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완 ‘나는 지구인이다’ 독집 앨범…“뭘 더 내려놓을까 고민”
가수 김창완은 “음악가로서 무력감을 느꼈다”고 했다. 1977년 ‘아니 벌써’로 데뷔한 전설적인 밴드 산울림의 리더, 2008년 산울림 해체 이후엔 김창완밴드를 이끌며 왕성하게 활동해온 그가 왜 그런 생각을 갖게 된 걸까?
“가수 생활을 꽤 오래 했는데, 너무 동어반복 하는 거 아닌가, 내가 만든 말에 내가 갇혀 사는 거 아닌가 하는 고민이 있었어요. 분명 변화된 모습도 있는데, 보여드릴 방법이 없었죠. 요즘 케이(K)팝 열풍이라지만, 저희 같은 가수들에겐 ‘무대 밑 조명’도 잘 안 비춰줍니다. 요즘 세상이 험한데 뮤지션으로서 무력감도 느끼고, 나약하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특히 환경 문제나 실시간으로 들려오는 전쟁 소식에 참 잔인하다고 느꼈죠.” 23일 서울 마포구 벨로주 홍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그는 말했다.
그러던 어느 새벽 문득 떠오른 생각이 ‘나는 지구인이구나’였다. 곧바로 ‘아, 여기 지구에서 테러와 전쟁도 났지’ 하는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그 주제를 물고 며칠을 지냈어요. 그러다 ‘나는 지구인이다/ 지구에서 태어났다’ 두 소절만 갖고 자전거를 타고 나갔죠.” 서울 서초동 집에서 한강 자전거도로 타고 미사리 지나 팔당대교까지 가면서 내내 흥얼거렸다. 돌아오는 길에 ‘라라라라~’ 하는 후렴구를 붙였다.
그렇게 해서 만든 노래가 “나는 지구인이다/ 지구에서 태어났다/ 지구에서 자라나고/ 여기서 어슬렁댄다/ 동산에서 해가 뜨고/ 서산에서 해가 진다/ 달님이 지켜주고/ 별들이 놀아준단다” 하는 ‘나는 지구인이다’. 김창완은 이 노래를 타이틀곡으로 한 앨범 ‘나는 지구인이다’를 24일 발매한다. 2020년 발표한 ‘문’ 이후 3년 만에 선보이는 독집 앨범이다.
동요처럼 쉽고 단순한 노랫말에 신시사이저 사운드가 살랑살랑 춤을 추는 ‘나는 지구인이다’는 김창완밴드의 키보디스트 이상훈이 세련되고 중독성 강한 신스팝으로 편곡했다. 김창완은 “이 지구가 얼마나 소중하며, 그 위를 걷는 우리는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지를 전하고 싶었다”고 했다.
“매일매일 어제의 내가 아니길 바라는 우일신의 자세로 살려 하지만, 구태를 벗어던지는 게 쉬운 일은 아니더군요. ‘나는 지구인이다’를 만들 땐 뭘 더하는 게 아니라 뭘 더 내려놓아야 노래가 나올까를 고민했어요. 내 욕심과 도그마에서 벗어나는 게 간절한 바람이었죠.”
타이틀곡을 제외한 12곡은 모두 김창완의 목소리와 어쿠스틱 기타로만 이뤄진 소박한 편곡의 노래들이다. ‘청춘’ ‘둘이서’ ‘누나야’ ‘식어버린 차’ ‘시간’ 등 산울림과 솔로로 이전에 발표한 노래를 다시 부른 것들이 대부분이다. 타이틀곡과 ‘이쁜 게 좋아요’,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를 기타로 연주한 ‘월광’이 이번 앨범에 처음 수록된 곡이다.
김창완은 이번 앨범이 꼭 40년 전 발표한 ‘기타가 있는 수필’의 연장선상이라고 설명했다. ‘어머니와 고등어’가 실린 독집 앨범이다. 서른살 되기 직전 발표한 앨범을 잇는 후속작을 일흔을 코앞에 둔 지금의 통찰과 원숙함을 녹여 빚어낸 것이다. 그는 ‘지속적인 그리움’이라는 제목의 그림을 직접 그려 앨범 표지에 담았다.
김창완은 이 앨범으로 젊은이들에게 다가가고 싶다고 했다. “저는 젊을 때 그렇게 자유를 외치고도 스스로 고집스럽고 폐쇄적으로 갇혀 살았어요. 그에 비해 요즘 젊은 세대는 양심적이고 타인을 배려하고 시야도 넓어요. 그들에게 감히 얄팍한 조언을 하기보다는, 나를 용서하기 바란다는 마음으로 손을 내밀고 싶어요. 젊은이들이 어른들을 대척점에 두기보다는 나와 같은 마음을 가진 어른들도 많다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이번 앨범을 시디(CD)·엘피(LP)와 함께 무선통신 기술을 활용한 엔에프시(NFC) 카드 앨범으로 내는 것도 젊은 세대에게 좀 더 다가가고자 하는 바람에서다.
간담회가 끝나기 직전 산울림 팬클럽 ‘산울림매니아’ 회원들이 무대로 올라와 산울림 1집 엘피로 제작한 ‘플래티넘 디스크’ 기념패를 김창완에게 전달했다. 오랜 세월 좋은 음악을 들려준 데 대한 고마움의 뜻이라고 했다. 김창완은 “그래미 같은 데서 주는 것 같다”며 환하게 웃었다.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 ‘위안부’ 손배소 이겼다, 이제 일본 정부에 직접 묻는다
- 기초수급자가 내민 1천만원 수표 4장…“저보다 어려운 이에게”
- 윤 대통령 ‘미국몽, 중국몽, 총선몽’ 외교
- 윷놀이 졌다고 이웃 살해한 60대, 피해자 생명보험금 타갔다
- 교사 목 조른 학부모 징역 1년…학생들에 “신고 누가 했냐” 학대
- 4대 금융지주 올해 당기순이익 16조5천억 전망
- 행정망 사고 수습은 뒷전, 국외출장 떠난 행안부 장관 [사설]
- ‘강아지공장’ 부른 아기동물 소비…6개월 미만 판매금지법 뜬다
- 나를 향한 ‘교제살인’ 두달 전부터 시작됐다…경찰 신고했지만
- ‘원칙과 상식’ 모임 김종민 “국힘 입당, 원칙도 상식도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