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 인상에 정책 ‘역차별’까지”…고신용자에 더 자비없는 대출 문턱[머니뭐니]
주담대는 금리 ‘주춤’하지만…신용대출은 ‘고공행진’
중저신용 대출금리 더 낮아…정책 ‘역차별’ 논란 계속
[헤럴드경제=김광우 기자] #. 신용점수 985점의 30대 직장인 A씨는 1년 전 받은 은행 신용대출의 금리가 기존 5.07%에서 6.23%로 1%포인트가량 올랐다는 연락을 받았다. 이에 대출 갈아타기를 시도했지만, 더 나은 조건을 찾는 데 실패했다. 약 20군데에 달하는 금융사를 조회했지만, 최저금리는 7.5% 수준에 불과했다. A씨는 “1년 새 신용점수가 20점 이상 올랐는데, 금리와 한도 조건이 더 나빠진 게 납득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은행권 대출 문턱이 높아지면서 자금마련에 어려움을 겪는 사례가 늘고 있다. 가계부채 확대 우려가 커지자 은행들이 대출공급을 조이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무담보’ 신용대출 차주의 어려움이 크다. 최근 주담대 금리는 ‘주춤’하고 있지만, 신용대출 금리는 상승세를 지속하고 있다. 특이한 것은 고신용자의 대출 문턱이 더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정부 정책에 따른 신용도 간 ‘금리왜곡’이 나타나면서 중저신용자에 비해 고신용자 대출금리가 높게 책정되는 사례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23일 금융권에 따르면 이날 기준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신용대출 금리는 4.68~6.68%로 지난달 말(4.54~6.58%)와 비교해 상·하단 각각 0.1%포인트, 0.14%포인트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한창 은행들이 금리를 끌어내리던 지난 7월 말(4.18~6.12%)와 비교하면, 4개월 만에 약 0.5%포인트 이상 오른 수준이다.
다수 신용대출의 준거금리로 작용하는 6개월물 은행채 금리가 상승하면서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이달 은행채(6개월, AAA) 금리는 올 1월 이후 처음으로 4%대에 진입한 상태다. 지난 13일에는 최고 4.1%대까지 오르기도 했다. 은행채 금리는 지난 4월 3.4%대까지 하락한 직후 줄곧 상승세를 유지하고 있다.
금리 상승은 유독 신용대출에서 두드러진다. 이날 기준 주담대 고정금리는 3.86~6.23%로 한 달 전인 10월 23일(4.24~6.75%)과 비교해 최대 0.5%포인트가량 하락해, 지난 9월 이후 처음으로 최저 3%대를 회복했다. 이는 지난 10월 4.8% 가까이 치솟았던 5년물 은행채 금리가 최근 4.2%까지 하락한 영향이다. 신용대출과 주담대 고정금리가 완전한 반대 추세를 보인 셈이다.
여기다 가계대출 확대 우려에 따라 신용 조건도 까다로워지고 있다.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지난달 5대 은행서 새로 취급한 신용대출 차주의 평균 신용점수는 924.4점으로 반년 전인 3월(916.4점)과 비교해 8점 상승했다. 대출 문턱이 급격히 높아지고 있는 셈이다. 이는 지난해 동기(908.2점)와 비교하면 16점가량 늘어난 수치다.
이에 은행권 관계자는 “가계대출 확대가 문제가 되는 상황에 금리까지 오르고 있지만, 주택마련자금 등 요인으로 신용대출 수요는 계속 몰리고 있다”며 “건전성 우려까지 더해지니 은행 입장에서도 그대로 수요를 흡수할 수는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실제 이날 기준 5대 은행의 신용대출 잔액은 약 1081억원으로 전월 말(1073억원)과 비교해 8억원가량 늘었다.
하지만 이는 모든 고객에 적용되는 얘기는 아니다. 되레 중저신용자에 대한 대출 문턱은 점차 낮아지고 있다. 인터넷은행의 경우 차이가 명확하다. 신용점수 하위 50%를 대상으로 한 카카오뱅크 중신용대출 최저금리는 이날 기준 4.08%로 일반 신용대출(5.49%)과 비교해 1.4%포인트가량 낮게 형성돼 있다. 중신용대출에 대해서 거의 ‘원가’에 가까운 최저 0.014%의 가산금리를 적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케이뱅크의 경우도 최근 중저신용자에 대해 신용대출 금리 수준을 3.3%포인트 인하하며, 금리역전 현상이 나타났다.
여기에는 정부 정책의 영향이 주요인으로 작용했다. 금융당국은 현재 인터넷은행의 중·저신용자 대출 확대를 압박하고 있다. 올해 중·저신용 대출 목표치(카카오뱅크 30%, 케이뱅크 32%, 토스뱅크 44%)를 달성하지 못할 경우, 신사업 인허가에 불이익을 주겠다고 엄포를 놓기도 했다. 목표치 달성이 불투명한 은행들이 ‘역차별’ 금리를 제시해서라도, 중저신용자 고객 유치에 사활을 걸고 나선 이유다.
이같은 논란은 여타 대출 영역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지난 20일 금융당국은 금융지주 회장단과 만나 소상공인·자영업자 대상 금리 부담 경감 방침을 제시했다. 최근 윤석열 대통령의 ‘은행 종노릇’ 발언을 계기로, 은행권 이익 환수에 대한 여론의 관심이 집중된 영향이다. 지난 2월에도 3년간 10조원 규모의 상생금융 강화 방안을 내놓은 은행권은 추가로 대규모 금융 지원책을 마련하고 있다.
하지만 일부 취약계층을 겨냥한 지원책이 ‘역차별’에 해당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정부에서 요구하고 있는 금리 조정은 은행 수익성에 직접 연관되는 부분이다. 이에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한 대규모 금리 인하가 되레 성실상환자의 대출금리 인상으로 전이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일반 소비자들의 대출금리를 올리면서까지 무리해 상생방안을 마련할 만한 상황은 아니라고 본다”며 “결국 취약계층을 지원하는 게 전체 금융시장 안정을 위한 가장 빠른 수단 중 하나”라고 말했다.
wo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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