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전면 파기로 가는 9·19 합의, 5년 전 ‘무력 충돌’ 위기 잊었나
북한이 남측의 9·19 남북군사합의 일부 효력정지에 대응해 이 합의의 전면 폐기를 선언했다. 북한은 23일 국방성 성명을 통해 2018년 군사합의에 따라 후퇴시켰던 군사분계선 주변의 무력과 장비를 육·해·공 모든 공간에서 전진배치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한동안 잠잠했던 탄도미사일 시험 발사도 22일 밤 재개했다. 남측은 장병들에게 근무 중 전원 전투복을 착용하게 하는 등 결전 태세에 돌입했다. 북한의 군사정찰위성 발사, 남측의 군사합의 일부 효력정지와 최전방 정찰 재개, 북한의 군사합의 전면 폐기와 미사일 발사가 이어지며 남북이 군사적 대응에 맞대응을 거듭하고 있다. 한반도가 2017년 핵전쟁을 언급하며 일촉즉발로 치달았던 때로 돌아가려는가.
북한의 군사합의 전면 폐기 선언은 한반도 평화에 정면 역행하는 호전적인 조치다. 마치 윤석열 정부의 군사합의 효력정지 선언을 기다렸다는 듯이 남측의 제한적인 긴장 고조 행동에 더한 행동으로 맞받았다는 점에서 유감스럽다. 일단 북한의 구체적 행동을 보고 판단하겠다고 한 정부 대응 수위는 바람직했다. 다만 정부도 애초 군사합의 효력을 정지하면 북한이 저렇게 나올 것임을 모르지 않았을 것이다. 북한의 위성발사 자체가 유엔 안보리 결의 위반이긴 하지만 남북 군사합의 위반은 아닌데도, 그것에 대응해 남측이 먼저 합의의 일부 효력을 정지한 것은 북한에 빌미를 준 측면이 있다.
이렇게 계속해서 ‘강 대 강’ 대결로 가게 되면 전쟁 직전까지 갔던 2017년 상황이 재연될 수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상대하는 지도자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서 윤석열 대통령으로 바뀐 것이 차이점이다. 어떤 점에선 지금이 더 위험하다고 할 수 있다. 재래식 전력에 의한 긴장 고조는 핵 전력 대치보다 우발적인 충돌 가능성이 더 높을 수 있다. 북한은 이 긴장 국면을 구실로 7차 핵실험 같은 더 큰 도발적 행동을 할 수도 있다. 이날 성명에서도 “핵전쟁 억제력 강화의 당위성과 정당성”이 입증됐다며 자락을 깔아뒀다.
정부와 군은 대응 태세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 하지만 힘에 의한 억제책만으론 한계가 있다. 지난달 하마스의 이스라엘 기습 공격에서 그 한계를 확인한 바 있다. ‘남북한 긴장 고조의 일상화’가 보수 일각에서 말하는 ‘안보의 정상화’는 아닐 것이다. 정부는 국민을 안심시키는 게 최우선이다. 북한의 도발적 행동에 건건이 맞대응하는 것은 오히려 그들의 수에 말려드는 것으로 현명하지 않다. 북한의 적대행위에 단호하게 대처해야 하지만 물밑에서는 긴장완화 방안도 모색하고 있어야 유능한 정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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