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 ‘미국몽, 중국몽, 총선몽’ 외교
[아침햇발]
[아침햇발] 박민희│논설위원
봄까지 ‘중국 때리기’에 기세등등하던 윤석열 정부는 여름 이후 ‘중국 관계 관리’에 대한 자신감을 부쩍 내비치기 시작했다. 9월엔 조태용 국가안보실장이 직접 나서 “시진핑 주석의 방한 가능성”까지 예고하며 기대치를 한껏 올렸다. 당국자들은 “한중관계 관리가 아주 잘되고 있다”며 호언장담했다.
결국, 그 기대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시진핑 주석이 윤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거부함으로써, 물거품으로 끝났다.
오판의 원인은 무엇일까. 우선 윤석열 정부의 ‘중국몽’이다. 윤석열 정부 외교·안보 당국자들은 ‘8월 캠프 데이비드 정상회의에서 한·미·일이 사실상 준동맹이 되었으니, 한국의 전략적 위상이 높아져 중국이 우리에게 손을 내밀 것’으로 기대했다. 국제질서가 극히 불안정한 상황에서 한국이 미국·일본과 협력을 강화할 필요는 있다. 문제는 이것을 지렛대 삼아 어떤 외교를 하느냐다. 미국·일본 등은 한·미·일 ‘준동맹화’로 중국을 압박할 지렛대를 키운 동시에 치밀하게 중국과의 외교 채널을 가동해 성과를 내기 시작했다.
한국도 미·일의 뒤를 따라 움직여야 한다는 것은 뒤늦게 깨달았다. 그런데, 그 무렵 ‘중국 경제 위기론’ ‘차이나 피크론’이 떠들썩해졌다. 당국자들은 ‘중국은 망하기 시작했다. 아쉬운 쪽은 중국’이라고 오판했다. 중국 경제가 어려워진 것은 사실이다. 부동산 의존 성장모델의 한계, 시진핑 체제의 경직된 당·국가 주도 경제 정책, 안보 강박적 정책이 경제를 짓누른다.
하지만, 전기차를 비롯한 중국의 첨단 제조업 경쟁력은 막강하다. 명암이 공존한다. 무엇보다도 중국의 성장이 둔화된다고 중국이 망하는 것이 아니다. 미중 경쟁은 장기간 지속될 것이고, 미국의 고립주의가 더 강해진다면 아시아에서 중국의 영향력은 예상보다 급속히 강화될 수도 있다.
윤 정부의 ‘중국 망국론’은 보수 정부에서 ‘북한이 경제난으로 붕괴하면, 핵 문제는 저절로 해결될 것’이라는 ‘북한 붕괴론’이 끈질기게 반복된 것과 비슷하다. 어려운 문제를 냉철하게 분석하고 장기 전략을 세워 끈질기게 외교로 실현하지 못하고, 안이한 ‘기대’에 의존한다.
윤 대통령의 ‘미국몽’도 시대착오적이다. 윤 대통령의 머릿속 ‘미국’은 세계 질서를 좌우하던 과거의 미국이다. 그는 미국 뒤에만 서면, ‘아메리칸 파이’를 열심히 부르면, 미국이 한국의 안보·외교·경제 난제들을 해결해줄 수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 듯 보인다.
1년도 남지 않은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의 귀환’ 가능성이 커졌다. 물론 지금 승자는 알 수 없지만, 문제는 트럼프 개인이 아니다. ‘미국 우선주의’와 고립주의가 이미 도도한 흐름이 되었다. 미국인 상당수가 미국이 국제질서를 유지하고 세계 곳곳에 개입하는 데 돈과 노력을 들이지 말 것을 요구한다. <파이낸셜타임스>는 “바이든 대통령은 ‘동맹에 기반한 국제질서’를 지키려는 마지막 미국 대통령이 될지도 모른다”고 경고했다.
윤석열 정부가 최근 대중관계 개선을 외친 중요한 이유는 ‘총선몽’ 때문이었다. 북핵 위협 관리와 경제 문제 등에서 중국과 어디까지 협력하고 무엇을 경계할 것인가의 전략보다는, ‘문재인 정부가 중국에 굴욕 외교를 하고도 혼밥을 먹었는데, 우리는 미·일 편에 서면서도 중국으로부터 더 대접받는다’는 것을 보여주려 했다. 중국이 윤 정부의 계산을 모를 리 없다. 시진핑 주석은 미·일은 물론 멕시코·피지와도 정상회담을 하면서, 콕 집어 윤 대통령과의 회담을 거부했다. ‘꿈 깨’라는 경고장이다. 한·중·일 정상회담도 내년 4월 총선 이전에는 열리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은 20일 영국으로 떠나며 영국 언론과 한 인터뷰에서 “중국과 러시아, 북한은 이해관계가 다르다”며 “중국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했다. 중국이 북·러의 군사협력에 거리를 두고 한국과 협력하자는 메시지다. 바로 그날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윤 대통령을 향해 “우리가 무엇을 하든 무엇을 하지 않든 다른 사람이 이래라저래라 해서는 안 된다”고 응수했다. 극도로 위태로워지고 있는 한반도 정세에 대해, 중국은 윤석열 정부와 협력할 뜻이 없다.
한 외교 전문가는 “미중 사이에서 원칙을 세워 중국과는 어느 정도의 외교 공간이 있는지를 분명히 하면서 대화를 해야 생산적인 결과 도출이 가능하다. 그냥 대화하자고만 해서는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진단한다.
미국과 일본은 중국과 통로를 열었는데 한국만 ‘고립’을 자초한 상황에서, 중국은 한국을 지속적으로 압박하면서 윤 대통령이 4월 미국 국빈 방문을 앞두고 대만과 관련해 ‘과도한’ 발언을 한 대가를 받아내려 할 것이다.
매달 순방에 바쁜 윤 대통령의 외교는 무엇이었나. 영어연설과 호화 ‘국빈의전’으로 바빴다. 의전과 외교를 착각해서는 안 된다. 중국에서 값비싼 청구서가 날아올 터이니 단단히 준비하시라.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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