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서울 지하철 '최악의 공기'는 1호선 종각역, 왜?

박수진 기자 2023. 11. 23. 11:12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뉴스토리' <지하철 공기 질 실태보고> 취재 후기 ②

지하철 1호선 종각역은 지난 4월부터 환기실 바닥을 파내고 있습니다. 바닥을 10cm 이상 파서 높이를 낮추고 있는 겁니다. 이 공사 때문에 종각역 내 환기실 2곳 중 1곳은 현재 가동이 중단된 상태입니다. 멀쩡한 바닥을 왜 파고 있는 걸까요?

서울 지하철역 '최악의 공기'는 1호선, 왜?


환기실은 지하 역사 내 공기 정화를 담당하는 공간으로 다른 지하철역에선 공조실이라고 불리기도 하는데요, 대부분은 미세먼지와 초미세먼지를 잡기 위해 4단계의 필터로 구성된 공기 여과 장치가 설치 돼있습니다. 하지만 종각역을 비롯해 지하철 1호선 지하 역사에는 이런 필터 시스템이 없습니다. 부직포 또는 천으로 만들어진 '프리필터' 한 개만 있거나 이마저도 없기도 합니다. 쉽게 말해, 4명이 해야 할 일을 1명이 하고 있는 셈이니 당연히 공기 정화 효과가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실제 지난 8월 측정치 기준 서울 지하철 1~8호선 지하역사 250곳 중 초미세먼지 농도가 가장 높은 곳은 1호선 종각역(1㎥당 152.1 마이크로그램(㎍))이었고, 이를 비롯해 상위 10곳 중 7곳이 종로5가, 신설동, 시청, 동묘앞, 동대문역 등 1호선 지하철역이었습니다. 종각역의 경우는 200 마이크로그램을 넘는 날이 흔할 만큼 서울 지하철역 중 공기 오염도가 가장 심각합니다. (실내공기질관리법이 규정하는 지하 역사 초미세먼지 기준치는 1㎥당 50㎍입니다.)


1호선은 왜 공기 여과 장치가 이렇게 미비한 걸까요? 일단 역 자체가 너무 낡았습니다. 지하철 1호선은 1974년부터 운행을 시작했습니다. 지하 역사도 당시의 기준에 맞게 지어졌습니다. 1970년대는 지금처럼 공기 질에 대한 사회적 기준이 높지 않았던 때입니다. 현재 지하역사 공기 질 관리 기준이 되는 '실내공기질관리법'은 2003년 만들어졌고 전신인 '지하생활공간 공기질 관리법'도 1996년 처음 제정됐습니다. 종각역 환기실 공사 현장에서 만난 관계자는 "1983년에 역사 냉방 시설을 구축하는 공사가 진행된 이후로 공조 설비 공사가 진행된 적은 없는 걸로 안다"고 말했습니다. 지난 10월 기준, 1호선 종각역의 하루 평균 승하차인원은 6만 9천여 명에 달합니다. 이 많은 승객들이 40년 넘게 '70년대 기준' 환기 설비에 의존해 온 셈입니다.

"지하철역 한 곳을 제대로 바꾸려면 300-400억 원"


노후화한 지하철역의 공기 정화 설비를 지금의 기준으로 제대로 바꾸려면 한 지하철역 당 수백억 원이 든다는 게 서울교통공사의 설명입니다.

"1호선 같은 경우는 실내공기질 관리법이라든지 이런 대기질 하고 연관이 없을 시절에 역사가 건설이 됐다 보니까 전혀 그 필터 시스템이라든지 이런 부분이 굉장히 미흡합니다. 현재 기준의 공기 여과 필터 시스템을 구축하고 제대로 만들려면 역사 전체를 다 건드려야 하거든요. 전체 리모델링을 하려면 지하철역 한 곳당 300-400억 원이 들어요." (서울교통공사 관계자)

종각역이 바닥을 파내고 있는 이유는 환기실을 조금이라도 넓히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야 초미세먼지를 걸러주는 미디움필터 등 개선된 공기 필터 시스템을 넣을 수 있다고 합니다. 다만 제한된 지하역사 안에서 환기실을 넓혀야 하다 보니 승객들 통행로가 줄어들게 됩니다. 환기실을 넓히는 공사도 지하철역 한 곳당 50억 원이라는 적지 않은 돈이 듭니다. 그렇다 보니 환기 시스템 개량공사가 진행 중인 지하철 1호선 지하 역사는 종각역과 종로3가역 두 곳에 불과합니다. 서울 1~8호선 지하역사 250곳 전체로 넓혀서 봐도 공사가 완료된 곳은 14곳 밖에 없습니다. 이 사업은 2019년부터 시작됐는데, 아직 전체의 10%에도 미치지 못한 겁니다.


