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이준석, 인요한은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2008년 김지운 감독이 만들고 송강호, 이병헌, 정우성이 주연을 맡은 영화의 제목입니다. 1920년대 중국 간도를 배경으로 한국형 서부극을 표방한 꽤 독특한 콘셉트의 영화였는데요, 웃음과 액션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며 668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는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흥행의 배경에는 물론 대단한 배우 셋을 불러 모아 공동 주연을 맡긴 캐스팅의 힘이 있었습니다.
어쭙잖게 영화 이야기부터 꺼낸 건 최근 국민의힘을 들썩여 놓고 있는 세 사람 때문입니다. 마치 배역을 정한 것처럼 어찌나 절묘한지, 최근 우리 국민은 관심이 있든 없든 거의 매일같이 이들이 등장하는 장면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이번 칼럼은 여당의 관점에서 보는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관찰기로 써 볼까 합니다.
1. 좋은 놈? 한동훈 법무부 장관
뭐라고요, 한동훈 장관이 좋은 놈이라고요? 하며 지레 눈에 쌍심지를 켜지 말아 주십시오. 국민의힘에서 보자면 그렇다는 말입니다. 요즘 정치권 초미의 관심사가 한 장관의 내년 국회의원 선거 출마 여부가 될 정도이니, 현재 명실상부한 여권의 스타 플레이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특히 지난 17일 대구 방문을 계기로 한동훈 장관의 정치인으로서의 변신은 기정사실화되는 분위기입니다. 꽃다발, 사인, 셀카 등이 등장하고 많은 시민의 관심을 받는 한 장관의 모습은 정치인이라면 누구나 부러워했을 겁니다. 정치에서는 계산되지 않은 우연한 일들은 많지 않은지라, 몇 가지 포인트를 해석해보겠습니다.
먼저, 왜 대구였을까요? 대구·경북이 보수진영의 가장 강력한 지역적 지지 기반이기 때문일 겁니다. 한국갤럽조사연구소가 가장 최근에 발표한 대통령 직무 수행 평가 결과를 보면 전체적으로 '잘하고 있다' 34%, '잘못하고 있다' 56%로 부정 평가가 훨씬 높습니다. 그런데 유독 대구·경북에서만 긍정 의견이 55%로 부정 의견인 31%보다 24%P나 높게 나타났습니다. (한국갤럽, 11월 14~16일, 1,001명 전화조사)
10월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참패 이후 총선 위기론에 직면한 윤석열 대통령이 박근혜 전 대통령을 연달아 두 번이나 찾은 것도 발밑부터 다져놓겠다는 포석이었습니다. 핵심 지지층을 굳히고 중도로 확장해 나간다는 건, 정치에서는 ABC와 같은 기본 전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높은 인지도와 상당한 인기를 확보한 한 장관이 보수 텃밭에서 인정받는다면, 향후 전국 어디로든 활동 무대를 넓힐 수 있는 대중 정치인으로서 유리한 입지를 구축하게 되는 것입니다.
"대구 시민들을 대단히 깊이 존경해 왔다"는, 다소 뜬금없는 한 장관의 말도 주목해 봅니다. 윤 대통령이 검찰총장이던 시절, 정계 진출 가능성을 놓고 여러 전망이 나오던 지난 2021년 3월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당시 윤 총장은 대구고검·지검을 방문하는 길에(역시 대구네요!) 여권에서 강력히 추진하던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을 맹비난하며, 부패를 완전히 판치게 한다는 뜻으로 '부패완판'이라는 용어를 선보였습니다. 소위 '정치인의 언어'가 등장하고, 윤 총장의 대통령선거 도전이 가시화되는 순간이었습니다.
한동훈 장관은 대구를 방문한 이 날, 시민들의 촬영 요청에 열차 탑승을 3시간 미루기까지 했다고 합니다. 어떤 출마 선언보다도 메시지는 강력하고 연출은 자연스러웠습니다. 물론 장관이 국무위원으로서의 신분을 망각하고 정치놀음에 빠져 있다는 비판이 많습니다. 그러나 모두에게 사랑받는 게 그들의 목표가 아닙니다. 정확히 자신들의 표를 계산해내고 만족시키는 한 장관의 행보는, 그래서 국민의힘으로서는 '아주 좋은 놈'일 수밖에 없습니다.
2. 나쁜 놈?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
2021년 6월, 국민의힘 초대 당대표 선거에서 당시 36세의 나이로 당선된 이준석 전 대표를 보며 만감이 교차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선출직 공직자 경험이 없는 젊은 정치인의 대담한 도전 과정은 신선했고, 그 청년을 덜컥 당대표로 뽑아준 국민의힘 당원과 지지자들의 변화가 놀라웠습니다. 그러나 기성정치에 대한 실망이 '일베'의 사고방식과 언어를 가진, 혐오와 차별과 비하를 서슴지 않는, '모든 경쟁은 공정하다'는 신념으로 사회적 연대의 가치를 조롱하는 정치로 쏠리는 우리 현실이 너무 걱정스럽기도 했습니다.
