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기고]V2X 단일 방식 결정에 대한 우려
ITS로 대표되는 지능형교통체계 사업은 지난 30년간 발전으로 현재 세계적으로 가장 높은 수준의 교통정보 및 안전 시스템으로 평가 받고 있다.
최근 ITS를 한단계 도약시키는 초연결형 기반 차세대 지능형교통시스템(C-ITS)이 미국, 유럽 및 중국과 우리나라에서 경쟁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기존에 한정된 교통수단(대부분 자동차) 틀에서 벗어나 모든 이동객체를 대상으로 실시간 주행정보제공 및 자율주행 지원, 충돌 방지, 교통약자 안전확보, 에너지 소비 및 탄소 배출 관리가 가능하다.
C-ITS 구축사업은 기술방식 관련 논쟁으로 지난 2년여간 멈춰졌다. C-ITS 전용통신망 5.9㎓ 주파수 대역의 가용 채널 활용 및 분배 방식에 대한 부처간 이견이 있었기 때문이다. 국토부는 와이파이 기반 근거리전용통신망(DSRC) 방식으로 WAVE-V2X를 추진하고, 과기정통부는 4G/LTE 기반의 이동통신 즉, 셀룰러를 기반으로 하는 C-V2X를 추진하는 것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두 부처는 지난 1년여 기간 동안 두 방식에 대한 현장 실증 절차를 완료하기로 하고, 올해 말 단일 방식 선정을 위한 절차를 진행 중이다.
이 논쟁은 우리나라 만의 문제는 아니다. 미국·유럽·중국 등에서 벌어지는 상황도 우리와 비슷하다.
미국교통부(USDOT)는 수년전 신규차량에 WAVE-V2X 기능을 기본옵션으로 탑재하는 법제화를 시도했지만, 퀄컴 등 이동통신 업계의 반대로 결정을 보류하면서 셀룰러 기반 C-V2X를 활용하는 쪽에 힘이 실렸다. 그러나 지난달 USDOT는 V2X 로드맵을 발표하면서 '상호운용가능 연결성(Interoperable Connectivity)' 확보를 목표로 2029년까지 점진적 실증을 거쳐 2034년까지 약 50개주로 V2X 인프라를 확대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두 방식 모두에게 추가적인 기회를 제공하는 셈이다.
유럽은 현재 C-ROAD 연구프로젝트 등 초연결형 도로인프라 기반 사업에 두 방식을 혼용할 수 있는 하이브리드 실증을 진행 중이다. 또한 차량 만이 대상이 아닌 모든 보행자와 도로교통약자(VRU)를 포함하도록 VRU2X 개념의 확대 방향도 제시하고 있다.
중국은 미국과 정반대다. 애초에 대륙 전체를 WAVE 기반으로 하기엔 부담이 너무 크다는 판단 하에 C-V2X로 실증을 진행해 왔다. 지난 4~5년간 지켜본 중국 교통부(MOT)는 C-V2X가 일정 수준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내리고, DSRC를 활용해 전국 전자지불시스템(ETC)을 ETC2.0으로 향상시켜 고속도로 등에 적용해 최우선 정책인 도로안전을 확보하려 한다. WAVE-V2X 기술을 추가 실증하기 위한 사양을 연내 제시할 계획이다. 중국 통신업계 등에서는 C-V2X로도 도로안전을 향상시킬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중국 교통부는 그동안 실증 결과와 향후 고속도로 약 15만 ㎞에 4G 혹은 5G 기반으로 C-V2X 스테이션을 구축해야 하는 비용 문제를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는 듯 하다.
도로에 V2X 인프라가 설치돼 안전을 확보한다고 해도 차량들은 V2X 단말기를 달아야 한다. 지난 수년간 고속도로 등에서 시범사업으로 추진되어온 C-ITS에서 나타났듯 자발적 참여 중심 단말기 탑재는 매우 더디게 진행됐다. 그동안 2000만대 넘게 보급된 하이패스처럼, 톨게이트 무정차 통과라는 단순하지만 킬러 서비스 효과를 당장 기대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여전히 2600만대 차량 중심의 보급계획에만 매몰돼 단말기 확대를 통한 서비스 확장성 한계를 벗어나기도 어려워 보인다. 보행자와 자전거 등 PM을 포함하는 소위 VRU에 대한 단말기 보급 논의도 아직 없다.
그럼 이 시점에서 우리나라는 급하게 WAVE-V2X 혹은 C-V2X 방식 중 하나를 굳이 결정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 전용주파수 할당 및 활용에 문자가 없다면, 오히려 두 방식을 모두 병행하는 하이브리드 방식으로 선택하는 것은 어떨까?
20여년전 국토부와 정통부가 하아패스 표준을 정할 때, 무선주파수(RF)와 적외선(IR) 방식 중 하나로 선택하지 않고 복합(듀얼) 방식으로 결정해서 결과적으로 지금 시장을 만들어 낸 솔로몬의 지혜를 발휘해 보는 것이 어떨까? 과기정통부와 국토부 두 부처의 현명한 선택을 기대한다.
문영준 한국과학기술원 초빙교수· ISO/TC204 WG17 컨비너 yjmoon@kaist.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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