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빅5도, 지방 주요병원도 ‘전공의’ 모시기...내년도 필수진료과 미달 사태 우려
지방에 있는 대형병원은 물론 서울 지역의 주요 대학병원의 응급의학과와 소아청소년과 등 필수진료과이자 이른바 기피 진료과에서 일하는 전공의가 내년에도 부족할 것으로 보인다. 상황을 직감한 주요 병원들은 이달부터 급히 전공의 모집을 위해 홍보를 강화하고 있지만 미달 사태는 점차 현실화하는 모양새다. 필수의료 분야의 의사 인력 부족 문제가 수 년째 반복되면서 피해는 환자는 물론 의료계 종사자들에게도 돌아갈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23일 의료계에 따르면 서울대병원과 서울아산병원, 삼성서울병원, 강북삼성, 서울성모병원 등은 이달 들어 유튜브와 온라인 게시판을 통해 내년도 전공의 모집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삼성서울병원은 최근 소아청소년과에서 일하는 전공의 3명이 직접 출연해 병원의 전공의 교육 시스템과 업무 만족도를 홍보하는 ‘전지적 전공의 시점,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채용 홍보’라는 제목의 동영상을 유튜브에 공개했다. 연세대 세브란스병원도 ‘산부인과 전공의 생활’이라는 제목의 영상을 유튜브에 올리고 내년도 산부인과에서 일할 전공의 모집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지방의 주요 대형병원인 경북대병원 산부인과는 ‘1년 중 평일 기준 15일 휴가, 24시간 당직 후 24시간 휴가’를 보장하는 내용을 담은 포스터를 내걸었다. 이밖에도 고려대 의료원과 아주대병원, 동신병원 등 주요 대학병원들도 전공의들이 기피하는 진료과를 중심으로 다양한 혜택과 업무 조건을 내걸고 전공의 모시기에 나섰다.
이처럼 주요 병원들이 전공의 모집을 위해 적극적으로 홍보를 펼치는 이유는 최근 수년 새 필수의료과를 중심으로 전공의 미달 사태를 겪고 있기 때문이다. 세브란스병원만 해도 올해 산부인과 전공의 정원 10명 중 지원자가 4명에 그치며 의사 부족 사태를 겪었다. 서울아산병원 응급의학과도 올해 정원 190명 중 163명만 지원했는데 병원 측에 따르면 내년에도 이와 비슷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지방의 주요 대형병원은 상황이 더 심각하다. 전북 익산 원광대병원과 대구 경북대병원, 경남 삼성창원병원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벌써부터 기피 진료과인 응급의학과와 소아청소년과, 흉부외과에서 전공의 미달 사태가 벌어질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조민현 경북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최근 2년 새 소아청소년과 교수들이 5명이나 병원을 그만 뒀지만 이 자리를 메울 전문의는 물론 전공의도 지원자가 없다”며 “의사 부족으로 지역에서 희귀난치성 질환을 앓는 아이들이 멀리 서울과 수도권 병원으로 가고 있다”고 말했다.
인기 진료과인 피부과·안과·성형외과와 비인기과인 흉부외과·응급의학과·소아청소년과·산부인과·외과의 격차는 계속 벌어지고 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신현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보건복지부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필수과목 비수도권 지원율은 2014년 71.8%에서 올해 45.5%로 26.3%p(포인트)가 떨어졌다.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지원율만 해도 208명 모집에 53명으로, 25%에 그친다. 반면 피부과·안과·성형외과·정형외과·재활의학과·영상의학과 같은 인기 진료과의 비수도권 지원율은 2014년 117.1%인데 올해도 141%로 23.9%p로 올라갔다.
필수과목 수도권 지원율은 2014년 91%에서 2023년 71.2%로 19.8%p 줄어든 반면 인기 진료과의 비수도권 지원율은 2014년 141.6%에서 2023년 187.8%로 46.2%p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윤권하 삼성창원병원 영상의학과 교수는 “영상의학과나 피부과 같은 인기과의 경우 전공의 모집은 그나마 양호하지만 같은 병원 응급의학과를 포함한 기피 진료과는 전공의 지원자를 구하기 어려운 것으로 안다”면서 “만성적 미달 사태가 해소되기 어려운 지금의 상황에선 현재 자리를 지키고 있는 전공의라도 지키는 게 중요한 과제가 됐다”고 말했다.
오태윤 강북삼성병원 심장혈관흉부외과 교수는 “오죽하면 피안성정재영(피부과·안과·성형외과·정형외과 재활의학과·영상의학과)을 빼고는 전공의 모집하기 어렵다는 이야기가 나오겠냐”며 “가장 심각한 흉부외과와 응급의학과는 전공의 지원자가 거의 없는 상황이 20년째 지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전국 의대 정원은 2000년 의약분업 이후 정원의 10%인 351명을 감축한 이후, 2006년부터 3058명으로 동결된 상황이다. 복지부는 필수·지역의료를 정상화하는 방안 중 하나로 의료계와 의대 정원 확대에 속도를 내고 있다. 복지부가 국내 의과대학 40곳을 대상으로 정원 확대 수요조사를 실시한 결과, 2030학년도까지 현 정원보다 많은 최대 4000명을 늘려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나타났다.
복지부는 이와 별도로 지난 9월 수도권 12개 병원과 비수도권 9개 병원 등과 함께 ‘2024년도 전공의 정원 배정 관련 수련병원 간담회’를 열어 ‘비수도권 전공의 비율 50% 배정’, ‘전공의 수련 여건 미비 기관에 대한 배정 축소 등 수련병원과 기관 효율화’를 논의했다.
하지만 의료계는 정부가 현재 의대 입학 정원 확대가 그다지 전공의 부족 현상을 해결할 대안이 될 수는 없다며 회의적인 시선을 보내고 있다. 오 교수는 “의사 인원을 늘리는 것과, 전공의를 뽑는 문제는 전혀 다른 사안”이라면서 “오히려 의사 면허만 따고 기회를 찾아 서울의 주요 병원이나 피부과나 성형외과 등 인기가 있는 분야로 몰릴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윤 교수도 “의료 현장에서 땀 흘려 일하는 응급의학과나 흉부외과 의사들이 자부심을 갖고 어려워도 일을 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가 만들어지는 것이 더 중요하다”며 “여기에 맞는 정부의 기피과 지원 정책, 수가 반영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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