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 노르웨이 대사 “여성 사회참여, 석유·가스보다 국가 번영에 더 큰 역할”
“노르웨이도 굉장히 오래 걸렸습니다. 성평등은 기본인권이자 한 국가의 가능성을 완전히 열어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계속해 나가야 합니다.”
안네 카리 한센 오빈 주한 노르웨이 대사는 23일 사단법인 한국여성기자협회(회장 김경희)가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주최한 포럼W에서 ‘다양성과 평등한 기회: 노르웨이의 경험’을 주제로 강연하며 이같이 강조했다. 그는 이날 높은 성평등 수준에 도달한 것으로 평가받는 노르웨이가 어떠한 정책과 제도를 통해 이러한 결과를 얻어냈는지 소개했다.
노르웨이는 1970년대 이후 여성 고용률이 지속해서 증가해, 현재 15~64세 여성 75%가 노동시장에 참여하고 있다. 여성 임금은 정규직 기준 남성의 90% 수준으로 올라섰으며 이 차이는 줄어들고 있다. 2023년 현재 국무위원은 여성 9명·남성 10명으로 구성되며 국회의원 45%는 여성이다.
오빈 대사는 그 원동력으로 노르웨이가 그동안 시도했던 여성 할당제(쿼터), 제도 참여 기업에 대한 인센티브, 아동 돌봄과 같은 일·가정 양립을 위한 사회복지제도를 꼽았다.
노르웨이는 세계 최초로 2003년 공기업 이사회에 여성 비율을 40% 이상으로 의무화하는 법안을 채택했으며 2024년부터는 이를 민간기업으로 확대 적용할 예정이다. 도입 논의 당시 우려도 있었지만 노르웨이는 “다양성이 오히려 하나의 자산이 된다”는 쪽에 힘을 실었다.
오빈 대사는 “(이사회 여성 할당제는) 2003년 도입 당시 세계적으로 초기 단계에 있는 제도였고 노르웨이에서도 회의적인 분위기가 있었다. 그러나 당시 이 제도를 제안한 교역산업부 장관(남성)은 이사회에 대한 다양성 적용이 기업의 자산이 되고 사회 전반에 혜택이 돌아갈 것이라고 강조했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2008년 모든 공기업에서 목표를 달성했다. 이후 많은 기업이 적용해나갔고 현재도 계속 확대 중이다”라고 말했다.
노르웨이의 대표적인 사회복지제도로는 남성에게도 폭넓게 적용되는 유급 육아휴직을 꼽을 수 있다. 노르웨이에서는 부모에게 49주의 유급 육아휴직이 주어지는데, 그중 3분의 1인 15주는 아빠가 사용하지 않으면 소멸한다. 2020년 기준 아빠가 된 남성의 93%가 육아휴직을 썼다. 이 추세는 올해도 비슷할 것으로 예상된다.
오빈 대사는 “육아휴직 체계는 도입 이후 계속 진화해 왔다. 의원과 각료들도 육아휴직을 적극적으로 사용함으로써 사회가 어떤 방향으로 가기를 원하는지에 대한 정치적 신호를 보내고 있다”고 강조했다. 또한 “엄마와 아빠 모두 자신들의 권리를 즐기고 아이의 시간을 누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노르웨이에서는 고용주가 부모의 역할에 여성과 남성이 동등한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러한 제도로 여성의 사회 참여를 끌어낸 덕에 “석유나 가스 수출이 국가 경제에 기여하는 것보다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가 훨씬 더 많은 수익을 창출했다”고 오빈 대사는 강조했다.
이처럼 나름의 선순환을 구축한 노르웨이에도 아직 더 높은 수준의 성평등을 위한 도전과제가 남아 있다. 오빈 대사는 “특정 직업군에서 여성과 남성이 선택하는 직업이 갈렸다는 점이 두드러진다. 스템(과학·기술·엔지니어링·수학) 분야가 그렇다”고 언급했다. 또한 “여성 임금이 남성의 90%라고는 하지만 근무 시간이나 커리어 기회의 측면에 따라 많이 달라진다. 통계적으로 보면 집에서 하는 작업, 무임금 노동, 파트타임 노동에서 여성이 굉장히 불평등하게 대표되고 있다”고 짚었다.
이어 고위직에도 아직 여성이 부족하다고 봤다. 오빈 대사는 “공기업이나 공공기관과 달리 민간 분야에서는 200대 기업 중 19%만이 여성 지도자가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변화는 저절로 이뤄지지 않는다. 성평등에 대한 투자는 매일 이뤄져야 하고 계속해 나가야 한다. 노르웨이도 계속해서 노력하고 있다”며 “성평등은 기본인권이며, 한 국가의 가능성을 완전히 다 열어줄 수 있는 것이다. 여성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남녀 모두의 이야기”라고 강조했다.
오빈 대사는 지난해 9월1일 주한 노르웨이 대사로 임명됐다. 1993년 노르웨이 외교부에서 일하기 시작해 주캐나다 노르웨이 대사, 극지 및 북극지역 국장,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대표단 등을 역임했다. 기후, 해양 문제, 지속가능한 개발 및 천연자원 관리 분야에서 경험을 쌓았다.
이날 행사를 주최한 김경희 한국여성기자협회 회장은 “성평등 정책이라는 것이 누구의 밥그릇을 뺏는 정책이 아니고 사회 발전과 통합을 위한 정책이 될 수 있는 방향을 노르웨이의 사례에서 얻길 바란다”고 밝혔다.
김서영 기자 westzer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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