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칼럼] 이재용에게 좋은 게 한국에도 좋을까
삼성그룹 세습을 위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자본시장법과 외부감사법률 등을 위반한 혐의를 받고 있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임직원 14명에 대한 1심 결심공판이 지난 17일에 열렸다. 2020년 10월 재판이 시작된 지 약 3년1개월 만이다. 이 회장에게 적용된 혐의는 주가 조작, 업무상 배임, 삼성바이오로직스(‘삼바’) 분식 회계 등 크게 세 가지이다. 그런데 이런 중대한 혐의를 받은 이 회장에 대한 1심 재판이 열리는 것조차도 순탄하지 못했었다.
2018년 11월20일에 금융위원회 증권선물위원회는 삼바를 분식회계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고, 12월13일에는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현 반부패수사2부)가 삼바와 삼성물산 등 삼성계열사와 삼정·안진 등 회계법인을 압수수색하면서 삼바 회계사기에 대한 강제수사에 돌입했었다. 2019년 7월에 김태한 삼바 사장이 “부적절한 회계처리가 있었다”고 스스로 법의 심판대에서 인정했으며, 회계사기 의혹과 관련해 삼바 및 에피스 내부 문건을 은폐·조작하도록 지시하거나 실행한 혐의로 삼성전자 부사장 등에 대해 징역 2년의 실형이 선고되었다. 그럼에도, 이 회장에 대한 검찰의 구속영장은 기각되었고, 이후 검찰수사심의위원회에서 수사 중단 및 불기소 권고가 내려졌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검찰이 이 회장을 불구속 기소를 했던 것이다.
결심공판에서 검찰은 이 회장의 안정적 승계를 위해 미래전략실 주도로 수년 동안 계획적이고 조직적인 불법이 자행된 “그룹 총수를 위해 자본시장 근간을 훼손한 사건”이라며, “이 회장은 최종 의사결정 책임자로 범행의 실질적인 이익이 귀속됐다”고 지적했다. 또한 “만약 피고인들에게 면죄부를 준다면 앞으로 지배주주들은 아무런 거리낌 없이 위법·편법을 동원해 이익에 부합하는 방법으로 합병을 추진할 것”이라며, “이 사건 판결은 앞으로 재벌 구조 개편의 기준점으로 작용할 것으로, 부디 우리 자본시장이 투명하고 공정한 방향으로 도약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일갈했다.
주가조작이나 분식회계는 자본시장과 시장경제 근간을 흔드는 ‘반체제 범죄’다. 따라서 이런 경제범죄는 엄벌에 처하는 게 일반적이고 상식적이다. 2001년 미국의 엔론 분식회계 사건에서 엔론 사장이었던 스킬링은 24년4개월 징역형을 선고받고 14년을 복역했다. 2009년 인도의 IT업체 사티암의 회계부정사건으로, 창업자인 라주 회장은 7년 징역형을 선고받고 수천억원의 벌금형을 부과받았다.
그러나 사건과 범죄 혐의의 중대성이 한국 자본시장과 재벌 구조에 미칠 영향에 대한 명확한 입장 표명에도 불구하고, 검찰은 이재용 회장의 범죄혐의에 대해 징역 5년에 벌금 5억원을 구형하는 데 그쳤다. ‘빈수레가 요란한 구형 쇼’를 한 것은 아닌지, 과거 SK그룹 최태원 회장의 SK글로벌 분식회계 사건처럼 결국 3년 징역형에 5년 집행유예라는 ‘3-5법칙’이 되살아나는 것은 아닌지 지극히 우려스럽다. 내년 1월 말로 예상되는 법원의 선고 판결은 한국 사회가 촛불시위 이전으로 회귀할지의 리트머스 시험지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벌써부터 일부 언론에선 재벌 총수가 경제도 어려운데 각종 재판에 참석해 경영에 전념할 수 없다는 등 군불 지피기에 나서고 있다. 재벌 총수 1인이 재판을 받거나 범죄를 저질러 수감되어 해당 재벌 기업이 재대로 경영 활동을 못한다면, 이런 경영 시스템과 재벌 구조는 매우 위험하고 취약한 것이다. 경영 시스템과 재벌 구조를 바로잡아야 해결될 문제이지, 이를 빌미로 재벌 총수들에게 치외법권을 인정한다면 그야말로 한국 경제가 이들에게 볼모로 잡히고, 이들의 반복된 일탈은 결국 재벌 기업들과 한국 경제의 위기를 불러올 것이다.
혹자는 불법과 편법으로 점철된 재벌 세습 문제를 원천적으로 해소하기 위해 ‘편하게’ 세습할 수 있도록 법과 제도를 바꾸자고 주장한다. 참으로 후안무치한 주장이다. 능력 없는 3세나 4세가 경영권을 물려받는 것 자체가 기업과 사회에 큰 해악이다. 나아가 능력 있고 포부가 큰 젊은이들에게 기업의 최고 경영자가 될 수 있는 기회조차 허락하지 않게 된다. 유니클로 회장은 자식들에게 경영권을 물려주면 능력 있는 이들이 유니클로에 입사해 열심히 일하려 하지 않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런 우려는 이미 우리 사회에서 실현되고 있다. 서울대 경영학과 졸업생들이 제조업 대기업에 취업하지 않는다고 경영대 교수들이 한탄한다. 이들은 안정적인 전문직, 공무원, 공기업이나 금융권을 선호한다. 인적자원 배분의 왜곡이 심각한 사회와 경제의 전망이 밝을 수 없다. 이재용에게 좋은 것이 삼성 계열사들과 한국 경제에 좋을 수 없는 이유이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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