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영화 대표 세 거장들의 시너지...충격과 감동 두 아역 배우 열연 눈길...가해없는 폭력의 탄생 과정 누가 '괴물'인가...내면을 성찰하며 느끼는 부끄러움
[이데일리 스타in 김보영 기자] 이 영화를 보기 전부터, 객석에 앉아 스크린을 응시하는 내내 한 가지 생각에만 골몰하는 자신을 발견했다. 그래서 ‘괴물’이 누구인가? 러닝타임 2시간 7분 중 한 시간이 지나갈 때까지 우린 이 영화를 보며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괴물’이 누군지 알 수 없다. 그럼에도 이 모호한 이야기에 걷잡을 수 없이 빨려든다. ‘이 사람이 괴물일 거야’. 관객들이 던질 모든 예상의 화살들을 이 영화는 정교히, 정성스레 빗겨간다. 그 끝에 마침내 드러난 진실이 뒤통수가 얼얼할 정도의 충격과 여운을 남긴다. 자신도 모르게 편협한 시야와 잣대로 사건과 사람을 정의하고, 누군가의 행복을 판단하려 했던 무관심한 내면을 반성하게 된다. 세 거장들의 따뜻하지만 예리한 시선, 그 끝에 담은 부끄러운 어른들의 자화상. 영화 ‘괴물’이다.
제76회 칸 국제영화제 각본상을 수상한 ‘괴물’은 몰라보게 바뀐 아들 ‘미나토’(쿠로카와 소야)의 행동에 이상함을 감지한 엄마(안도 사쿠라 분)가 학교에 찾아가면서 의문에 사건에 연루된 주변 사람들 모두가 감정의 소용돌이를 겪게 되는 이야기다. ‘괴물’은 영화제 수상과 더불어 개봉하기 훨씬 전부터 일본을 대표하는 세 거장들의 만남만으로 국내 팬들에게 큰 화제를 모았다. ‘아무도 모른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어느 가족’, ‘브로커’ 등으로 잘 알려진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연출을 맡았고, ‘마더’, ‘최고의 이혼’,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 등 일본의 대표적인 히트작들을 집필한 사카모토 유지가 각본에 참여했다. 영화 ‘마지막 황제’로 아카데미 시상식 음악상을 수상한 영화음악가로, 얼마 전 세상을 떠난 고(故) 사카모토 류이치가 음악을 담당했다. ‘괴물’은 사카모토 류이치의 생전 마지막 영화 음악을 담은 작품이기도 하다.
영화는 작은 마을의 한 초등학교에서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불러일으킨 학교 폭력 사건이 벌어지는 것처럼 시작한다. 피해자는 초등학교 5학년 남학생 미나토다. 걸스바가 위치한 마을의 건물에 큰 화재 사건이 발생하며 이야기는 막을 연다. 엄마와 함께 멀리서 화재를 지켜보던 미나토. 미나토는 엄마에게 돌연 ‘사람의 머리에 인간의 뇌가 아닌 돼지의 뇌가 들어있다면, 그건 사람이야?’란 질문을 던진다. 엄마는 아들이 던진 질문에서 이상함을 감지한다. 이후에도 아들의 수상한 행적은 계속된다. 텀블러 물병에 물대신 들어있는 흙, 갑자기 자신의 머리카락을 자르는 돌발 행위, 사라진 신발 한쪽까지. 아들의 귀에 난 상처를 보고 더 이상 참을 수 없던 엄마는 학교를 찾아간다. 마을에 일어난 의문의 화재와 아들의 이상행동. 영화는 미스터리 투성이인 이 사건에 둘러싸인 ‘진짜’ 진실을 총 3장에 걸쳐 서서히 드러낸다. 사건 전후 각기 다른 시간대, 다른 인물들의 관점에서 이 비극적인 일이 일어나야 했던 과정들을 따뜻하면서도 담담히, 날카로운 시선으로 연달아 풀어낸다. 미나토 엄마(안도 사쿠라 분)의 관점을 시작으로, 미나토의 담임 교사 호리(나가야마 에이타 분) 선생, 초등학교 교장, 당사자 학생과 얽힌 교실의 또 다른 학생 호시야마 요리(히이라기 히나타 분)까지. 사건 관련 인물들이 당시 겪은 상황들과 사안을 바라본 관점은 이들이 하나의 일을 겪은 게 맞나 싶을 정도로 극명히 다르다. 이야기의 3장을 앞두고 1시간 반쯤 지나서는 이 사건을 ‘학교 폭력 사건이라 지칭할 수 있는가’란 근본적 의구심이 고개를 든다. 각 인물의 관점에서 저마다의 사정을 접하니, 각자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던 이유에 납득이 간다. 그럼에도 차마 누군가에게 말할 수 없는 상황과 지킬 비밀이 있기에 인물들은 서로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며, 끝내 단절을 택한다. 요리와 미나토마저 어른들에게 털어놓지 못하는 비밀들이 있다. 마지막 3장에 가서야 당사자 ‘미나토’의 관점에서 진짜 사건의 진실에 다다른다. 아이들의 세계에서 사건의 진상을 마주한 뒤에야, 파국을 만든 진짜 ‘괴물’이 누구인지 색출해내려 애쓴 모든 추리의 과정이 얼마나 덧없고 편협했는가 깨닫는다. 뒤통수 한 대를 맞은 듯한 얼얼함과 함께 부끄러움이 피어오른다.
하나의 사건을 여러 인물들의 관점으로 풀어냄으로써 집단 괴롭힘부터, 교사와 부모의 폭력, 아동학대, 극성 학부모와 교권 추락, 젠더와 성역할 등 전 세계를 관통하는 사회적 문제들을 한꺼번에 조명한다. 특히 이 모든 문제들의 본질이 같다는 점을 이 영화는 보여준다. 그건 바로 서로 간의 단절과 몰이해가 낳은 무심함이다. 상대방을 헤아리려 시도조차 하지 않는 무관심, 내 시선과 편의에만 맞춘 평범함과 비범함, 정상·비정상, 남자·여자 등의 흑백논리가 갖는 폭력성을 경고한다. 이로써 가해자가 없는 폭력의 희생자들이 발생하는 과정, 서로의 이해가 생각처럼 쉽지 않은 현실의 복잡함을 치밀한 구성과 연출로 그려냈다. ‘괴물은 누구야?’ 작품이 던지는 마지막 질문은 최종적으로 관객의 내면을 건드린다. ‘나였다면 어땠을까’, ‘난 좋은 어른일까’ 영화가 끝난 후에도 여운은 이어진다.
극의 시작부터 엔딩크레딧까지 명작은 명작일 수밖에 없는 이유를 곳곳에서 실감할 수 있다. 담담한 필체로 촘촘히 긴장감을 쌓아 몰입을 높인 사카모토 유지의 스토리,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통찰력있는 연출, 퍼석하고 서글픈 이야기에 희망과 따스함을 불어넣는 사카모토 류이치의 음악. 세 거장의 내공과 시너지는 배우들의 앙상블과 정교히 맞아떨어져 각자에게 새로운 영화적 정점을 선사했다. 특히 두 소년의 섬세하고도 복잡한 감정선을 날것처럼 표현한 아역배우 쿠로카와 소야, 히이라기 히나타의 열연이 이 영화의 가장 소중한 발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