 장소 다른 시선 서울 중구 장충체육관에서 23일 열린 대한간호협회 창립 100주년 기념대회에 참석한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왼쪽)와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다. 권도현 기자 lightroad@kyunghyang.com

내년 1월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사업장 확대를 앞두고 여당과 경제단체가 또다시 법 적용 유예를 주장하는 가운데 더불어민주당도 유예 쪽으로 기운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홍익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23일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중대재해법 적용 2년 유예 논의에 대한 조건부 찬성 입장을 밝혔다. 2022년부터 시행 중인 중대재해법은 연간 산재 사망사고의 80%가 발생하는 50인 미만 사업장에는 적용되지 않아 ‘반쪽짜리’ 평가를 받아왔다.

홍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정책조정회의에서 “세 가지 조건을 바탕으로 중대재해법에 대한 논의를 시작하겠다”며 “(세 조건이 충족되면) 중소기업 공동교섭권 관련 법안도 중대재해법 2년 유예와 함께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세 가지 전제조건이란 정부의 공식 사과, 산업안전을 위한 구체적인 계획과 재정지원 방안, 2년 연장 후 중대재해법을 모든 기업에 적용한다는 경제단체의 확실한 약속 등이다.

중대재해법은 사망 등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안전 의무를 소홀히 한 사업주나 경영 책임자에게 1년 이상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 벌금에 처할 수 있도록 한다. 2021년 제정 당시 5인 미만 사업장은 적용 대상에서 제외했고 5인 이상~50인 미만 사업장에는 3년간 적용을 유예했다. 정부·여당은 내년 1월27일 법 확대 시행을 앞두고 5인 이상~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유예기간을 2026년 1월27일로 2년 더 연장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임이자 국민의힘 의원이 발의한 개정안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민주당이 중대재해법 적용 2년 추가 유예 카드를 검토하는 것은 내년 총선을 앞두고 중소기업 사장들의 표를 의식한 행보로 풀이된다. 원내 관계자는 “유예기간 만료를 몇개월 앞두고 중소기업 현장에서 유예하자는 요청이 들어왔고, 여당은 물론이고 민주당 몇몇 의원들이 유예하자는 의견을 냈다”고 했다.

하지만 민주당이 중대재해법 적용을 유예한다면 윤석열 정부의 노동권 후퇴를 비판할 자격에 의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겉으로는 친노동을 이야기하지만 결국 친기업 정책을 펴는 정당이란 비판도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민주당 소속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위원들은 반대하고 있다. 환노위 간사인 이수진 의원(비례)은 통화에서 “이 법이 통과될 때도 사회적 합의까지 상당한 시간을 들였던 만큼 유예하려면 노·사·정 사회적 대화가 선행돼야 한다”고 밝혔다.

정의당과 노동계는 강하게 반발했다. 김희서 정의당 수석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보다 우선하는 것이 있다는 파렴치한 행위에 동조해서는 안 됨을 민주당에 강력히 경고한다”며 “죽지 않고 다치지 않고 안전한 곳에서 일하자는 절박함이 담긴 법을 누더기로 만들어 최소한의 염치도 없는 국회가 되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국회 생명안전포럼,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 등 산재 피해자와 유가족들은 전날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중대재해의 80%가 발생하는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지난 10년간 죽어 나간 노동자가 1만245명이고, 작년에 사고로만 707명이 죽었다. 이들의 목숨은 민생이 아니란 말인가”라며 개정안 폐기를 촉구했다.

김윤나영·신주영 기자 nayoung@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