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도 ‘극우 총리’ 시대 여나···反이민 내건 극우정당 압승
극우 포퓰리즘적 수사로 ‘네덜란드의 트럼프’ 별명
이슬람 혐오 발언으로 유죄 판결·살해 협박까지
유럽 내 ‘반이민 정서’ 편승 극우 정당 잇따라 약진
향후 연정 구성 및 총리 선출 협상 난항 예상
22일(현지시간) 치러진 네덜란드 조기 총선에서 극우 포퓰리즘적인 정치 수사로 ‘네덜란드의 도널드 트럼프’라 불리는 헤이르트 빌더르스(60)가 이끄는 극우 성향 자유당이 압승한 것으로 관측된다.
개표가 진행 중인 가운데 자유당은 하원 총 150석 가운데 잠정 37석을 확보, 2021년 총선(17석) 때보다 의석을 2배 이상 늘리며 1위를 차지한 것으로 보인다. 2위인 녹색당·노동당 연합의 25석과 비교해서도 큰 격차다. 현 연립정부의 집권 여당인 자유민주당은 24석으로 3위에 그칠 것으로 예상된다. 앞서 투표 종료 직후 공개된 출구조사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개표는 23일 마무리될 전망이다.
자유당의 압승이 확정되고 연정 구성까지 성공할 경우 당 대표인 빌더르스가 총리직에 오를 가능성이 높다. 네덜란드에서는 통상 총선 1위를 차지한 정당 대표가 총리 후보자로 추천된다. 빌더르스는 출구조사 발표 뒤 연설에서 “네덜란드는 네덜란드인에게 돌아갈 것이며, 망명과 이민 쓰나미를 끝내겠다”고 말했다.
빌더르스가 2004년 창당한 자유당은 강력한 반이슬람·반이민·반유럽연합(EU) 기조를 견지해온 극우 성향 정당이다. 특히 빌더르스는 각종 이슬람 혐오 발언으로 잦은 논란을 일으켰다. 그는 이슬람을 “파시스트 이데올로기” “후진적 종교”라고 지칭하는가 하면 예언자 무함마드를 비하해 살해 협박을 받기도 했다. 2014년 선거 유세 과정에서는 모로코인들을 “쓰레기”라고 모욕해 네덜란드 법원으로부터 인종차별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기도 했다.
빌더르스와 자유당은 네덜란드의 주택난이 난민 유입 때문이라고 주장하며 국경 통제 강화, 미등록 이민자 구금 및 추방 등 강력한 반이민 공약을 내걸었다. EU 탈퇴를 위한 국민투표를 주장하는 등 ‘반EU 기조’를 견지해온 그는 EU의 기후 정책을 “새로운 형태의 폭정”으로 묘사하며 반녹색 정책 역시 예고했다.
유럽의 다른 극우 성향 정치 지도자들과 마찬가지로 빌더르스는 러시아에 우호적인 입장을 견지하며, 집권한다면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지원을 중단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현 마르크 뤼터 정부는 우크라이나에 F-16 전투기 지원 논의 등을 주도해 왔다.
최근 친러 성향 정부가 들어서면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지원 중단 방침을 밝힌 슬로바키아에 이어, 이번 선거로 또 다시 우크라이나 지원에 반대하는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EU 회원국이 늘어나게 된 셈이다.
이번 선거 결과를 두고 유럽 각국에 불고 있는 ‘반이민 정서’가 반영된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해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의 집권을 필두로 스웨덴, 핀란드, 스위스, 네덜란드에 이르기까지 유럽 각국에서 극우 정당이 반이민 정서에 편승해 선거에서 승리하거나 약진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가디언은 “20년 넘게 정치적 아웃사이더였던 극우파 수장이 어느 때보다 권력에 가까워졌다”면서 “이민 문제와 관련한 민감한 논쟁에서 더 많은 이들이 반이민 정책에 공감한 것으로 보이며, 이번 선거는 유럽 전역에 큰 반향을 일으킬 것”이라고 분석했다.
특히 네덜란드는 최근 주거난이 심각해지면서 반이민 정서가 부쩍 고조된 상황이다. 이번 총선 역시 이민 정책을 둘러싼 갈등으로 지난 7월 연정이 붕괴하면서 조기에 치러지게 됐다. 13년간 재임해온 네덜란드 최장수 총리 뤼터는 총선 이후 정계에서 은퇴하겠다고 선언했다.
다만 자유당의 승리가 확정된다고 해도 향후 연정 구성 및 총리 선출 과정에서 적지 않은 난항이 예상된다. 150석인 하원에서 최소 과반을 확보하려면 연정 구성이 필수적이다. 2위를 차지할 것이 유력한 좌파 성향 녹색당·노동당 연합과 4위를 차지할 것으로 보이는 중도우파 성향 신사회계약은 자유당과 연정을 구성하지 않겠다고 밝힌 상태다. 현 집권 여당인 자유민주당은 연정 구성에는 열려 있지만, 빌더르스를 차기 총리로 지지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2021년 총선 당시에도 뤼터 총리의 자유민주당이 연정을 구성하기까지 역대 최장 기간인 299일이 걸렸다. 이를 의식한 듯 빌더르스는 “이제 정당들이 합의점을 찾아야 할 때”라며 “우리(자유당)는 더 이상 무시당할 수 없다”고 말했다.
선명수 기자 sm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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