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안부 차관 “행정망 마비, 재난까진 아니다” 발언에…국민은 ‘분통’

노기섭 기자 2023. 11. 23.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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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서 “차관은 책임성 있는 답변이 하나도 없다”고 지적받아
“행정망 사태 구경하는 태도…책임회피 구실 찾나” 비난 봇물
23일 국회에서 열린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에 고기동 행정안전부 차관이 출석해 있다. 연합뉴스

고기동 행정안전부 차관이 23일 국회에서 정부 행정전산망 마비 사태와 관련 ‘재난이라고 보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히자, 행안부에 대한 비판 여론이 쏟아지고 있다. 국민들은 전산망 마비로 일상에 차질을 빚는 등 큰 불편을 겪었는데도, 사과나 대책 마련도 없이 시간이 흘러가기만을 바라는 듯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 차관은 이날 오전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행정망 마비 사태를 재난으로 보느냐’는 야당 의원들의 질문에 "그렇게까지 보지 않는다"고 답했다. 야당 의원들은 정부가 지난해 10월 데이터센터 화재에 따른 카카오 먹통 사태는 재난으로 규정하고 재난문자를 발송했으면서, 이번 행정망 마비 사태 때는 왜 재난문자를 발송하지 않았는지, 이번 사태를 왜 재난으로 보지 않는 것인지 등을 따져 물었다.

임호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고 차관에게 "카톡 사태는 재난으로 규정했다. 당시 잣대로 본다면, 이번은 사실 더 중요한 재난으로 봐야 하는데, 행안부는 이게 재난안전법상 재난의 요건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며 "재난인가 아닌가"라고 물었다. 이에 대해 고 차관은 "장애 확대 가능성과 지속 가능성을 봤을 때 그렇게 보기는 어렵다. 다음날 아침에 복구가 됐다는 상황도 고려했다"며 재난으로 보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성만 무소속 의원이 "이번 사태는 재난 분야 위기관리 표준메뉴얼에 담긴 재난 유형 41개 중 정보통신사고에 해당한다고 보는데 정부는 이게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 같다"고 하자, 고 차관은 "통신 분야의 매뉴얼로, 행정 전산망에 엄격하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고 답했다.

카카오 먹통사태 때는 발송됐던 재난문자가 왜 이번 행정망 사태 때는 발송되지 않았는지에 대해서도 공방이 이어졌다. 권인숙 민주당 의원이 카카오 사태 때는 재난문자를 발송했으면서 이번에는 왜 하지 않았느냐고 묻자, 고 차관은 "카카오 관련 재난 문자는 사고 이틀 후에 복구 과정에 대해 (알리는 내용의 문자였다)"고 대응했다. 권 의원은 "어떻게 복구됐다는 문자도 발송이 돼야 하는 것"이라며 "행정시스템 마비된 당일에도 7개의 재난문자 발송했다. 그런데 왜 이것은 안 했느냐는 얘기를 하는 것"이라며 행안부를 비판했다.

이날 회의에서는 해외 출장을 이유로 불참한 이상민 행안부 장관에 대한 문제제기도 이어졌다. 이 장관은 영국 내각부와 디지털정부협력에 관한 양해각서(MOU) 체결을 위해 지난 20일 영국 출장길에 올랐다. 이해식 민주당 의원은 "국회에 현안질의도 예정이 돼 있고 국민들한테 정확하게 원인에 대해서 보고를 하고 또 재발 방지 대책도 얘기를 해야 되는 책임이 장관한테 있는 것 아니냐"며 "지금 행안부 차관이 이 자리에 나와 이 문제에 대한 현안질의 답변을 하고 있는 것 자체가 이 사태를 얼마나 가볍게 여기는지 단적으로 증명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형석 민주당 의원도 "행안부 장관이 영국 출장으로 참석 안하고 차관이 답변하고 있는데, 차관 답변 내용은 구체성이 있거나 책임성 있는 답변이 하나도 없다"며 "이 엄청난 시스템 장애 사태가 왔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안일하게 대응하는 게 행안부냐"고 질타했다.

앞서 지난 17일부터 사흘간 정부 행정전산망이 마비되면서 민원서류 발급 등에 큰 차질을 빚었으며, 22일에도 행정 전산망에서 장애가 발생해 동주민센터 등에서 주민등록등본이나 인감증명서 같은 민원서류 발급이 중단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이날도 조달청의 국가종합전자조달시스템인 ‘나라장터’에 오류가 생겨 1시간가량 불통됐다가 복구되기도 했다. 나라장터는 정부 조달 업무를 처리하는 시스템으로, 행정안전부 산하 국가정보자원관리원을 통해 운용된다.

고 차관의 발언을 접한 한 서울 시민은 "지난 주에 이사가 있었는데 민원 서류 발급이 중단돼 주민센터와 은행을 오가며 발을 동동 굴러야 했다"며 "일선 국민들이 큰 불편을 겪었는데 사과나 보상에 대해서도 언급이 없고 행안부는 무책임 그 자체"라고 성토했다. 한 지자체 고위 간부도 "지자체 입장에선 무엇이 문제인 줄 알지만 ‘갑’인 행안부에 제대로 말을 못한다"며 "행정망 마비 사태를 마치 구경하는 태도인데 책임회피할 구실을 찾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노기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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