기존의 정치 문법 정도는 간단히 무시해버리는 이준석 전 대표인 만큼, 그의 노골적인 신당 창당 움직임을 바라보는 국민의힘 어르신들의 심기는 불편하기 그지없습니다. 우리 정치문화에서 제3지대 창당이 선거에서 의미 있는 결실을 거두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만, 2030 세대 남성이라는 실체가 있는 지지 기반을 가진 이 전 대표의 행보는 국민의힘으로서도 그냥 두고 보기 어려운 일일 겁니다.
이 전 대표가 조직 관리에 과도한 비용이 드는 정치를 바꿔보겠다며 SNS 글 하나로 온라인상에 구축한 지지자 연락망에는 현재까지 4만여 명이 참여했다고 합니다. 좋은 시도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만약 이준석 신당이 성공을 거둔다면 우리 정치에도 좋은 일일까요? 청년들의 정치 참여가 확대되고 다양한 세력이 등장해 시민들을 더 잘 대표하는 정치는 제가 바라는 바입니다만, 저에게는 이 전 대표가 적어도 좋은 정치를 펼칠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습니다. 분열에 기대는 정치의 종착지는 그가 공언하는 새로운 정치가 아니라, 개인의 권력욕에 불과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3. 이상한 놈? 인요한 국민의힘 혁신위원장
인요한 위원장은 우리 사회에서 매우 독특한 캐릭터입니다. 미국인이자 한국인이고, 호남 출신이자 보수주의자입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을 긍정적으로 평가하지만, 김대중 전 대통령도 존경하고, 노무현·박근혜 전 대통령을 지지했다가 결국 돌아선 과거도 있습니다.
2023년 10월 23일, 인요한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교수가 국민의힘 혁신위원장으로 임명되자 다들 좀 어리둥절한 반응이었습니다. 새로운 시도지만 완전한 외부인이 여당의 혁신에 관해 뭘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였습니다. 1호 안건을 '당내 통합과 화합을 위한 대사면'으로 내세우자 당장 대상이 되는 이준석, 홍준표 전 대표가 반발하기도 했고요, 영남 중진과 '윤핵관' 등의 불출마 또는 험지 출마를 핵심으로 하는 2호 혁신안이 발표되자 당이 발칵 뒤집혔습니다. 청년 정치 참여와 전략공천 배제 등 계속 혁신안이 나오고 있지만, 당장 국민의당에서 프로세스를 밟아 처리할 계획은 없는 모양입니다.
임명 직후 “국민의힘에 있는 많은 사람이 내려와야 한다.”는 소신을 밝힌 인 위원장이 이틀 후 “당내 낙동강 하류 세력은 뒷전에 서야 한다.”며 같은 취지로 언급할 때부터 당내 내홍은 예견된 것이나 다름없었습니다. '대통령의 신호'를 의미하는 발언으로 대통령실이 나서 부인하는 해프닝, 여당의 R&D 예산 삭감 비판 등 연일 인 위원장 발(發) 뉴스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행보도 거침없습니다. 개인 자격으로 이태원 압사 사고 1주기 추도식에 참석했고, 대표적인 비윤(비윤석열)계 인사인 유승민 전 의원도 만났죠. 이준석 전 대표의 경성대학교 북 콘서트 현장을 갑작스럽게 방문하기도 하고, 21일에는 비명(비이재명)계 중진 이상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혁신위원회에 초청해 강연을 듣기도 했습니다.
인 위원장의 파격적인 스타일이 국민의 시선을 잡아끄는 데는 어느 정도 효과를 발휘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혁신위원회가 성공하려면 세 가지 전제가 충족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계파에 치우치지 않은 중립적인 위원장, 기득권 타파를 핵심으로 하는 혁신의 내용, 그리고 당대표 등 지도부의 강력한 지원입니다. 대체로 당이 위기에 처할 때 혁신위원회가 만들어지고, 혁신의 과정은 구성원들에게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내부의 반발로 혁신이 좌초되는 일이 그렇게 빈번한 건 이 때문이죠.
그래서 혁신위의 성패를 가름하는 단 하나의 요인만 꼽으라면 저는 실권자의 의지라고 하겠습니다. 드물게 성공적이었다는 평가를 받은 홍준표(한나라당, 2005년), 김상곤 혁신위원회(새정치민주연합, 2015년)의 뒷배를 보아준 건 당시 박근혜, 문재인이라는 실세 당대표였습니다. 그렇다면 김기현 대표마저 싸늘한 반응을 보이는 인요한 혁신안을 관철할 힘은 대체 어디에 있을까요? 윤석열 대통령이 당무에 개입하지 않는다면 결국 실패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인 인요한 위원장은, 참 난감하겠습니다.
국민의힘은 한동훈 장관과 인요한 위원장의 활약으로 내년 총선에서 흥행을 거둘 수 있을까요? 이준석 전 대표는 신당 바람으로 또 한 번의 '이준석 현상'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요? 당사자들이야 명운을 걸고 나서는 일이겠으나, 지켜보는 사람으로서는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많은 시절입니다. 이상 국민의힘의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관찰기였습니다.
[박해성 티브릿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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