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 톡] 과학이 정치가 됐다

임소형 2023. 11. 23.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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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과학 연구나 과학계 이슈의 의미를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고, 우리 사회의 다양한 일들을 과학의 눈으로 분석하는 칼럼 '사이언스 톡'이 3주에 한 번씩 독자들을 찾아갑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만든 예산안에 대해 윤 대통령이 돌연 '나눠먹기'를 막으라며 구조조정을 지시한 뒤 대규모 삭감 조치를 일방 발표하더니, 연구 현장의 우려가 거세지자 이젠 여야가 질세라 증액을 외치는 전례 없는 상황이 빚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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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 입맛대로 올렸다 내렸다
정쟁 대상 돼버린 국가 연구비
R&D 비효율 근본 원인은 정부
편집자주
과학 연구나 과학계 이슈의 의미를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고, 우리 사회의 다양한 일들을 과학의 눈으로 분석하는 칼럼 ‘사이언스 톡’이 3주에 한 번씩 독자들을 찾아갑니다.
지난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예산안심사소위원회에서 소속 의원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뉴스1

과학기자로 일하기 시작했던 2003년 대통령은 노무현이었다. 당시 노 대통령은 “바이오산업을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집중 육성하겠다”고 했고, 재임 기간 중 보건산업 특화단지인 충북 오송생명과학단지가 준공됐다. 다음 이명박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부터 바이오 벤처기업을 방문하더니 재임 중 바이오헬스를 글로벌 산업화의 핵심으로 꼽고 집중 지원을 약속했다. 이후 박근혜 대통령이 내건 창조경제에서도 바이오는 핵심을 차지했다. 이어 문재인 대통령도 바이오헬스를 3대 신산업으로 정하고, 박 전 대통령에 이어 인천 송도를 방문했다. 그리고 송도엔 K-바이오 랩허브, 글로벌 백신 허브 같은 이름이 붙었다.

지난 20년간 바이오가 우리의 미래 먹거리가 아니었던 적이 없었다. 새 정부가 들어서면 늘 마치 새로운 전략이라도 되는 듯 바이오 육성 계획을 발표했다. 이번 정부도 어김없었다. 윤석열 대통령은 바이오헬스 6대 강국이 되겠다며 한국형 바이오 클러스터 조성을 공언했다. 여러 정부를 거치는 동안 특화단지, 허브, 캠퍼스 등 이름만 바꾸며 조성된 바이오 중심지들과 과연 뭘 얼마나 차별화할지 궁금하다.

용어만 달라진 채 비슷비슷한 정책이 정부가 바뀔 때마다 발표됐다는 건 앞선 정부의 정책에 관심이 없었거나 성과를 인정하지 않았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러니 선행 연구가 미처 마무리되기도 전에 정부가 바뀌면 연구비 지원이 감소 또는 종료되거나, 했던 사업에 문패를 달리 달아 새로 시작하는 일이 반복됐다. 바이오뿐 아니다. 정보기술, 신소재, 우주개발 등 첨단 연구는 종종 새 정부의 장밋빛 미래를 그리는 데 동원됐다.

과학 정책이 대통령 재임 기간과 맞물릴 때 문제는 연구개발(R&D)을 설계하는 주도권이 과학자가 아닌 정치인에게 넘어간다는 점이다. 전 정부와 선을 그으려는 새 정부 정치인들이 특정 분야의 연구를 깊이 있게 이해하고 있을 리 만무하다. 예산권을 쥔 ‘실세’ 정치인들이 연구비 계획을 짜면서 정치적, 개인적 인맥이나 특정 지역의 숙원 사업 등에 귀를 기울이면 어떤 결과를 낳을까. R&D 비효율과 중복의 상당 부분이 이런 과정에서 생길 수 있음을 부정하기 어렵다.

내년 R&D 예산을 놓고 여야가 대놓고 정쟁을 벌이는 중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만든 예산안에 대해 윤 대통령이 돌연 ‘나눠먹기’를 막으라며 구조조정을 지시한 뒤 대규모 삭감 조치를 일방 발표하더니, 연구 현장의 우려가 거세지자 이젠 여야가 질세라 증액을 외치는 전례 없는 상황이 빚어졌다. 지난주 국회 과학기술방송통신위원회 예산안심사소위에선 더불어민주당이 특정 항목 증감을 반영한 수정안을 단독 의결했고, 국민의힘은 무효라며 반발했다.

어느 연구비를 올리고 내릴지가 결국 여야의 힘겨루기에 따라 좌우되는 형국이다. 미래 사회에 꼭 필요한 연구, 우리 실정에 맞는 R&D에 대한 심도 있는 고민과 토론은 제쳐둔 채 여야가 각자 유리한 쪽으로 연구비 증감을 결정하고 있다. 그들이 어떤 근거로 정하는지 현장 연구자들은 따져볼 길이 없다. 일부 과학자들 사이에서 요즘은 ‘용산’에, ‘여의도’에 아는 사람이 있느냐가 연구 실력보다 중요하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마저 나온다. 젊은 세대의 미래보다 당의 미래를 더 고려한 R&D 예산은 그 자체로 비효율일 것이다.

R&D가 정쟁의 대상이 되면서 내년 총선을 앞두고 여야 모두 과학계를 또 다른 표밭으로 여기고 있음이 분명해졌다. 과학자들 표심에 어느 때보다 관심이 쏠리는데, 이렇게 씁쓸할 수가 없다.

임소형 미래기술탐사부장 precar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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