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방큰돌고래 법인격 추진…설악산 산양도 ‘원고’ 돼야 한다
[왜냐면] 조현철│신부·녹색연합 공동대표
제주도에서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제주도가 멸종위기 국제보호종인 남방큰돌고래에 법인격을 부여하는 ‘생태법인’의 제도화를 추진한다. 생태법인은 인간 이외의 존재 가운데 생태적 가치가 중요한 대상에 법인격을 부여하는 제도다. 이 제도를 도입하면 남방큰돌고래뿐 아니라 자연 생태계 전반에 대한 우리의 인식과 태도가 크게 바뀔 것이고 환경정책의 질적 변화도 일어날 것이다.
해외에는 이미 자연의 법적 권리를 인정하는 사례가 여럿 있다. 2008년 에콰도르는 헌법에 세계 최초로 ‘자연의 권리’를 명문화했고, 2011년 볼리비아는 자연의 법적 권리를 인정하는 ‘어머니 대지법’을 제정했다. 2014년 아르헨티나 법원은 동물원에 갇힌 오랑우탄 ‘산드라’를 ‘비인간 인격체’로 인정했다. 2016년 콜롬비아 헌법재판소는 아트라토 강의 법적 권리를, 2018년 최고법원은 콜롬비아 내 아마존 지역의 법적 권리를 인정했다. 2017년 뉴질랜드는 황거누이 강에 법인격을 부여했다. 물론, 이런 결실을 얻기까지의 과정은 쉽지 않았다. 황거누이 강의 법인격 뒤에는 뉴질랜드 선주민 마오리족이 160년간 벌인 싸움이 있다.
강원도에서는 안타까운 소식이 들려왔다. 지난 20일 강원도 양양군 서면 오색리에서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사업 착공식이 열렸다. 1982년 처음 시도했던 오색케이블카 사업은 한동안 지지부진하다가 2015년 국립공원위원회의 ‘조건부 승인’을 받은 뒤 문화재위원회, 중앙행정심판위원회, 환경부 등을 거치며 엎치락뒤치락한 끝에 최종 승인됐다. 고비 고비마다 권력의 입김이 작용했다. 이 사업은 결국 자연보존지구를 보호해야 할 국립공원위원회, 천연문화재를 보호해야 할 문화재청, 자연 생태계를 보전해야 할 환경부가 공모해 벌인 참사다.
강원도와 양양군이 예비타당성 조사를 피하려고 국비 지원 없이 사업비 전체를 부담한다고 나서고, 3억 원이나 되는 예산을 들여 시공사도 정하지 않은 채 착공식을 서두른 걸 보면 다시 되돌릴 수 없게 일단 삽질부터 하자는 의도가 역력하다. 그러나 국립공원과 천연보호구역(천연기념물 제171호)을 비롯해 설악산을 겹겹이 둘러싼 보호장치들은 단순하고 명확하게 선언한다. “설악산은 경제적 효과를 들먹이며 손대서는 안 되는 곳이다.” 설악산 케이블카 건설 예정지는 멸종위기 야생생물 1급이자 천연기념물 제217호인 산양의 서식지며 하늘다람쥐, 무산쇠족제비 등의 멸종위기종이 사는 곳이다. 서식지에 케이블카를 설치·운행하면 행동반경이 좁은 산양은 소음과 진동, 서식환경 변화로 멸종 위기에 더 내몰릴 수밖에 없다. 2016년 문화재위원회가 문화재 현상변경 신청을 불허한 사유 가운데 ‘산양 등 야생동물의 서식환경 악화’도 있다.
2018년 산양 28마리를 원고로 문화재청이 허가한 천연보호구역 현상변경을 취소하라는 행정소송이 제기됐다. 법원은 산양이 원고가 될 수 없다며 원고의 청구를 각하했다. 그러나 이번 제주도의 남방큰돌고래 생태법인 지정이 이뤄지면 산양이 원고가 될 수 없다는 법원의 판단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법인격을 부여하면 당연히 소송 당사자의 자격도 생긴다. 자연 보전뿐 아니라 인간성 회복을 위해서라도 생태법인이 우리가 나갈 방향이라면 산양이 소송 당사자가 될 수 없다는 법원의 결정은 시대를 거스르는 인간 중심적 관점이라는 비판을 면할 수 없다.
외국에서 자연에 법인격을 부여해 자연과 공존을 꾀할 때 우리는 어떻게든 설악산에 케이블카를 설치해 이윤을 끌어내는 데 몰두했다. 부끄러운 일이다. 지금 자연과의 관계에서 제주도와 강원도는 정반대로 움직이고 있다. 어느 쪽이 시대 정신에 맞는가? 우리는 코로나19 팬데믹에서 혼자서는 결코 건강할 수 없음을 배웠다. 우리가 함께 건강해야 나도 건강하다. 그리고 그 ‘우리’와 ‘함께’에는 인간뿐 아니라 자연도 있음을 배웠다. 자연과 공존하려는 외국의 사례나 이번 제주도의 시도는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게 아니라 국내외 많은 실패를 바탕으로 이뤄졌다. 그러니 그동안 설악산을 지키려는 모든 사람의 수고는 헛되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제주 남방큰돌고래에 전해진 기쁜 소식이 설악산의 산양과 다른 동식물에 전해질 그 날까지 설악산을 지키려는 우리의 노력도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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