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세" 외친 이용수 할머니…일본 위안부 피해자 손해배상 항소심 승소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일본 정부가 피해자에 2억원씩을 배상해야 한다는 판결이 나왔다.
서울고법 민사33부(부장판사 구회근)는 23일 이용수 할머니와 고(故) 곽예남 할머니 등 위안부 피해자 17명이 일본을 상대로 21억여원을 지급하라며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 항소심에서 "1심 판결을 취소한다. 원고의 청구 금액을 전부 인정한다"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국제관습법상 일본국에 대한 대한민국의 재판권을 인정하는 것이 타당하고 한반도에서 원고에 대해 피고가 저지른 불법행위가 인정되며 합당한 위자료가 지급돼야 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1965년 한일청구권 협정이나 2015년 한일합의 등 위안부 관련한 손해배상 청구 여부와 관련한 소멸시효가 쟁점이 될 수 있었는데 피고 측이 항변하지 않아서 판단하지 않았다"며 "헤이그 송달 협약에 따라 피고측 송달이 진행됐으나 피고가 송달을 반송해 공시송달이 진행됐고 피고측은 답변과 주장이 일체 없었다"고 밝혔다.
이 할머니 등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와 유족들은 2016년 일본 정부를 상대로 1인당 2억원을 배상하라며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
앞서 1심 재판부는 국제법상 '국가면제' 원칙을 이유로 소송을 각하했다. 국가면제는 주권 국가의 주권적 행위에 대해 다른 나라 법정에 세워 민사상 손해배상청구를 할 수 없다고 규정한다.
항소심은 1심과 다르게 대한민국 법원이 일본에 대한 재판권을 가진다고 판단했다. 유엔 국가면제협약, 유럽 국가면제 협약, 미국·영국·일본 등에서 '법정지국 영토 내 사망이나 상해를 야기하는 불법행위'에 대해 국가면제를 인정하지 않은 사례를 이유로 들었다.
재판부는 "법정지국 영토 내에서 그 법정지국 국민에 대해 발생한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그 행위가 주권적 행위인지 여부와 무관하게 국가면제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봄이 타당하다"면서 "이러한 국제 관습법에 따르면 이 사건에서 문제되는 피고의 행위는 법정지국 영토 내 국민인 피해자들에 대해 자행된 불법행위로 국가면제가 부정되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대한민국의 국제재판관할권도 인정했다. 재판부는 "이 소송은 일본이 당시 점령 중이던 한반도에서 원고들을 납치·기망·유인해 위안부 생활을 강요한 행위를 불법행위로 구성해 손해배상을 청구한 사안이고 원고들은 대한민국에 거주하면서 대한민국 민법을 근거로 피고에게 책임을 묻고 있다"며 "대한민국은 당사자 및 분쟁이 된 사안과 실질적 관련성이 있다"고 했다.
따라서 일본이 피해자들에 손해배상 책임이 성립한다고 봤다. 재판부는 "일본은 전쟁 중 군인들의 사기 진작 등을 목적으로 위안소를 설치·운영하면서 당시 10, 20대에 불과했던 피해자들을 기망·유인하거나 강제로 납치해 위안부로 동원했다"며 "이 사건 피해자들은 최소한의 자유조차 억압당한 채 매일 수십 명의 피고 군인들로부터 원치 않는 성행위를 강요당했고 그 결과 무수한 상해를 입거나 임신·죽음의 위험까지 감수해야 했다. 종전 이후에도 정상적인 범주의 사회생활에 적응할 수 없는 손해를 입다"고 했다.
그러면서 "일본의 전신인 일본제국도 현행 헌법에 따라 국제법규를 성실히 준수할 의무가 있었는데 일본제국 공무원들은 형법에서 금지하는 '국외 이송 목적 약취· 유인·매매' 행위를 하고 일본제국 정부는 이를 적극적으로 조장하거나 방조했다"며 "이같은 행위는 대한민국 민법상 불법행위에 해당해 피해자별 위자료는 각각 2억원은 초과한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했다.
서울고법 관계자는 "이번 판결은 국가면제에 관한 국제 관습법의 동향을 면밀히 분석·파악해 법정지국 국민에 대해 발생한 불법행위에 관한 국가면제 인정 여부를 구체적으로 밝혔다는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날 휠체어를 타고 법정에 출석한 이용수 할머니는 판결 직후 두 팔 벌려 만세를 외치고 눈물을 흘렸다. 그는 "감사하다. 감사하다. 정말 감사하다"며 "하늘에 계신 할머니들도 내가 모시고 감사를 드린다"고 말했다.
박다영 기자 allzero@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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