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는 왜 안 돼?…중국 14억의 ‘고민’ [특파원 리포트]

김민정 2023. 11. 23.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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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억 인구 대국, 그런데 축구는…

그제(21일) 있었던 2026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에서 중국이 한국에 0:3으로 패하며 중국 내부에서 다시한 번 축구 대표팀의 실력에 대한 자조와 비판에 불이 붙었습니다. 이해가 갑니다. 14억 인구를 자랑하는 중국에서 선발된 스포츠 인재들은 올림픽과 아시안게임에서는 메달을 싹쓸이합니다. 그런데 유독, 축구에서만 도무지 힘을 못 쓰고 있는겁니다.

사진 출처 : 신민티위


중국 축구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변곡점은 1992년 6월 베이징 훙산커우 회의에서 나타납니다. 스포츠 개혁 논의가 이뤄진 회의인데 핵심만 요약하자면 이를 계기로 축구는 '프로화'의 길을 걷게 됩니다. 축구는 원래 프로팀으로 운영되는게 아니냐고요? 꼭 그런건 아닙니다. 훙산커우 회의에서 프로화 전환을 결정하기 이전 중국 축구는 일종의 '국가 육성 시스템(舉國體制)'으로 운영됐습니다.

중국에서 쓰는 표현(舉國體制)을 우리식 독음으로 읽으면 '거국체제'가 되는데요, 넓은 맥락에서는 목표 달성을 위해 중앙정부가 자원을 통합관리하고 배치한다는 의미로 쓰이지만 스포츠에서는 재능있는 선수들을 국가가 발굴해 집중 육성하는 구 소련의 방식을 가리킵니다. 재밌는 것은 프로화되기 이전 이 시스템 하에서 중국 축구의 성적이 훨씬 좋았다는 점입니다.

1960년에는 중국 대표팀이 일본을 6:0으로 대파한 적도 있고, 1981년에는 월드컵 지역 예선에서 당시 지역내 강호로 꼽혔던 북한을 4:2로 꺾었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를 상대로도 3:0 승리를 거뒀습니다. 1984년에는 78년도 제 11회 월드컵 우승국이었던 강호 아르헨티나를 1:0으로 꺾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하지만 프로축구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된 이후 이는 모두 과거의 영광으로 퇴색됩니다.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본선에 진출한 것을 마지막으로 중국은 월드컵 본선에 진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손흥민과 미토마 가오루 등 걸출한 세계적 축구스타들을 배출하는 이웃 한국, 일본과는 달리 세계 무대에서 중국 축구는 존재감을 찾기 어렵습니다.

■아시안게임서는 금메달 쓸어담아…축구도 국가 주도로?

21일 열린 경기에서 3:0 패배를 겪으며 다시금 축구에 대한 내부적 고민과 비판이 시작된 사이, 바로 다음날인 어제(22일) 베이징에서는 지난 항저우 아시안게임 스타들이 한 자리에 모여 내외신 기자들에게 아시안게임 소회와 성과를 설명하는 자리가 마련됐습니다.

축구 대표팀에 대한 비판이 이는 사이 열린 항저우 아시안게임 관련 행사. 공동 MVP로 뽑힌 수영 선수 장위페이와 친하이양 등 스타 선수들이 참석했다. (사진 출처 : KBS 취재진)


일종의 홍보 행사인데, 대회 MVP로 뽑힌 수영 6관왕 장위페이 선수 등 아시안게임 기간 중국을 빛낸 스타들이 참여했습니다. 각종 부상과 실패를 극복하고 결실을 얻어낸 선수들이 직접 밝히는 그간의 이야기는 즉시 여러 매체를 통해 보도됐고 국민들의 격려를 받았습니다. 경기 결과를 두고 축구 선수들에 대한 비판과 논란이 이어진 것과 대비됩니다.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중국은 금메달 200개를 땄습니다. 적수가 없는 압도적 1등입니다. 워낙 메달이 많다보니 금메달리스트라고 해서 다 조명받지도 못합니다. 지난 도쿄올림픽에서는 금메달 38개로 1위 미국에 간발의 차로 뒤졌습니다.

중국은 늘 정부 차원에서 이 같은 종합 스포츠 대회 성적과 선수들을 홍보합니다. 하지만 성적이 아무리 뛰어나다고 해도, 또 선수들의 업적과 스토리가 아무리 훌륭하다고 해도 중국 국민들의 스포츠에 대한 모든 갈증이 다 채워지는 것은 아닙니다.

올림픽과 아시안게임은 스포츠 국가 육성 시스템의 역량이 빛날 수 있는 대표적인 스포츠 종합 대회입니다. 국가가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올림픽·아시안게임은 되는데 프로화가 된 축구는 안된다는 명암은 수십년의 시간 동안 더 뚜렷해지고 축구 강국에 대한 갈증은 더 커지고 있습니다.

여기에 1960~1980년대의 옛 영광에 대한 향수까지 겹치며 축구도 옛 국가주도의 육성 시스템을 다시 도입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목소리가 사그라들었다가 잊을만하면 다시 떠오릅니다. 이 역시 수십년째 반복되는 상황입니다.

