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장교 키운다 … '한국형 탈피오트' 2년 후 출범
"국방 R&D 인재 키우자"
여야 초당적 협력해 발의
4년간 카이스트서 교육 뒤
6년간 장교로 국방연 등 복무
민간과 R&D 시너지 기대
이스라엘에서는 매년 3800여 개 스타트업이 등장한다. 실패와 성공을 거듭하며 미국 나스닥 시장에 상장된 이스라엘 기업만 100개가 넘는다. 미국 외에는 중국 다음으로 많은 숫자다. 전문가들은 이스라엘을 기술 스타트업 천국으로 만든 비결 중 하나로 '탈피오트'를 꼽는다. 이스라엘 말로 '요새' '최고 중의 최고'를 뜻하는 단어다.
1973년 이스라엘은 아랍과의 '욤 키푸르 전쟁'에서 패한 뒤 전쟁의 승패는 하드웨어가 아니라 소프트웨어에 달렸다는 점을 깨달았다. 기술·전략·정보 측면에서 최고의 인재를 키워낼 방안으로 탈피오트 프로그램을 고안한 것이다. 고교 졸업 후 소수 정예인 탈피오트 부대에 수백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합격하면 명문 히브리대에서 3년간 수학, 물리학, 컴퓨터 등을 전공하며 학사 과정을 밟는다. 이후 6년간 장교급 대우를 받고 군 복무를 한다. 이들이 20대 후반에 사회에 나오면 스타트업 전사로 거듭나는 구조다.
이 같은 탈피오트가 조만간 국내에 도입될 전망이다. 23일 국회 국방위원회는 전체회의에서 국방첨단과학기술사관학교 설치법을 통과시켰다. 이 법안은 지난 8월 국방위 소위에 상정됐는데 여야 대치 속에서도 불과 석 달여 만에 상임위 문턱을 넘었다.
국방과학사관학교 설치법은 김진표 국회의장이 대표 발의한 법안이다. 공동발의자 명단에는 여야 의원들이 여러 명 이름을 올렸다. 여야가 국방 분야에서 과학 인재를 육성해야 한다는 데 뜻을 모아 초당적으로 협력한 이례적인 일이다.
법안은 국내에 국방과학사관학교를 설치해 국방 분야 과학기술 연구개발(R&D)을 선도할 전문 인력을 양성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에 따라 국방부 장관 소속으로 사관학교를 설치하고 대학원도 둘 수 있도록 했다.
국방과학사관학교 생도는 KAIST에서 학부 4년간 국방 R&D와 관련된 과학기술 교육을 집중 이수하게 된다. 기초 군사훈련은 방학을 활용해 12주간 받는다.
소위 임관 후에는 국방과학연구소(ADD) 등 국방 관련 연구기관에 배치돼 6년간 의무 복무해야 한다. 법안은 과학기술사관학교 학생의 장기 복무를 지원하기 위해 각종 시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규정했다.
국방과학사관학교 졸업생은 국방과학사관학교와 KAIST에서 공동 명의의 학위를 받게 된다. 희망하면 가산 복무를 전제로 KAIST에서 석·박사 학위까지 취득할 수 있다. 장교들이 복무를 마치고 스타트업 등을 창업할 땐 정부 예산 지원도 받을 수 있다. 이 법안이 본회의까지 통과하면 이른 시일 내에 국방과학사관학교가 설립될 것으로 보인다. 설치법이 공포 후 2년이 경과한 날부터 법안을 시행하도록 규정했기 때문이다. 기존 원안은 시행일을 공포 후 1년으로 정했으나 국방부에서 사전 준비를 위해 3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 수정 의결된 것으로 해석된다.
국방과학사관학교가 설립되면 교육은 KAIST에 위탁하는 형식으로 운영된다. 현재 국방부는 KAIST와 이 같은 방향에 합의하고 구체적인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KAIST 관계자는 "현재는 구두 합의 단계"라며 "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 그때 실무팀을 꾸려 구체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KAIST는 이미 ISC안보융합원을 통해 첨단기술 기반의 안보 분야 교육과 연구를 하고 있다. 현재 사이버보안, 우주 시스템, 국방기술, 자율 시스템, 에너지, 재료, 센서, 양자 등 8가지 연구 그룹으로 구성됐다.
법안이 통과되면 KAIST는 우선 ISC안보융합원 프로그램을 통해 학생들을 교육하고 KAIST의 연관 수업도 마련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KAIST 관계자는 "국방과학 연구 협력 등에서 KAIST는 육군과도 밀접한 협력을 이어오고 있는 만큼 국방과학사관학교 프로그램도 적극 운영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스라엘 탈피오트 제도를 분석한 김도희 국회입법조사처 조사관은 "탈피오트 제도는 졸업생 간 협력과 네트워크를 통한 R&D 시너지 효과 창출, 창업에 이르는 선순환 구조를 형성했다"며 "군 현대화는 물론 국방 과학기술 인재 육성, 벤처기업 활성화라는 세 마리 토끼를 잡는 성공을 거뒀다"고 평가했다.
[신유경 기자 / 고재원 기자]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남현희에 배신감”“사랑하고 미안”…전청조 옥중편지 공개 - 매일경제
- 길거리서 사라진 호떡·붕어빵…이제 여기서 잘 팔리네 - 매일경제
- 연기금이 쓸어담는다…이달에만 벌써 72% 급등한 이 종목은 - 매일경제
- 한숨 나오는 ‘나의 아저씨’…“결혼 자금 날려” “투자 최대 실수” - 매일경제
- “이거 실화냐” 아파트값 13억 올랐다…신고가 신저가 모두 나온 곳은 - 매일경제
- 돈 한푼 안들이고 오피스텔 40실 사들인 남매…청년들 상대로 보증금 40억 꿀꺽 - 매일경제
- 삼성도 네이버도 ‘이 커피머신’만 쓴다…韓 꽉잡은 스위스 100년 기업 - 매일경제
- [단독] “업무가 안맞아? 그럼 새 일 해봐”…LG의 ‘파격실험’ 통할까 - 매일경제
- 금값 고삐 풀렸다…사상 최고가 넘어 이 가격까지 ‘가즈아’ - 매일경제
- “고심 끝에 도전 허락 결정” LG, 마무리 투수 고우석 ML 포스팅 허가 - MK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