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면된 도서관장 송경진 "'모두의 서재' 공공도서관을 허하라"
"대출 권수 등 숫자로는 도서관 가치 측량 안돼
공공도서관은 '모두의 서재'이자 '모두의 쉼터'여야"
편집자주
로마시대 철학자 키케로는 "책 없는 방은 영혼 없는 몸과 같다"고 했습니다. 도대체 책이 뭐길래, 어떤 사람들은 집의 방 한 칸을 통째로 책에 내어주는 걸까요. 서재가 품은 한 사람의 우주에 빠져들어가 봅니다.
"우리가 키워 온 문명이 앞으로 얼마나 오랫동안 건강하게 성장할 것이냐는 우리 각자가 얼마나 충실하게 공공도서관을 지원하느냐에 좌우될 것이다."
과학 교양서의 고전 '코스모스'의 저자로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천문학자 중 한 사람인 칼 세이건은 공공도서관 예찬론자다. 오죽하면 천문학적 지식을 흥미롭게 설명하다가도 상당 부분을 인류 지성사를 전승한 책과 도서관을 옹호하는 데 할애했을까. 그는 말한다. "책은 시간의 흐름을 거슬러 조상의 지혜를 오늘 우리에게 가져다 주며 이렇게 해서 도서관은 인류가 이룩한 거대한 지식 체계와 위대한 통찰의 세계를 우리와 연결시켜 주는 고리의 구실을 한다."
지난 14일 경기 파주시 자택에서 만난 송경진(56) 전 마포중앙도서관장은 아마 칼 세이건이 오늘날의 도서관을 봤다면 그 중요성을 더 높게 평가했을 거라 추정한다. 요즘 도서관은 단순히 책만 구비해두는 곳이 아닌, 기술을 익히는 강연이 열리며 사람의 경험을 넓히는 많은 활동이 이뤄지는 공간으로 역할을 확장했기에.
그는 '시민의 서재' 공공도서관을 가꾸고 지키는 이'였'다. 이 문장이 과거형인 까닭은 송 전 관장이 지난 5월 3일 자로 다니던 마포중앙도서관에서 공무원 최고 징계인 파면을 당했기 때문이다. 2017년 개관 이래 도서관을 이끌며 두 차례 연임한 송 전 관장은, 지난해 7월 박강수 마포구청장이 새로 부임한 뒤 도서관 예산을 삭감하는 등 전방위적으로 '책 문화 죽이기' 정책을 펼치는 데에 반발해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 비판적인 글을 썼다가 쫓겨났다. '복종과 보안유지 규정 위반'이 이유였다. 그는 도서관학을 전공하여 '공공도서관 정책'으로 석·박사 논문을 쓴 전문가다.
"대학 강의를 하기 위해 경력 증명서를 뗐는데 퇴직사유에 '파면'이라 적혀 있더라고요. 재취업은 그른 거죠. 하하."
지금은 시민들과 함께 싸우고 있다. 서울시에 제기한 소청심사가 기각되자 자발적인 시민들의 모임인 '마포구 도서관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구청장의 독단적 행정과 부당 징계에 분노한다"며 "송경진 관장이 복직되는 날까지 함께 싸울 것"이라는 성명을 냈다. 현재는 행정법원의 판단을 기다리며, 혼자서 고요하게 읽고 쓰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지난달에는 그간의 공부와 경험을 발판으로 시민의 리터러시 역량을 키우는 도서관의 역할을 고민하는 책 '도서관과 리터러시 파워(정은문고 발행)'를 냈다. 책의 가장 앞 장에 사인을 할 때마다 이렇게 쓴다. '공공도서관은 시민의 힘!'
도서관에 대한 시민들의 사랑을 측량할 수 있을까
지금이야 도서관 예찬론자의 경지에 이르렀지만, 일찍이 사서를 꿈꾼 적은 없었다. 막연히 책을 좋아했을 뿐, 해외에서는 정보를 다루는 전문인으로서 사서의 전망이 좋다는 친척의 권유에 덥석 도서관학을 전공으로 선택했다. 자연스럽게 사서가 되었는데, 일을 하다 보니 업(業)에 애정이 깊어졌다.
"세속적으로는 사람들이 판사, 검사, 의사 무척 좋아하잖아요. 그런데 생각해 보면 그분들은 계속 아픈 사람, 나쁜 사람만 봐야 해요. 도서관을 찾는 시민들은 그렇게 '고맙다'는 말을 많이 해요. 그것만 해도 좋은 직업 아닐까요?"
한 은퇴한 교사 부부는 개관 초부터 일주일에 두세 번씩 책 꽂는 봉사를 하면서 늘 "동네에 도서관이 있어 좋다"는 말을 달고 살았다. 시민들은 책수선 기술을 배워 여러 번의 대출로 파손된 책을 고치는 봉사단에 소속되어 함께 도서관을 가꿔 나갔다. 또 어떤 시민은 이따금 키우는 도라지꽃을 한아름 가져와 도서관을 보랏빛으로 물들이곤 했단다. 이런 시민들의 마음을 어떻게 효율성의 잣대로 정량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지 그는 의문이 든다.
