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주 회장 물갈이와 꼭 닮은 당국發 증권가 CEO 교체... “시대변화 흐름일 뿐” 목소리도

정민하 기자 2023. 11. 23.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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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통제 미비” 증권사 CEO 징계조치 ‘코앞’
당국, 관치금융 부인해도… 짐싸는 증권사 CEO들
일각선 “바뀔 때 됐다, 세대교체 할 때” 의견도

작년 주요 금융지주 회장들을 사실상 압박해 자리에서 내려오게 했던 금융당국의 칼날이 이번엔 증권사로 방향을 바꿨다. 증권업계는 비슷하게 임기 만료를 앞둔 수장이 적지 않고, 리스크 관리와 내부 통제에 실패한 사례도 많다. 증권업계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당국의 의지가 겹치면서 최고경영자(CEO) ‘물갈이’가 현실화하고 있다.

정영채 NH투자증권 대표이사 사장(왼쪽)과 박정림 KB증권 대표이사 사장. /조선DB

23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오는 12월부터 내년 3월까지 대표 임기가 만료되는 증권사는 12곳이다. 당장 다음 달엔 김상태 신한투자증권 사장과 김성현·박정림 KB증권 사장의 임기가 만료된다. 김병영 BNK투자증권 사장 임기는 내년 2월까지다. DB금융투자, SK증권, 교보증권, 대신증권, 한양증권, 삼성증권, NH투자증권, 한국투자증권, 하이투자증권 등은 내년 3월이다. 이들 대부분은 4년 이상 재임했다.

업계에서는 증권사 CEO 교체 바람이 작년 은행권 금융지주를 휩쓸었던 회장 ‘물갈이’와 비슷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는 평이 나온다. 실제로 윤석열 정부 들어 임기가 종료되는 금융지주 회장들은 모두 새 얼굴로 바뀌었다. 과거 연임, 3연임 등 임기를 이어가던 모습과 분위기가 달라진 것이다.

작년 첫 내부 출신이었던 손병환 전(前) NH농협금융지주 회장 자리는 윤 정부 대선 캠프 초기 위원장을 맡았던 이석준 회장으로 교체됐다. 당초 3연임이 무난하게 점쳐졌던 조용병 전 신한금융지주 회장은 지난해 12월 회장추천위원회 면접 이후 갑작스럽게 용퇴를 결정해 당시 신한은행장이었던 진옥동 회장이 뒤를 잇게 됐다. 연임을 내심 밀어 온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 또한 낙마했고, 그 자리는 금융위원장 출신 임종룡 회장이 차지했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왼쪽)과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20일 오후 서울 중구 은행연합회에서 열린 금융지주회장단 간담회에서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올해 하반기 증권가 상황을 보면 지난해와 별반 다를 게 없어 보인다는 분석이 나온다. 대표 장수 CEO로 꼽히는 박정림 KB증권 사장과 정영채 NH투자증권 사장은 당국의 라임·옵티머스 사태 관련 최종 제재를 앞두고 있다. 금융위는 이르면 이달 29일 예정된 정례회의에서 이들에 대한 제재를 최종 확정할 예정이다. 특히 금융위원회는 박 사장에게 제재 상향 통보를 했다. 사실상 낙마가 결정된 셈이다.

이는 당국과 대립 구도가 부담돼 연임 도전을 포기한 손태승 회장 용퇴 과정과 비슷하다. 금융위는 지난해 말 라임펀드 환매 중단 사태와 관련해 손 회장에 대한 문책 경고안을 확정했다. 당시 금융위가 1년 6개월 동안 미뤄왔던 징계를 손 회장의 임기 만료를 앞두고 갑작스레 결정한 것을 두고 금융권에서는 낙하산 인사를 위한 사전작업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문책 경고 이상의 제재가 확정되면 연임은 불가능해지고 3년 이상 금융권 취업도 제한된다.

당국이 예의주시하고 있는 키움증권도 상황은 유사하다. ‘라덕연 사태’와 영풍제지 등 두 차례 주가조작 사건에 휘말린 키움증권은 황현순 대표이사 사장이 사임 의사를 밝혔다. 사임 표명 과정에 당국의 입김이 있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그러나 이후 이사회에서 결정을 보류해 일단은 자리를 보전했다.

최근 메리츠금융지주 그룹운용부장으로 선임된 최희문 전(前) 메리츠증권 대표이사 부회장(왼쪽)과 한국투자증권 부회장으로 승진한 정일문 전 사장. /조선DB

증권사 중 세대교체 신호탄을 쏜 곳은 지난달 용퇴한 최현만 미래에셋증권 회장이다. 박현주 회장 ‘오른팔’로 불리며 미래에셋을 공동 창업해 업계 최장수 CEO로 불리던 최 회장은 지난달 사임했고, 김미섭 부회장에게 자리를 물려줬다. 이날 5년간 한국투자증권을 이끌었던 정일문 사장도 올해를 마지막으로 일선에서 후퇴한다고 발표했다. 이화전기그룹 매매정지와 내부자거래 의혹, 리스크 관리 실패 등을 국감을 통해 지적받았던 최희문 메리츠증권 부회장도 지주로 자리를 옮겼다.

금융당국이 증권사 CEO 내부통제 책임을 거론하며 압박을 이어가고 있지만, 일각에선 은행지주 때와는 다르다는 분석도 내놓고 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당국의 잇따른 압박과 더불어 경기 침체 등 불안정한 금융시장 환경에 안정보다 변화를 택하는 곳이 늘면서 60년대 초반생 대표들에 대한 세대교체가 이뤄지고 있다”며 “내부서도 장기 집권으로 인한 인사 적체에 불만이 많아 이런 흐름에 크게 반발하지 않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또 다른 금융권 관계자는 “당국 중징계 결정을 받은 손 전 회장에 대해 이복현 금감원장이 ‘현명한 판단을 내릴 것으로 생각한다’며 압박하기도 했는데 최근엔 ‘관치금융’ 지적이 나왔기 때문인지 그때보다는 선을 다소 긋는 분위기”라면서 “아무래도 은행과 개인 투자 성향이 강한 증권사 특징이 다소 다를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원장이 압박하는 발언을 전혀 안 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국회 등 공개석상에서 “금융회사 CEO와 CFO(최고재무책임자)의 반복적이고 중대하고 수용하지 못하는 실패에 대해선 책임을 지워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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