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희의 정치사기] 조선 창원군 사건을 통해 본 최강욱의 `암컷` 발언 파문
1478년 성종 9년 1월 26일, 도승지 신준의 집에 익명의 편지가 날아들었다. 신준은 이튿날 아침 궁궐로 달려가 성종에게 보고하고 밀봉된 편지를 뜯었다. 편지가 공개되자 조정은 발칵 뒤집어졌다. 선대 왕 세조의 아들인 창원군(세조의 후궁 귀인 박씨의 2남)이 최근 발생한 여성 살인사건의 범인이라는 내용이다. 2주 전 서대문 인근에서 여성의 변사체가 발견된 이후, 삼사가 수사를 벌였는데도 단서가 잡히지 않은 사건이었다.
또 편지에는 가외란 여종이 사건의 전말을 알고 있다고 적혀 있었다. 삼사는 즉시 가외를 불러 국문했다. 그는 깜짝 놀랄만한 증언을 했다.
"제 팔촌 동생 고읍지가 창원군의 집에서 관노비로 일하고 있습니다. 창원군이 고읍지를 간통하고자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어 고읍지의 용모와 복색을 말했는데, 시체와 부합했다. 삼사는 가외에게 시체를 확인하라고 했고, 가외는 "고읍지입니다"라고 답했다. 삼사는 창원군에게 노비등록대장을 제출하라고 요구했고, 창원군은 없다고 대답했다. 결국 성종이 내관을 창원군의 집에 보내 등록대장을 가져오라고 했는데, 창원군은 이미 보냈다고 발뺌했다.
사간 경 준이 집을 수색할 때도 거절했고, 의금부에서 흉기를 찾으러 갈 때도 거부했다. 재상들은 국문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성종은 징계를 내렸다. 추국을 해보니, 고읍지가 홍옥형이라는 자와 가까이 지내는 것을 질투한 창원군이 노비들을 시켜 고읍지를 처마에 매달아 죽였다는 게 사건의 진상이었다.
사건은 어떻게 귀착됐을까. 창원군은 어떤 처벌도 받지 않았다. 종친이라는 이유로 사형도 면하고, 당초 받았던 부처(付處:유배의 일종으로, 일정한 지역을 정해 그곳에 강제로 거주시키는 형벌)도 철회됐다. 대왕대비(세조의 부인 정희왕후 윤씨)도 처벌을 말린 탓이다. 직첩만 회수됐고, 그마저도 나중에 돌려줬다. 사헌부 대사헌과 사간원 대사간 등이 "법은 천하의 공기니 친분과 귀함에 따라 흔들릴 수 없다", "대왕대비의 명이라도 들을 수 없다"며 처벌을 요청하는 상소를 올렸지만 소용없었다.
참으로 씁쓸한 결말이다. 더구나 창원군의 폐행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종친이라는 신분을 구실로 제멋대로 불법을 자행했다. 고을 수령에게 계속 접대를 받기도 하고, 역마를 함부로 타고 다니는 일보 빈번했다. 길에서 자신을 만난 재상이 말에서 내리지 않았다며 폭언을 하기도 했다. 성종은 대신들의 간언에도 그를 처벌하지 않았다. 관노비만 회수했을 뿐이다. 당시 창원군이 막무가내였던 것은 이런 학습효과 때문으로 보인다.
최근 '설치는 암컷'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킨 최강욱 전 의원의 경우와도 많이 닮았다. 최 전 의원은 민형배 의원이 지난 19일 광주 과학기술원에서 김용민 의원과 함께 연 북콘서트에 참석해 "(조지 오웰의 소설) 동물농장에도 보면 암컷들이 나와서 설치고 이러는 건 잘 없다"며 "내가 암컷을 비하하는 말씀은 아니고, 설치는 암컷을 암컷이라고 부르는 것일 뿐"이라고 했다.
최 전 의원의 여성 비하 논란은 당을 흔들었다. 당 안팎에서는 비판이 제기됐고, 민주당 의원 채팅방에서는 언쟁까지 벌어졌다. 결국 지도부 인사들은 연이어 '대리 사과'를 하며 진압에 나섰고, 최고위원회를 통해 당원자격 6개월 정지징계를 내렸다. 당 전국여성위원회는 사흘 만에 뒤늦게 입장을 냈다.
그럼에도 당내에서 각성의 여지는 안 보인다. 강성 당원들은 민주당 당원커뮤니티 '블루웨이브'에 최 의원 징계 결정을 두고 원색적인 수준의 비난글까지 올리고 있다. 심지어 이 대표를 향한 비방글도 심심찮게 보인다. 일부 여성 정치인은 최 의원의 발언을 옹호하기도 한다. 남영희 민주연구원 부원장은 22일 친명(친이재명) 유뷰트 채널 '박시영 TV에 출연해 "그 말을 왜 못하느냐"며 "(최 전 의원을 징계한 것은) 저는 굉장히 유감"이라고 밝혔다.
참 당황스럽다. 대중들이 다른 것보다 국회의원들의 태도, 품격을 보고 있는 지 모르는 모양새다. 더구나 최 의원은 지난 4월 '짤짤이 논란'으로 불리는 성 비위에도 연루된 바 있다. 당 윤리심판원은 '당원권 정지 6개월' 중징계 처분을 내렸고, 최 전 의원은 불복하며 재심신청을 했다. 이후 최 전 의원의 재심 절차는 1년이 넘도록 결론이 안 나왔다. 최 전 의원의 재차 발언 논란을 일으키는 것도 이런 학습 효과 때문이 아닐까.
김세희기자 saehee0127@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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