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핵 위협에 재래무기까지…완충판 없는 남북 ‘평화 역주행’
한·미·일 ‘준군사동맹’ 강화
북·러 군사밀착 ‘신냉전’ 속
남북 접경지 군사대립 부활
과거 냉전 위기 더해 이중고
북 국방성 “통제 불능 국면”
우발적 충돌·확전 양상에도
긴장완화 방안 찾기 어려워
남북이 모두 9·19 군사합의를 무력화하며 한반도의 군사적 완충 지대가 사라졌다. 북한 핵 무력 고도화와 ‘신냉전’이 지배하는 한반도 정세는 접경 지역에서의 재래식 군사 대결이라는 과거 냉전적 위협이 더해져 ‘이중고’에 직면했다.
우발적 충돌에 따른 확전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 커졌지만 실질적인 긴장 완화 방안은 찾아보기 어려운 현실이다.
남북이 2018년 9월 체결한 9·19 군사합의는 지상·해상·공중 모든 공간에서 적대적 군사 행위를 금지해 군사분계선(MDL)과 해상 북방한계선(NLL) 일대를 완충 지대로 만들었다는 데 의미가 있다. 합의 체결 이후 남북의 우발적이고 직접적인 충돌은 없다시피 했다. 합의 무력화로 향후 MDL과 NLL 인근에서 포 사격 훈련, 항공기를 활용한 정찰·감시 활동과 실탄 사격 훈련이 재개될 환경이 조성됐다.
한반도의 군사적 위기는 더욱 복잡해지고 엄중해졌다. 그간 한반도는 북한 핵 무력과 북·러 군사 밀착이 심화하고 이에 맞선 한·미·일 안보 협력이 ‘준군사동맹’ 수준으로 강화하는 신냉전 정세가 지배적이었다. 여기에 9·19 군사합의 체결로 사실상 봉인됐던 접경 지역에서의 남북 간 군사 대립이 부활하며 과거 냉전적 위기가 더해진 형국이다.
9·19 군사합의 파기로 남북관계는 2018년 이전으로 후퇴했지만 북한의 위협 수준은 2018년 이전보다 훨씬 커졌다. 북한이 지난해 말부터 전술핵 운용부대와 전술핵탄두를 공개하는 등 남한을 겨냥한 전술핵 역량을 고도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 국방성은 이날 9·19 군사합의 파기를 선언하며 군사분계선 지역에 “신형 군사장비들을 전진배치할 것”이라고 공언한 상태다.
홍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북한이) 충돌 발생 시 재래식 무기와 전술핵 탑재 가능 무기를 동시에 활용해 위협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통화에서 “북한이 최악의 경우 전선 지역에 신형 전술핵 부대를 배치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북한이 접경 지역에서의 도발적 군사행동을 시사한 상황에서 남북의 군사적 대응이 맞물려 확전으로 치달을 가능성도 있다. 남한 정부와 여당 내에서는 향후 북한 도발에 따라 9·19 군사합의를 전부 효력 정지하는 등의 강경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이러한 조치가 현실화하면 북한은 더 강력한 군사 행동으로 대응할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남북 간 우발적 충돌을 방지할 수 있는 긴장 관리 수단이 없다는 점이다. 남북 대화·교류가 사라진 상황에서 최소한의 소통 경로로 기능했던 남북 통신연락선은 4월부터 북한에 의해 단절돼 있다. 국방성은 이날 성명에서 현재 상황을 “통제 불능의 국면” “수습할 수 없는 통제 불능”이라고 거듭 규정하기도 했다.
남북 당국이 긴장 완화를 모색하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남한은 북한에 대화를 촉구해왔지만 ‘힘에 의한 평화’ 기조 아래 북한을 압도·억제하는 데에 몰두하고 있다. 신원식 국방부 장관은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북한이 (9·19 군사합의) 효력 정지를 빌미로 도발을 감행한다면 즉각, 강력히, 끝까지 응징할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은 한·미의 대화 제안을 거부하며 정세 악화를 빌미로 핵 무력 고도화에 천착하고 있다. 국방성은 이날 “‘대한민국’ 것들과의 그 어떤 합의도 인정할 수 없으며 상종 자체를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다시금 내린 결론”이라며 강력한 대남 적개심을 내비쳤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통화에서 “대부분 전쟁은 우발적 충돌이 확전되며 벌어진다”며 “정부는 위기를 어떻게 관리해나갈지에 신경을 써야 한다”고 말했다.
박광연 기자 lightyea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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