뇌물 수수 등의 혐의로 기소된 리톄 전 중국 축구국가대표팀 감독. 주요 인사들이 각종 비리로 조사를 받거나 낙마하는 등 중국 축구계가 내홍을 겪고 있다. (사진 출처 : 신징바오)


■프로축구 병폐 속 중국의 고민

물론 이런 주장이 본격적으로 탄력을 받기란 쉽지 않아 보입니다. 축구는 시장화와 프로화를 통해 자연스럽게 재능있는 선수가 발굴·육성되도록 하면서 축구 강국들의 선진 축구를 배워야 한다는 것이 여론입니다. 큰 물에서 자연스럽게 선수가 나오도록 해야한다는 겁니다.

메달 수를 집계해 국가별 성적을 내기 때문에 특정 종목에서 집중적으로 선수를 육성해 메달 수를 늘리는 것이 효율적인 올림픽·아시안게임과는 성적을 내기 위한 접근법이 아예 달라야 한다는 것 역시 중국 내부적으로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부적으로 가장 많이 지적되는 것이 바로 프로축구화 과정에서 나타나는 각종 병폐입니다.

중국은 각 클럽이 주식회사로 전환되어가는 과정에서는 자본을 대는 쪽과 코치 및 선수들의 인사권을 쥐고 있는 체육위원회 사이의 갈등이 불거지는 구조적 문제가 나타나는 등 내홍을 겪었습니다. 클럽 운영 구조, 체계적이지 못한 유소년 육성 시스템 등 초창기 프로화 단계에서 불거졌던 문제들이 하나도 개선되지 않았다는 지적도 많습니다.

생태계 자체도 건강하지 않습니다. 프로 리그에서 승부조작과 뇌물 등 각종 비리가 불거지며 팬들의 마음을 잃었습니다. 한일 월드컵 출전 경력이 있는 리톄 전 축구대표팀 감독이 기소되는 등 전방위적인 사정의 칼날이 축구계를 향하고 있습니다. 성인 리그 뿐만아니라 유소년 리그에서마저 승부조작 의혹이 일기도 했는데, 이래서 재능있는 선수들을 발굴해 키울 수 있겠느냐는 강한 비판도 나왔습니다.

자본 투입도 만병 통치약이 아니었습니다. 부동산 대기업으로 유명한 헝다가 축구 시장에 뛰어드는 등 거대 자본이 유입되며 성장에 대한 기대를 높인 것도 잠시, 스타선수들을 높은 몸값으로 데려오는 이면에 직원들의 임금까지 체불하는 자금난에 직면해 리그 참가 자격을 상실하는 구단들도 생겨났습니다. 구단 모기업들의 위기에 따른 여파가 좀처럼 잦아들지 않으며 찬바람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자국 프로축구 상황이 이런데 갑자기 세계적 스타가 나타나길 바랄수도, 갑자기 대표팀이 강팀으로 변모하길 꿈꿀수도 없습니다. 중국 국민들의 소비력 상승과 높아진 눈높이와 비교하면 중국 프로축구의 실상은 초라한 상황입니다.

■축구에 진심인 중국…"축구 못하면 스포츠 강국 아냐"

21일 열린 월드컵 예선전에서 한 관객이 손흥민 선수 유니폼을 입고 있는 모습. 이 날 중국 대표팀을 응원하는 팬들과의 마찰이 불거지기도 했다. (사진출처 : 더우인)


문제는 그럼에도 축구를 포기할 수 없다는 겁니다. 위로는 시진핑 주석부터 아래로는 평범한 시민들까지, 중국 국민들은 축구에 진심입니다. 특히나 애국심 높기로 유명한 중국 국민들의 자부심을 올림픽·아시안 게임만으로 채워주는 것도 이제는 쉽지 않습니다.

베이징 하계 올림픽과 동계 올림픽, 항저우 아시안게임이 잇따라 열리며 스포츠대회 유치로 중국의 발전상을 실감하는데도 시들해진데다가 메달로 보여주는 국위선양을 향한 환호성도 예전만큼 크지 않습니다. 몇몇 스타 선수들을 제외하고는 메달리스트가 언론의 조명 한 번 받아보지 못합니다. 국제 종합 스포츠 대회에 대한 주목도가 점점 떨어지는 세계적 추세에서 중국도 결코 예외가 아닙니다.

이미 올림픽 1,2위를 다투며 스포츠 대국의 면모를 과시하고 있는 중국이지만, 오로지 축구만이 가져다 줄 수 있는 자부심은 따로 있습니다. 종합 스포츠 대회의 인기가 식을수록 전 세계적인 인기와 영향력을 과시하는 스포츠 축구에 대한 갈증은 더 커질지도 모릅니다.

지금 중국은 '스포츠 대국'에서 '스포츠 강국'으로 나아가자는 국가적 목표를 내걸었습니다. 단순히 국제대회 메달 수에서만 앞서는 것이 아니라 생활 스포츠와 스포츠 산업 등을 포괄하는 스포츠 전반에서 전방위적인 발전을 이룩하겠다는 다짐입니다.

이 목표, 이룰 수 있을까요? 쑹카이 중국축구협회 신임 회장은 지난달 한 좌담회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축구를 못하면 스포츠 강국이라 할 수 없습니다". 많은 논란과 반향이 일었지만 이 발언이야말로 축구에 진심인 중국인들의 갈증을 제대로 대변한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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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정 기자 (mjnews@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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