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도 '유럽 극우 물결'에 휩쓸렸다... '반이민·반이슬람' 정당, 총선 1위 차지

권영은 2023. 11. 23.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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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핀란드 등 이어 유럽서 극우 또 승리
극우선동가 총리 탄생할까 "망명·이민 끝낼 것"
22일 치러진 네덜란드 조기 총선에서 1위에 오른 자유당의 헤이르트 빌더르스(가운데) 대표가 스헤베닝겐에서 선거 결과를 듣고 미소를 짓고 있다. 스헤베닝겐=AFP 연합뉴스

'개방성의 나라' 네덜란드마저 유럽을 강타하고 있는 극우의 물결에 휩쓸리고 말았다. 22일(현지시간) 치러진 조기총선에서 '반(反)이민·반이슬람'을 기치로 내건 극단주의 우파 정당이 1위를 차지했다. 다당제 특성상 과반 의석엔 한참 못 미치지만, 2위를 훌쩍 앞섰다는 점에서 '압승'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다만 연립정부 구성엔 난항이 예상된다. 주요 정당들이 '극우와는 손잡지 않겠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는 탓이다. 차기 정부의 색채나 노선을 속단할 순 없다는 얘기다. 그렇다 해도 네덜란드의 이번 총선 결과는 유럽 전체에 충격파를 안겼다는 게 대체적 분석이다.


반이민·반이슬람 파고든 극우 정당의 첫 승리

영국 가디언과 BBC방송 등에 따르면 이날 네덜란드 총선 결과(개표율 98% 기준), 극우 성향 자유당(PVV)이 하원 150석 중 37석을 차지해(개표율 98% 기준) 제1당에 오르게 됐다. 당초 출구조사로 예상된 의석수(35석)보다도 늘어났다. 2위를 차지한 녹색당·노동당 좌파연합(GL-PvdA)은 25석, 3위인 중도우파 집권당 자유민주당(VVD)은 24석에 각각 그쳤다.

주목할 대목은 자유당이 2021년 총선 때(17석)보다 두 배 이상 의석을 얻으며 약진했다는 점이다. 헤이르트 빌더르스(60) 자유당 대표는 출구조사 결과 발표 직후 "네덜란드는 네덜란드인에게 돌아갈 것"이라며 "망명과 이민의 쓰나미를 끝내겠다"고 밝혔다. 이어 "어떤 정당도 이젠 우리를 무시할 수 없다. 우리가 통치하겠다"고 말했다.

자유당의 승리는 역시 반이민 정서 급증 탓으로 분석된다. 지난해 네덜란드 유입 이민자 수는 22만 명 이상으로, 20년 만에 10배 늘어났다. 이는 청년과 저소득층을 압박하는 주택 위기를 초래했고, 에너지 등 생활비 상승까지 겹치며 83만 명이 빈곤선 아래에 놓이게 됐다. 그 결과는 사회 전체의 우경화였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빚어낸 난민 문제도 자유당엔 호재가 됐다. 게다가 조기총선 이유가 연정 내 이민 정책 갈등이었음을 감안하면, 어느 정도 예견된 결과다.

극우 정치인 빌더르스가 2004년 창당한 자유당은 반이민·반이슬람 정서를 등에 업고 성장했다. 빌더르스는 쿠란(이슬람 경전) 금지·모스크(이슬람 사원) 금지 등을 노골적으로 내세우며 무슬림 이민을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2020년 모로코인 모욕 혐의로 유죄를 선고받는 등 인종차별주의자로 악명이 높다. "이슬람은 지체된 문화의 이데올로기" "모로코인 쓰레기들을 치우겠다" 등 혐오 발언을 일삼아 '네덜란드판 도널드 트럼프'로도 불린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에게 살해 위협을 받아 안전가옥에 거주한다"고 전했다.

22일 네덜란드 헤이그에 위치한 집권여당 자유민주당 당사에서 당대표이자 법무장관인 딜란 예실괴즈 제게리우스가 발언하고 있다. 헤이그=AFP 연합뉴스

"극우랑 연정 안 해" 난항 예상

문제는 연정 구성이다. 다당제가 전통인 네덜란드는 100년 이상 연정에 의해 통치돼 왔다. 이번에도 최소 3개 정당이 손을 잡아야만 연정 출범을 위한 과반 의석(76석 이상)을 확보할 수 있다.

일단 자유당이 연정 구성의 키를 쥐고 있지만 쉽지는 않아 보인다. 프란스 티메르만스(62) 전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 수석부위원장이 이끈 좌파 연합은 일찌감치 자유당과의 동거 가능성을 일축했다. 뤼터 총리 후임으로 자유민주당 대표가 된 딜란 예실괴즈 제게리우스(46) 법무장관도 "빌더르스를 총리로 지지하지 않을 것"이라고 못 박았다고 FT는 전했다. 8월 창당된 중도우파 신사회계약당(NSC·20석)도 자유당과의 연정엔 부정적이다.

22일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조기총선 1위를 차지한 자유당의 헤이르트 빌더르스 대표가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헤이그=AP 연합뉴스

유럽까지 파장… "EU 탈퇴는 가능성 낮아"

그럼에도 유럽은 이번 총선 결과를 충격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탈리아와 핀란드, 헝가리, 스웨덴, 스위스 등에서 극우 정당이 정권을 잡거나 연정에 참여 중인 가운데, 네덜란드도 그럴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FT는 "아프리카와 아시아에서 유입되는 이민자 수용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EU에 충격파가 몰아칠 것"이라고 짚었다.

EU와의 관계가 불안정해질 수도 있다. 빌더르스는 네덜란드의 EU 탈퇴(넥시트)를 두고 국민투표를 해야 한다고 언급한 적이 있다. 네덜란드 라이덴대학의 시몬 오티예스 정치학 조교수는 "네덜란드는 더 강경하고 보수적으로 변할 것"이라면서도 "넥시트 이슈는 선거에서 부각되지 않았고, 다수 의원들이 지지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미국 뉴욕타임스에 말했다. 넥시트 실현 가능성이 높지는 않다 해도, 네덜란드와 EU가 사사건건 대립할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는 의미다.

권영은 기자 you@hankookilbo.com
이유진 기자 iyz@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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