"외국에서는 도서관이 주는 장기적인 영향 조사를 해요. 한국은 책이 몇 권 대출됐는지 등 숫자로 산출된 결과로만 도서관을 평가하죠. 이런 걸로 도서관의 가치를 보여 주는 데에는 한계가 있어요. 이용자들의 생활과 태도의 변화 같은 것들도 장기적으로 연구되어야 하지만, 도서관 예산도 깎이는 마당에 쉽지 않죠."
'모두의 서재'를 지키는 이의 사적 서재
도서관이라는 '모두의 서재'가 일터였기 때문일까. 10㎡(3.3평) 남짓 작은 방에 마련된 서재는 한눈에 규모를 파악할 수 있을 만큼 조촐하고 소박했다. 오래된 가구에서 검소하고 실용적인 성정이 엿보인다. 딱히 조화를 따지지 않고, 하나둘 늘어나는 책을 보관하려는 목적으로 그때그때 구비하였는지, 제각기 다른 높이와 색깔의 낡은 원목 책꽂이 다섯 점이 저마다의 개성을 주장하고 있다.
사서라면 응당 '칼 같은 분류'를 할 것 같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가족들의 책이 모두 뒤섞여 있기 때문이다. 책이 많지도 않은데, 송 전 관장의 책은 전체 책꽂이의 절반보다 약간 많은 정도다. 늘 도서관에서 대출하는 습관이 있어 정말 필요하거나 좋아하는 책만 간직한단다. 가장 최근에 손길이 가닿은 것으로 추정되는 책상 위의 책에는 하나같이 도서관의 분류 스티커가 붙어 있다.
"서재는 단순히 책만 읽는다기보다 중요한 생활이 모두 이뤄지는 곳이에요. 시간을 보내고, 일을 하고, 생각을 정리하죠. 어려운 동네일수록 내 집의 서재였으면 하는 환경을 가진 도서관을 지어줘야 해요. 공공도서관이 빛을 발하는 건 정말 필요한 사람들에게 좋은 환경을 제공해줄 때 거든요."
"공공도서관은 '보편적 복지'"
"공공도서관은 국가 전체의 지적 저변이자, 보편적 복지예요."
본질적으로 서재는 사치적인 공간이다. 제 몸 누일 방 한 칸 마련하기 어려운 형편에 책에 넓은 면적을 선뜻 내어줄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원룸이나 고시원 등 열악한 주거 환경을 가진 이들에게 서재는 언감생심일 터. 그런 이들에게 공공도서관은 '모두의 서재'가 되어준다는 게 송 전 관장의 생각이다.
"코로나19 때 공공도서관까지 문을 닫는 조치가 참 아쉬웠어요. 도서관은 떠드는 공간도 아니잖아요. 갈 데 없는 아이와 시민들이 그렇게 많았는데, 환기를 잘 하고 각자 마스크를 쓰고 책을 본다면 도서관이 안전한 도피처 역할도 할 수 있지 않을까요."
한국 사회는 잠깐 쉬기 위해서 공공 공간을 찾기보다, 커피 한 잔 값을 지불하면서 카페의 공간을 '점유하는 것'이 익숙한 소비 사회다. 하지만 그것이 여의치 못한 사람도 분명히 있다. 돈이 없는 사람, 커피를 마시고 싶지 않은 사람, 휠체어를 탄 사람 등. 이들에게 공공도서관은 '모두의 쉼터'가 되어 주기도 한다.
"많이 배우고 경제적 여력이 있으면 인간관계가 저절로 풍성해지겠죠. 하지만 그럴 기회가 없는 분에게는 동네 도서관이 사회적 자본을 만들어 가는 좋은 장이 됩니다."
더 나아가 그는 독서가 본질적으로 '삶의 무기'라 믿기에 더 많은 시민이 책을 찾기를 바란다. 마음이 불안정할 때, 무언가를 모를 때, 누군가를 이해하고 싶을 때, 맞닥뜨린 많은 문제를 그는 책을 통해 해결했다고 자신한다. 어쩌면 자치단체와의 긴긴 싸움이 될 줄 알면서도, 구청의 행정에 반기를 들고 공적인 글로 표현한 지난한 과정에도 책이 실어준 '용기'가 있을 테다.
"책을 꾸준히 읽는 사람과 읽지 않는 사람은 자기 삶의 질을 높이는 데 큰 차이가 있어요. 사회 관계는 매우 다양한데 우리가 그 모든 관계를 경험할 수 없잖아요. 책을 통해 대리하기 때문에 나의 폭을 넓히면서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데 유리한 '무기'가 되어줍니다."
파주 이혜미 기자 herstor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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