예산이 많이 들어 사업 진행 속도가 더딘 건데, 개선 작업이 늦어지면 시민들은 오염된 공기에 더 노출될 수밖에 없습니다. 환기실을 넓히지 않고 기존 환기실에 있는 공기조화기 안에 공기 필터만 교체하는 방법은 어려운 걸까요? 서울교통공사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공조기에 필터를 넣으려고 하면, 현재 공기 필터는 중성능 이상의 필터가 들어가야 합니다. 그렇다 보면 공조기도 커져야 하고, 그 옆에 있는 팬(FAN)도 커져야 해요. 환기실이 커질 수밖에 없죠. 지금 하는 공사가 공조기도 좀 더 큰 걸로 바꾸고, 환기실 공간도 넓히는 방식입니다."

노후화한 1호선의 문제가 가장 심각하지만 다른 노선의 지하철역이라고 해서 상태가 크게 다르진 않습니다. 종각역처럼 부직포나 천으로 만들어진 프리필터 한 개만으로 공기 정화를 하는 지하철역이 적지 않습니다. 5년마다 지하 역사 공기질 개선 대책을 내놓고 있는 주무 부처 환경부에게도 해당 사업이 늦어지는 이유를 물었습니다.

환경부는 "지하역사 공기질 개선사업에 2019년부터 2천127억 원의 국비를 투입했다. 다만 해당 사업은 국비 확보뿐만 아니라 지방비 확보나 이를 실행할 수 있는 인력 등이 모두 충족돼야 이행이 가능하다"며 "실제로 올해 국비 103억 5천만 원을 서울시에 교부했지만 지방비 확보 등으로 10월 말에 최종 교부되어 다음 해에 사업을 추진할 예정"이라고 답변했습니다. 예산이 없는 건 아니지만 집행이 되지 않고 있었고 결국 내년으로 사업이 밀리게 된 셈입니다.

지하철역 한 곳에 공기청정기 십 수대…효과는?


정부는 차선책으로 승강장에 공기청정기를 점점 늘리고 있습니다. 대형 공기청정기가 많게는 한 곳당 십 수대씩 설치된 지하철역도 적지 않습니다. 환기 설비 개선 공사를 진행하느라 지난 4월부터 공기 여과 필터 가동이 멈춘 1호선 종각역도 승강장에 공기 청정기를 추가로 설치해 환기 효과를 높이고 있었습니다.

물론 없는 것보단 낫겠지만 승강장 공기청정기를 늘리는 것보단 환기 설비를 개선하는 것이 지하 역사 미세먼지를 저감하고 공기 질을 개선하는 근본적인 방법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입니다. 실제로 지난해 한국환경공단이 서울교통공사에 제출한 '지하역사 공기질 개선사업의 미세먼지 저감효과 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승강장 노후 환기 설비를 교체하는 것이 승강장에 공기청정기를 설치하는 것보다 미세먼지 저감 효과가 큰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자연 환기가 되지 않고 밀폐된 지하 역사는 환기가 제대로 되지 않으면 미세먼지가 계속 공간 내에 축적되게 됩니다. 미세먼지 속에는 장기간 노출되면 우리 몸에 안 좋은 영향을 주는 각종 유해 성분들도 포함돼 있습니다. 문제는 시간이 갈수록 새로운 유해 성분들이 발견된다는 겁니다. 지하철 공기 질 실태 취재 후기 3편에서는 취재 과정에서 확인한 미세먼지 속 새로운 유해 성분들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박수진 기자 start@sbs.co.kr

Copyright ©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