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글살이] 반동과 리액션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한국 현대사에서 '반동'이란 말은 혁명과 역사의 진보를 믿는 사람들 입에 자주 오르내렸다.
정치 영역으로 확장된 '반동'은 역사의 발전과 진보를 방해하고, 낡고 오래되고 사라져야 할 구습을 유지하려는 모든 시도이자, 자기 이익이나 관행에 집착하는 자를 뜻하게 되었다.
'반동'은 '진보'에 대한 반작용이니, 이 말을 쓰려면 역사의 진보를 '믿어야' 한다.
역사의 진보에 대한 믿음이 옅어진 시대이니, 반동이란 말도 쓰지 않는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말글살이]말글살이
한국 현대사에서 ‘반동’이란 말은 혁명과 역사의 진보를 믿는 사람들 입에 자주 오르내렸다. 지난날 반공드라마에 흔히 쓰이던 ‘반동 종간나 ××’라는 말은 공산혁명에 반대하고 봉건질서를 옹호하는 사람에게 붙이던 경멸의 딱지였다.
하지만 애초에 ‘반동’은 자연과학(물리학) 용어였다. ‘작용과 반작용의 법칙’으로 알려진 뉴턴의 제3법칙이 대표적이다. ‘어떤 물체가 다른 물체에 힘을 가하면, 힘을 받는 물체도 힘을 가하는 물체의 반대 방향으로 같은 크기의 힘을 가한다’는 것이다. 정치 영역으로 확장된 ‘반동’은 역사의 발전과 진보를 방해하고, 낡고 오래되고 사라져야 할 구습을 유지하려는 모든 시도이자, 자기 이익이나 관행에 집착하는 자를 뜻하게 되었다.
‘반동’은 ‘진보’에 대한 반작용이니, 이 말을 쓰려면 역사의 진보를 ‘믿어야’ 한다. 그런데 역사의 진보란 게 뭔가. 사회적 모순의 혁파? 남북의 평화공존? 더 많은 자유와 평등? 기후정의? 더 편리하고 효율적인 생활환경? 불편하더라도 뭇 생명과 공존하는 생태적 삶? 오늘보다 나은 내일? 진보는 하나로 요약할 수 없다.
역사의 진보에 대한 믿음이 옅어진 시대이니, 반동이란 말도 쓰지 않는다. 반동을 뜻하는 영어 ‘리액션’을 더 많이 쓴다. ‘리액션’은 어떤 행동을 보고 취하는 반응. 박수 치고 환호성 지르며 고개를 주억거리고 맞장구치는 것. ‘좋은 소통’은 상대방의 말에 성심성의껏 리액션하는 것.
눈앞에 닥친 일을 처리하기도 버거운 상황에서 새로운 질서를 만드는 작용은 꿈도 못 꾼다. 기껏해야 리액션, 상대의 기분을 맞춰주는 리액션. 새로운 시작보다는 반응하기, 진보보다는 안락과 안위. 반동의 시대엔 리액션이 살길인가 보다.
김진해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 ‘위안부’ 손배소 이겼다, 이제 일본 정부에 직접 묻는다
- 기초수급자가 내민 1천만원 수표 4장…“저보다 어려운 이에게”
- 윤 대통령 ‘미국몽, 중국몽, 총선몽’ 외교
- 윷놀이 졌다고 이웃 살해한 60대, 피해자 생명보험금 타갔다
- 교사 목 조른 학부모 징역 1년…학생들에 “신고 누가 했냐” 학대
- 4대 금융지주 올해 당기순이익 16조5천억 전망
- 행정망 사고 수습은 뒷전, 국외출장 떠난 행안부 장관 [사설]
- ‘강아지공장’ 부른 아기동물 소비…6개월 미만 판매금지법 뜬다
- 나를 향한 ‘교제살인’ 두달 전부터 시작됐다…경찰 신고했지만
- ‘원칙과 상식’ 모임 김종민 “국힘 입당, 원칙도 상식도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