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도 못 치르고…거리에서 맞은 분신 택시노동자의 49재
불길이 지방에 적힌 문구를 한 글자씩 태웠다. ‘망 택시노동자 방영환 영가’. 마지막 글자까지 재가 되어 부스러지자 방씨의 딸 희원씨는 병원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지방은 하늘로 날아갔지만 분신한 아버지의 시신은 아직 그곳에 남아있었다. 목탁 소리 너머로 추모의 목소리가 퍼졌다. “열사여, 부디 착취 없는 곳에 태어나길. 남은 우리가 택시노동자도 살기 좋은 세상 만들겠네.”
23일 오후 6시쯤 한림대학교 한강성심병원 옆에 차려진 방씨의 분향소에선 방씨의 넋을 기리는 49재가 열렸다. 49재엔 유족과 방씨의 동료,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조합원 등이 함께했다. 행사는 생전 불자였던 방씨를 기려 대한불교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가 엄수했다. 이들은 방씨의 지방를 태운 뒤 완전월급제 이행, 택시노동자 생존권 보장, 근로기준법 준수, 사업주 해성운수 대표의 사죄를 촉구했다.
이어진 투쟁문화제에서 현정희 공공운수노조 위원장은 “따님에게 49재 전에 장례를 치르겠다고 약속했는데 끝내 약속을 지키지 못해서 송구하고 죄스러운 마음”이라며 “고용노동청과 검찰이 제대로 법을 집행하고, 서울시가 법대로 택시 전액 월급제를 하고 있는지 택시회사를 조사했다면 방 열사가 이렇게 스스로 몸에 불을 붙이진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현 위원장은 이어 “어젯밤 방 열사가 자필로 남긴 유서를 보고 또 봤다”면서 “‘난 살고 싶다. 내 한 몸 불태워 세상이 조금이라도 좋아질 수 있다면 그걸로 족하다. 택시 자본을 그냥 두고 볼 수 없다’고 쓰여 있었다”고 울먹였다. 김금영 공공운수노조 국민검강보험공단 고객센터지부 서울지회장은 “사납금제가 실제 있을 것이라 상상도 못했다”면서 “관리·감독해야 할 국가가 방 열사를 화염 속에 내몰았다”고 비판했다.
김종현 공공운수노조 택시지부장은 “택시는 원하는 만큼 벌어다 줘도 월급이 마이너스인 구조”라면서 “법 지켜달라면 해고다. 현장에 돌아가도 또다시 해고한다”고 비판했다.
딸 희연씨는 “49재가 미련을 버리고 저승에 가서 좋게 환생하라는 의미라는데, 우리 아빠가 아직 여기에 누워있는데 어떻게 가라고 해야할지 모르겠다”면서 눈물을 흘렸다. 이어 병원을 바라보며 “다음 생에는 진짜 평범하게, 정말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방씨는 지난 9월26일 해성운수 앞에서 사측의 부당해고와 임금 체납에 항의하며 분신했다. 직후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11일만인 지난달 6일 사망했다. 분신한 당일은 공공운수노조 택시지부 해성운수분회장이던 방씨가 1인 시위를 벌여온 지 227일째 되는 날이었다. 회사는 방씨가 2019년 7월 노조에 가입한 이후 그에게 배차변경 등 불이익을 줬다. 방씨가 최저임금을 보장하지 않는 근로계약서 작성을 거절하자 사측은 2020년 2월 방씨를 해고했다.
방씨는 굴하지 않고 소송 끝에 대법원에서 부당해고를 인정받아 지난해 11월 복직했다. 회사는 다시 소정 근로시간을 하루 3.5시간으로 축소하는 불이익 계약을 요구했지만 방씨는 계약을 거부했다. 그러자 회사는 방씨가 주 40시간 이상 택시를 몰아도 월 100만원가량만 지급했다.
노조에 따르면 서울지방고용노동청 남부지청은 지난 10일에야 해성운수 대표 A씨를 최저임금법과 근로기준법 위반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노조 측은 “이번 기소 결정은 택시노동자 방영환을 분신으로 내몬 책임이 해성운수에 있음을 명백히 하는 판정”이라고 밝혔다. A씨는 흉기를 들고 방씨를 협박한 혐의로도 검찰에 넘겨진 상태다.
이홍근 기자 redroot@kyunghyang.com, 오동욱 기자 5do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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