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분의 일초', 가벼워져야만 하는 이유를 찾아서[TEN리뷰]
검도라는 스포츠에 대한 통찰력
'우영우' 주종혁의 새로운 눈빛
[텐아시아=이하늘 기자]
*영화 '만분의 일초'에 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가벼워져야 한다"
'만분의 일초'는 한국 검도 국가대표 최종 선발전을 준비하는 재우(주종혁)에게 자꾸만 '가벼워지라'고 외치는 영화다. 쉬이 가벼워질 수 없는, 시시포스의 돌처럼 리플레이되는 과거의 고통스러운 기억은 재우를 짓누른다. 실체 없는 재우의 분노는 어느샌가 자신마저도 집어삼킬 거대한 형체가 되어있다. 그에게 있어 내면의 분노를 모두 게워내고 가벼워지는 일은 상대를 정확하게 응시해야만 가능한 것이다.
어린 시절, 재우의 형은 태수(문진승)와 싸움에 휘말려 예상치 못한 죽음을 맞이하게 되고 가족에게 내려앉은 슬픔은 이전처럼 복구되지 못했다. 그로 인해 재우의 가족은 풍비박산났고, 한국 검도 국가대표 최종 선발전을 위해 들어간 합숙에서 재우는 그토록 원망했던, 가족에게 불행을 안겨준 대상인 태수를 마주한다. 정작 태수는 과거의 일은 까맣게 잊은 듯 보인다.
다시는 복원할 수 없는 망가진 시간에 대한 공허한 외침일까. 일그러진 얼굴을 애써 숨기던 재우는 호면을 얼굴에 착용한 뒤에야 날 것 그대로의 감정을 표출한다. 다른 경쟁상대를 차분히 물리친 뒤에야 마주한 태수는 재우에게 어쩐지 두려움의 상대다. 압도적인 실력의 차이 때문이 아니라 그동안 꾹꾹 숨겨왔던 감정이 삐져나오게 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검도는 상대의 틈을 파고들면서 나의 영역도 지키는 스포츠.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균형이 깨지는 순간을 포착해야만 한다. 검도의 유효 타격 부위는 정면, 좌면, 우면 머리와 목 찌름, 손목, 오른 허리와 왼 허리다. 어쩌면 펜싱과 비슷한 종목이라고 뭉뚱그려볼 수도 있겠지만, 본질적으로 다르다. 펜싱이 정해진 자리에서 앞으로 뻗어나가는 공격적인 형태라면, 검도는 상대에게 타격을 가하고 막기를 반복하면서 최후의 일격을 가하는 운동인 것이다.
성난 황소처럼 상대를 밀어붙이는 재우의 일격은 언제나 태수의 침착함 앞에서 흐트러지고야 만다. 오프닝으로 돌아가 보자. 김성환 감독은 칠흑같이 어두운 공간 안에서 누구의 시점인지도 모를 앵글로 사방으로 목검을 흔들고 있는 이를 보여준다. 관객 역시 동화되어 함께 불안함을 느끼게 된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을까. 정처 없이 흔들리는 동공의 주인공이 재우라는 것을 관객들을 인지하며 안정감을 찾아가지만, 재우는 아직도 숨을 헐떡댄다. 비워냄이 가장 중요한 스포츠라고 강조했던 '만분의 일초'는 오프닝에서 재우가 어떤 상태인지를 처음부터 보여준다. 재우의 거친 호흡과 정돈되지 않은 감정은 상대를 오롯이 바라보기에 어려움을 줄뿐더러, 타인의 무대 위에 오른 것만 같은 느낌을 만든다.
불안하지만 정해진 구획은 넘지 않았던 재우의 감정에 기폭장치가 되는 것은 태수가 머리에 두르고 있던 붉은색 두건에 적힌 재우 아버지의 이름. 자신의 아들을 죽인 사람에게 검도를 가르쳐주는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목격했던 어린 날의 재우는 그날 이후로 아버지와 절연을 선택했다. 지금 재우는 과거의 트라우마에 발목 잡혀 빠져나올 수 없는 늪에 갇혔다. 분명 국가대표 선발전 5인 안에 들기 위해 노력해야만 하지만, 지금 재우의 공적 영역은 사적 영역에 침범당한 상태다. 어쩌면 재우는 형의 죽음 이전에 단란하던 가족의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을 태수와의 대련으로 복원하려는지도 모른다.
'만분의 일초'는 대사보다는 거친 숨소리가 스크린을 지배하는 영화다. 그렇기에 김성환 감독은 외부에서 틈입하는 불균질한 사운드를 반복적으로 배치하거나 이미지를 충돌시키며 재우를 벼랑 끝까지 밀어붙인다. 잔잔한 선율의 드뷔시의 '아라베스크'는 날카롭고 신경질적인 재우의 상황과는 묘하게 이질적인 느낌마저 든다. 손에 피가 맺힐 정도로 쥐고 있던 과거의 무게는 연락이 두절됐던 아버지를 입관하는 순간에서야 가벼워진다. 팽팽할 정도로 놓지 못했던 끈처럼 재우를 옭아매고 있던 것은 언젠가는 놔야 했던 과거의 기억이자 원망, 분노였다. 영화의 엔딩에서 재우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눈을 보며, 손으로 꽉 쥐는 대신 펼쳐놓기를 선택한다. 어쩌면 그가 지니고 있던 과거의 무게는 눈처럼 쉬이 녹아버릴 수 있는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김성환 감독은 첫 장편 영화임에도 빈틈없는 짜임새와 점층적으로 고조되는 인물들 간의 감정선을 통해 아름답지만 애처로운 몸짓을 만들어냈다. 다만, 대사가 아닌 이미지나 사운드로 사건을 설명하고 이야기를 전달하는 과정과 재우가 자신이 지닌 무게를 내려놓지 못하고 발악하는 과정들이 길게 느껴질 수는 있다.
그럼에도 신인 감독의 재기발랄한 시선이 느껴지는 대목은 검도라는 스포츠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력이다. 검도와 인물의 복합적인 감정을 마치 소묘를 그려내듯, 선을 여러 겹 덧대어 점층적으로 그려냈다는 점은 '만분의 일초'의 가장 큰 매력이다.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권모술수로 능글맞은 캐릭터를 보여줬던 배우 주종혁의 호면을 뚫고 나오는 강렬한 눈빛을 볼 수 있는 작품이 될 것 같다.
영화 '만분의 일초' 11월 15일 개봉. 러닝타임 100분. 12세 관람가.
이하늘 텐아시아 기자 greenworld@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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